고통을 이겨내며... 희망의 꽃을 피는 겨울

by Chong Sook Lee


1608336018924.jpg (사진,글:이종숙)


밤새 눈이 와서 세상을 하얗게 덮었다. 지저분한 것들을 덮어 세상이 깨끗하다. 눈이 계속 오고 있지만 숲으로 갔다. 눈이 내리는 숲 속은 신비롭고 아름답다. 아무도 걸어가지 않은 눈 위를 사뿐사뿐 걸어간다. 숲 속의 오솔길에 눈이 사박거리며 떨어지는 소리가 정겹다. 군데군데 산짐승들의 발자국이 보인다. 늑대는 아니고 토끼도 아닌 것 같은데 어쩌면 사슴? 잠을 자는지 보이지는 않는다. 나무 위에 소복이 쌓여있는 눈이 바람이 불 때마다 날린다. 눈도 앉을자리를 찾아 앉는 것이 신기하다. 넓고 편한데 앉기도 하고 좁고 뾰족한데 앉기도 한다. 죽은 나무에 앉기도 하고 버섯 위에 앉기도 한다. 넘어진 나무들이 더 많아졌다. 가을에는 보이지 않았는데 겨울에는 더 잘 보인다. 눈이 쌓여있는 길을 따라간다. 눈도 오고 바람이 불어서 아침에 나올까 말까 망설였지만 나와보니 정말 좋다.


자연은 매일매일 무언가를 우리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그냥 준다. 발걸음을 떼며 앞으로 갈 때마다 기쁨이라는 선물을 준다. 바람을 타고 날아온 눈이 어깨를 감싸고 다정히 말을 건넨다. 그냥 보고만 있어도 좋고 스치기만 해도 좋다. 작은 나무들이 추위를 견디고 마른풀들이 겨울을 내는 것을 보면 기특하다. 우리들은 작은 일에도 화를 내고 조금 불편해도 짜증을 내는데 아무런 불평 없이 모든 것을 끌어안으며 사는 자연이 부럽다. 영하의 온도에도 얼지 않고 흐르는 계곡물 옆에 서 있는 나무들이 물을 거울삼아 멋을 낸다.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꼬불꼬불한 오솔길을 따라 걸으며 어쩌면 길이 이렇게 만들어졌나 하는 생각이 든다. 따라가다 보면 아주 가까운 길을 돌고 돌아간다. 세상만사가 다 그럴 것 같다. 곧바로 가는 길이 있다면 승패가 바로 보일 텐데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며 왔다 갔다 하다 길을 잃고 길을 찾지 못해 방황하며 살다 세월을 까먹는 우리네 인생살이 같다.


먼길을 돌아간다고 다 나쁘지 않다. 가다 보면 생을 다해 쓰러지고 넘어진 나무도 만나고 가을에 이파리를 떨어뜨리지 못하고 마른 이파리와 겨울을 나는 나무도 만난다. 허리가 굽은 나무도 만나고 옆구리가 꺾인 나무도 만난다. 비틀어진 나무도 있고 가시가 박힌 나무도 있다. 꼭대기만 살아서 몇 개의 이파리를 달고 살아있는 나무도 있고 다 죽은 나무에 딱따구리가 만들어 놓은 구멍을 여러 개 달고 서 있는 나무도 있다. 세상과 다르지 않다. 하는 일마다 꼬여서 실패를 거듭하는 사람도 있고 힘들고 아파서 누워버린 사람도 있다. 고통에 시달리며 괴로운 사람도 있고 쉽게 말을 건넬 수 없이 신경이 예민한 사람도 있다. 알고 보면 하늘 아래 사는 모든 것들은 다 같다. 조금 힘들어도 주저 않는 사람이 있고 수천번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 힘차게 사는 사람도 있다.



