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관 앞 조명 센서등이 켜졌다.
주말새벽 남편과 함께 발 편한 운동화를 꺼내 신었다.
잠귀가 어두운 우리 집 아이들은 엄마, 아빠가 요란하게 부스럭 대는 소리에도 미동조차 없다.
유전학적으로 이해 안 되는 아이들의 큰 키는 업어가도 모를 만큼의 깊은 수면 탓이 아닐까 의심하면서 둘이 웃었다.
남편은 밖으로 나와 아파트 지상 주차장에 세워둔 차의 시동을 걸었다.
조용한 새벽에 요란한 자동차 엔진소음을 일으킨 우리는 민폐주민 같아서 얼른 아파트를 빠져나왔다.
자동차 핸들은 남산공원 주차장을 향해 움직였다.
운동취향에는 양보가 없던 우리 부부가 주말마다 남산둘레길 걷기를 함께 하고 있는 중이다.
새벽에 함께 집을 나서는 거라면 노량진 수산시장 장보기 정도가 전부였었다.
남편과 걷기 운동으로 취미를 공유할 줄은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삶의 여백에 앉아서 바라보는 일상의 풍경은 조금씩 건강한 눈높이로 성장하고 있었다.
아파트 후문으로 나가자 시야에 들어오는 남산타워는 갈월지하차도를 지나 용산고교 방향까지 길잡이처럼 우리를 안내하며 앞서갔다.
남산공원 주차장은 새벽에도 만차에 가까웠다.
남산 둘레길 북측순환로에서 이른 아침 러닝을 하는 동호회분들의 차량이 많기 때문인 것 같았다.
차를 세우고 일본군 위안부 기념비를 지나서 커다란 느티나무 쪽으로 걸어갔다.
2005년 인기 드라마였던 내 이름은 김삼순의 엔딩촬영지로 이름 지어진 ‘삼순이 계단’을 내려갔다.
남산케이블카 방향으로 조금 걷다 보면 북측순환로 남산둘레길 입구 안내센터가 나온다.
차도를 정비해서 경사가 완만하고 장애물 없는 걷기 좋은 길로 유명한 곳이다.
중앙에는 점자유도블록이 ‘배려의 길’로 표시되어 있어 시각장애인들도 무리 없이 산책을 즐기곤 했다.
한옥 음식점인 목멱산방이 위치한 초입에는 벽천분수와 실개천의 시원한 물소리까지 시선을 사로잡았다.
지하철 용수를 활용해서 운영한다는 실개천은 둘레길 양쪽에서 시원하게 고막을 자극했다.
간혹 비둘기들이 모여 물을 먹거나 담금질을 하는 모습도 생태적 볼거리가 되곤 했다.
새벽에는 무리 지어 양쪽으로 달리는 러닝크루들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같은 동호회끼리 만나면 서로 응원의 기압도 주고받으며 아주 역동적인 모습들이다.
주의할 점은 산책과 러닝 하는 사람들이 진로를 방해받지 않도록 서로 간에 배려해 줘야 한다는 것이다.
가끔 멋진 몸 근육을 보란 듯이 웃통을 벗고 달리는 팬서비스까지 해 주는 고마운? 남자분도 있다.
그런 분이 내 앞을 지나가면 옆에 있는 남편의 볼록한 배로 아쉬운 눈길이 오래 머문다.
남산 북측순환로는 무성한 나무들이 맞닿아 터널처럼 그늘을 만들어 여름에도 자외선 걱정이 덜한 편이었다.
계절마다 개성 있게 뽐내는 꽃들을 천천히 구경하는 것도 걷기의 매력이었다.
다양한 나무와 새들로 생태 및 경관을 보전하는 노력의 흔적이 곳곳에서 느껴졌다.
새벽 환경순찰을 하는 서울시 중부여가센터 관계자분들도 보였지만 다른 의미로 신경 쓰고 관리하는 분들도 계셨다.
울타리 한쪽에서 길고양이들이 아침만찬을 즐기는 모습 뒤에는 부지런한 캣맘들의 관리노력이 있었다.
비슷한 시간대에 늘 한결같이 사료를 챙기며 고양이들과 소통하고 봉사하시는 모습이 대단해 보였다.
더 놀라운 건 캣맘이 나타날 시간에는 여지없이 모여드는 고양이들의 동물적 감각이었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딸과 아들을 위해 남산의 길고양이 사진들을 찍어서 자주 가족톡방에 올리곤 했다.
나무아래 군데군데 깨끗한 벤치와 예쁜 정자도 잘 마련이 되어 있다.
한 번은 오르막을 걷다가 남편과 벤치에 앉아 땀을 닦고 있었다.
아기를 케리어에 업은 아빠와 아기엄마가 내려오다가 뒤에서 큰소리가 나서 힐끗 돌아보는 눈치였다.
다름 아닌 아침산책을 나오신 어르신들이 가던 길을 일부러 멈추시며 큰소리로 ‘우리 아기, 파이팅’을 외치고 계셨던 것이다.
젊은 부부는 응원에 답하듯 머리를 숙이고 인사를 하며 쑥스럽게 지나갔다.
출산율이 극감하고 있는 요즘에 아기와 산책하는 모습이 무척 대견스러우셨나 보다.
유모차에 타 있거나 목줄 한 강아지가 더 자주 목격되는 게 산책로의 풍경이 된 지 오래다.
인간의 종족보존이 위태로운 나라가 되어가니 어르신들의 마음의 소리가 절로 나오시는 듯했다.
남편과 다시 출발지점이자 도착점인 둘레길 초입으로 돌아왔다.
목표한 거리만큼의 땀을 흘린 러닝 동호회 사람들도 냉수를 들이키며 완주의 뿌듯함을 만끽하는 모습이었다.
누구나 같이 걷고, 무리 지어 달리고, 흰 지팡이와 함께하는 배려의 길을 품고 있는 남산둘레길이 참 좋았다.
공부를 잘하려면 우선 선생님을 좋아해야 성적이 오른다는 말이 있다.
남산둘레길이 좋아서 건강성적이 오를 것만 같았다.
앞으로도 도심숲이 주는 길 위에서의 위로와 힐링을 마다 할 이유가 없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