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친 하루 끝에 집으로 돌아와, 신발을 벗고 소파에 털썩 안는다.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이 고요함이 어쩐지 익숙하고 다정하게 느껴진다. 이상하게도 오늘따라 저녁 공기마저 따스하게 스며들고 마음에 잔잔한 물결이 일렁인다. 그 순간에 멈춘다. 아마도 우리가 찾던 위로는 이런 순간에 담겨 있는 게 아닐까싶다. 가끔은 지나가는 커피 냄새,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들려오는 새소리, 혹은 엘리베이터 거울에 비친 내 피곤한 얼굴 속에서 웃음을 지어 보는 그 찰나에 말이다.
대단한 순간이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 평범해서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그래서 알아차려야 비로소 느껴졌다. 내 방에 돌아와 작은 조명을 켜고 책을 펼쳐보는 그 빛의 포근함이나, 우연히 듣게 된 옛 노래가 내 어린 시절을 떠오르게 할 때의 아련함 같은 것. 천천히 멈추는 순간들에, 나는 일상 속에 머물어 있던 위로를 느낄 수 있었다. 이런 소소한 순간들이 마음을 설레게 만든다. 어쩌면 바로 지금 당신의 일상 속에도 이런 위로가 숨어 있을지 모르겠다.
일상 속에서 위로를 찾아내려면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보통은 바쁘게 지나치기 쉽기 때문에, 스스로에게 작은 약속을 해본다. 아침에 눈을 뜨면 창밖을 보며 오늘 하루가 시작되는 소리를 들어보는 것, 새들이 지저귀고, 이른 아침의 고요함이 느껴질 때, 그 순간을 잠시 붙잡아보는 것. 퇴근 후 집으로 돌아와 잠시 주방에서 따뜻한 물을 한 잔 마시는 습관을 만들어보는 것도 좋겠다. 손에 닿는 온기와 입에 닿는 차분한 물의 맛을 느끼며, 내 하루의 수고로움을 알아주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요즘 나는 매일 감사일기를 쓴다. 오늘 하루도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소중한 음식을 먹고 건강한 하루를 보낼 수 있음에 감사하다고. 감사함은 신체에 행복호르몬을 불러일으켜 감사한 생각을 하는 것 만으로도 우리는 실제로 행복해진다고 한다. 그런 감사함을 우리의 일상 속에서 찾으려는 의식이 매 순간 필요하다.
“오늘 아침의 공기가 맑아서 좋았어,” “따뜻한 차를 마실 수 있어서 감사해” 같은 생각을 스스로에게 전해보는 것이다. 처음에는 어색할지 모르지만, 작은 것에 고마움을 느끼기 시작할 때, 우리 마음은 조금씩 더 많은 위로를 찾아낼 수 있다. 의식적으로 사소한 것들에 감사를 표하면, 그것이 하루를 채우는 작지만 확실한 행복으로 다가온다. 이런 작은 연습이 쌓일수록 일상 속 위로의 순간은 점점 더 많아진다. 오늘 하루를 무탈하게 잘 보냈다면 또는 무탈하지 않은 하루였다고 한다고 하더라도 오히려 좋은 부분들을 생각하고 캐치하여 나의 하루를 감사히 마무리 하는 감사일기를 적어보는 건 어떨까?
저녁이 뉘엿뉘엿 저물어온다. 해가 지는 주황빛이 방안을 물들일 때쯤,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는데, 이상하게도 마음 한구석이 허전했다. 왜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지만 딱히 이유가 없었다. ‘오늘 뭐 잘못 먹었나?’ 하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넘겨보지만, 그럴수록 마음은 점점 방황하듯 정처없이 떠도는 기분이다. 마음 한쪽에서 아주 가느다란 불안감이 은근히 스며드는 것 같다. 문득, 어쩌면 이 불안이라는 감정이 무의식 속에 잔잔히 쌓여져 있었고 그 조각들이 이제서야 서서히 물 위로 떠오른 파편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알 수 없는 감정의 조각들이 조용히 마음에 파동을 일으켰다.
사실 우리는 매일 작고 사소한 감정들을 무의식 속에 숨기며 살아간다. 살짝 눌러두었던 불안감, 스쳐 갔던 아쉬움, 잠깐 밀쳐두었던 걱정들까지. 그 조각들이 무의식 속 깊은 곳에서 툭툭 내버려져 자리를 잡고 커져 가다가, 어느 날 갑자기 오늘만 기다렸다는듯이 “내 차례다!” 하고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것이다. 평소에는 큰 문제 없어 보였던 사소한 감정들이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여 가고, 그 조각들은 마치 바다 밑 모래처럼 깊숙이 가라앉아 있는다. 그러다 불쑥, 가장 예기치 않은 순간에 불안이라는 파도로 밀려온다. 마치 두더지 게임의 두더지들이 여기저기 튀어나오듯이 언제 어디서 나올지 가늠하기 어렵게 말이다.
마음속으로 조용히 다가가서 불안이라는 녀석을 슬쩍 쳐다본다. 그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무겁게 자리를 잡고 있는 듯하다. 솔직히 좀 귀찮기도 하지만, 그저 내버려 두기엔 마음 한구석이 찜찜하다. 그래서 나지막이 속삭이듯 얘기해 본다. “그래, 너 여기에 있었구나. 이유는 모르겠지만, 오늘은 내 옆에 있고 싶은 날인가보다.” 불안은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나를 멍하니 바라본다. 처음엔 조금 불편하지만, 곧 우리는 나란히 앉아 조용히 시간을 보낸다. 내 숨소리에 맞춰 불안도 천천히 한숨을 내쉬는 것 같다. 그러다 다시 들여다보면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이 감정이, 어느새 곁에 기대어 얌전히 앉아 있는 강아지 같곤 했다.
