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간 생선을 그릇에 담아
내놓곤 하시던 할머니
세상 그만두신 걸
길고양이만 모르고 있다
누군가의 뒷모습을 보면 묘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그럴 때의 정서는 상상력을 자극하여 이야기를 지어내기에 좋은 상태를 조성하곤 한다.
하물며 고양이의 등이니 말해 무엇하랴,
묘했던 것이다.
뒷모습을 가장 보기 힘든 건 자기 자신이다. "한 사람에게 가장 먼 곳은 자신의 뒷모습이었네"(남수우) 라고 말하는 시인도 있었다.
거울 앞에서 몸을 이리저리 비틀며 비추어 보는 뒷모습은 진정한 뒷모습이 아니다.
앞모습과는 달리 뒷모습은 꾸며내기 매우 힘든 영역이어서 표정의 무덤일 수 있다. 차라리 뒷모습은 솔직하다.
뒷모습에서는 그 사람에 대해 예상외로 많은 정보를 취득할 수 있다.
지금 자세히 알고 싶은 누군가가 주변에 있는가? 그의 등과 뒤통수를 주시하라. 그의 절반 이상을 말해줄 것이다.
만만한 뒤통수는 치기에 참 좋고, 굽고 위축된 등은 등짝 스매싱을 부른다.
그러니 가능하다면 등은 물론 뒤통수도 단련해야 한다. 택도 없는 것들에게 뒤통수나 등짝 맞기 싫으면.
뒤통수 단련을 어찌하냐고? 나도 모른다. 분명한 건 당당한 등의 소유자들이 있으며 뒤통수마저 침착하거나 위압적인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남에게 함부로 등을 보여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떠날 때를 알아서 돌아서 가는 사람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답던가.
그렇다면 뒷모습의 미학은 시기적절한 타이밍에서 건져지는 것일 수도 있겠다.
이 글을 끝까지 읽은 사람은 거울 앞에서 얼굴을 이리저리 돌리며 뒷머리를 쓰다듬을 테고 혹은,
헬스장에 가서 등의 표정을 자신만만하고 굳건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풀업과 랫풀다운을 매우 열심히 하게 될 것이다.
내 뒤통수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