(사진:이종숙)


다람쥐들이 나무를 오르내리며 숨바꼭질을 한다. 아마도 연애를 하는지 밀고 당기며 쫓아가고 도망가며 신나게 연애를 한다. 가다가 멈추어 서로를 바라보고 장난을 치며 나무를 옮겨 다닌다. 그들도 밀당을 하는 게 너무 웃겨 한참을 보고 서 있었다. 크고 작은 나무들이 숲 속에서 살아간다.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는 이름 없는 들꽃들도 피고 지고 여름에 잠깐 살다가는 수많은 잡풀들도 있다. 우리가 모르는 그들만의 삶이 있겠지만 싸움도 전쟁도 없는 것 같다. 다툼도 없고 땅따먹기나 밥그릇 챙기는 전쟁도 없이 해마다 피고 지며 살다 간다. 언제 적부터 생긴 숲인지 모르지만 숲은 영원히 숨 쉬며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손을 흔든다. 지난주에 왕창 모였던 까치들이 다시 만나기로 했는지 가지마다 앉아서 그들만의 언어로 깍깍 대며 회의를 한다. 고조 증조할머니 할아버지부터 손주며느리 손녀사위까지 다 모였나 보다.


온 계곡에 서 있는 나무들을 차지하고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숲 속을 뒤흔든다. 커다란 잔치가 끝나고 하나둘 날아가며 숲 속은 다시 다람쥐와 참새들이 차지한다. 멀리서 가까이서 바스락 소리가 들리고 새들의 노랫소리도 간간히 들린다. 오솔길은 여전히 한가롭고 조용하여 우리 둘의 발자국 소리만 들린다. 바람이 심하게 불고 눈이 점점 더 오는데 땀이 나고 아무리 추운 날도 이렇게 걷다 보면 추위를 잊게 된다. 계곡도 눈으로 하얗게 덮여있어서 길인지 계곡인지 구별이 안된다. 저쪽에 있는 계곡은 얼지 않은 채 물이 흘렀는데 이곳은 꽁꽁 얼어 있고 개들이 다닌 발자국이 보인다. 숲이 워낙 크다 보니 기온이 조금씩 다르고 지형도 달라 가파른 절벽이 있고 완만한 능선도 있다. 자연도 사람의 심성과 다를 바 없음을 다시 느낀다.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할 수는 없지만 둥글둥글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따스함이 전해지고 날카롭고 예민한 사람들에게는 왠지 모르게 찬 기운을 느끼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여러 번 다닌 길이라 눈에 익어 다음에 이어지는 길이 어디라는 것을 알게 되어 오래 살던 고향길 같아 마음이 편하다. 넘어져서 눈을 덮고 있는 커다란 나무가 뿌리를 다 내놓고 있고 몇백 년 전에 온 것 같은 커다란 바위돌이 점잖게 앉아 있는 모습이 말을 하지 않아도 괜히 정감이 간다. 자연은 그렇게 우리의 마음을 파고드는 묘한 매력이 있다. 아무리 힘들고 괴로워도 숲 속에 와서 걷다 보면 세상 모든 만사가 실타래처럼 사르르 풀어진다. 흐르는 물속에 근심 걱정 다 흘려보내며 욕심 없는 마음으로 걸어간다. 지난 것들은 희미해져 가고 앞으로 무엇이 나를 찾아올지 모른다. 오늘의 내가 어제의 내가 될 때까지 나는 이 길을 걷고 싶다.



눈은 여전히 내리고 바람도 심하게 불어대지만 그 어느 것도 우리의 발길을 잡을 수 없다. 크고 작은 나무들 사이로 쉬지 않고 내리는 눈을 보며 봄이 아니라도 좋다는 생각을 한다. 꽃이 피는 봄과 잎이 자라는 여름도 좋고 단풍이 들어 호화로운 가을도 좋지만 눈꽃 피고 바람 부는 겨울도 버릴 수 없이 아름답다. 고통을 이겨내며 피어나는 희망의 꽃이 피는 겨울의 한낮이 살며시 다가와 손을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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