불안은 무작정 떨쳐내려 할수록 더 커지지만, 그냥 옆에 두고 가만히 바라볼 때 차분해진다.우리는 그렇게 나란히 앉아, 말없이 시간을 보낸다. 처음에는 그 불안이 거슬리는 듯하더니, 이내 함께 호흡을 맞추며 차분히 자리를 잡아간다. 그렇게 한참을 보내다 보면, 마치 묵묵히 앉아 있던 불안이 내 마음속에서 천천히 흩어지기 시작한다. 이 불안이라는 녀석이 실은 내게 ‘오늘은 잠깐 쉬어가라’고 알려주려 했을지도 모르겠다.
감정을 무시하지 않고 옆에 두는 순간, 불안은 더 이상 내게 소리치지 않는다. 오히려 ‘오늘은 이대로 있어도 괜찮아’라고 허락해주는 친구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그냥 한숨 돌리며, 그저 그 감정과 함께 있는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나면, 불안이 슬쩍 내 곁에서 떠날 때 속삭인다. “그래, 오늘은 여기까지.”
그저 “오늘은 이 기분도 좋지”라고 말해주는 것만으로도 불안은 흩어지고 그를 받아들이는 순간들이 쌓이니 불안 이 녀석도 이제 내 마음의 작은 동반자가 되어 주는 느낌이다.
우리는 항상 더 잘해야 한다는 압박을 안고 산다. 어쩌면 이건 현대인들에게 익숙한 일이지만, 때로는 그 압박이 지나치게 무겁게 느껴지기도 할 것이다. 성과를 이루지 못한 하루는 쉽게 아쉬움으로 남고, ‘오늘은 왜 이렇게 됐지?’ 하는 생각에 자신한테 실망할 때도 있었다.
성과와 목표에 집착하다 보면 가끔은 스스로에게조차 가혹해지기 마련이다. 애써 살아온 하루의 끝에, 암울한 마음이 겹치고 겹쳐 스스로에게 더 잘하지 못하였다고 채찍질 하는 하루로 마무리 하기엔 우리의 인생은 너무 아름답고 찬란하다.스스로가 자신을 탓하려는 순간, 우리는 자신을 벼랑 끝으로 몰고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그렇게 하루를 끝내고 아무도 없는 방에 혼자 있을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을 다독여야 한다. “그냥, 오늘도 애썼지 뭐. 고생많았어, 이 정도면 충분해” 별 거 아닌 듯 한마디 던져 보는데, 이 한마디가 하루의 수많은 피로를 녹여준다. 피로가 한결 가벼워지며, 오늘 내가 견뎌낸 순간들이 떠오른다. 성취하지 못한 것보다 내가 견딘 순간들에 집중하는 게 더 편안하다는 걸, 이젠 깨닫는다.
물론 모든 날이 완벽할 순 없다. 어떤 날은 그저 “오늘도 어떻게든 버텼다”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그래서 더욱 중요한 건 그런 날들에 스스로에게 다정해지는 법이다. 나에게 약간의 여유를 줄 때, 하루하루가 조금 더 따뜻해진다.
스스로를 다독이는 법을 알려주는 신은 없다. 우리 각자가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 각자 자신만의 방식으로, 어설프더라도 하루하루를 정리하며, “그래, 이 정도면 괜찮아”라고 되뇌이기만 해도 좋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사실을 되새기는 순간, 오히려 내일을 살아갈 힘이 생긴다. 하루하루 자신을 격려하는 작은 말들이 쌓이면 어느새 우리는 더 단단해져 있을 것이다.
상처는 예고 없이 찾아온다. 그냥 평범한 하루였는데, 누군가의 한마디에 마음이 찌릿하고 아려온다. 별 생각 없이 건넨 말일 텐데, 그 한마디가 자꾸 머릿속을 맴돈다. ‘내가 뭘 잘못했나?’ 싶어서 마음 한구석이 괜히 무거워진다. 그럴 때면 상처는 늘 예고 없이 다가와 나를 붙잡는다. 마치 반갑지 않은 손님처럼 말이다.
이렇게 마음이 상할 때마다 ‘왜 이렇게 신경이 쓰일까?’라는 생각이 든다. 답을 찾으려 애써 보지만, 뾰족한 이유는 떠오르지 않는다. 그저 그 감정이 내 안에 깊이 자리 잡고 흔들어 놓을 뿐이다.
처음에는 마음이 속상하기만 했다. 가슴 한구석이 무거워지고, 시간이 지나면 잊힐 것 같지만 또 어느 순간 고개를 들며 나를 괴롭힌다. 그래서 나는 어쩔 수 없이 이 상처와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된다. 처음에는 불쑥 찾아온 불청객 같았던 상처도 함께 지내다 보면 묘하게도 나를 돌아보게 만든다. 상처가 단순히 아픔만을 주는 게 아니라, 나에게 묻고 싶었던 질문들을 던지는 것 같다.
그런 경험들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기대하고 있었는지를 깨닫게 되고 스스로를 지킬 방법을 찾게 만들고, 사람과의 적절한 거리를 조절하는 법을 배우게 한다. “모든 사람에게 최선을 다할 필요는 없구나.” 이런 생각을 상활 속에서 찾아가면서, 나는 조금씩 내 마음을 지키는 법을 배운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다가온 속상한 감정들도 사실 나를 더 잘 알게 되는 시간이었다. 마음이 아프다는 사실이 처음엔 부정하고 싶을 만큼 힘들었지만, 결국 이 상처 덕분에 나는 조금씩 나를 이해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