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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초록 Sep 26. 2024

받아들이는 순간,치유는 시작된다

받아들이는 순간, 치유는 시작된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크고 작은 상처들이 우리의 내면 깊숙이 자리 잡고, 삶에 미묘한 흔적을 남긴다. 나 또한 어린시절의 상처가 있다. 계모와 함께한 유년 시절은 따뜻함이 없었고, 학대는 일상이었다. 집은 안식처가 아니라 두려움의 공간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매일 무거운 마음의 문을 닫고, 조용히 나 자신을 깊이 묻어두었다. 상처는 그렇게 나의 일부가 되었고, 그 이후 나는 세상에 스스로를 고립시켰다.


24살이 되던 해, 나는 또 다른 싸움을 시작했다. '다제내성결핵'이라는 병을 앓게 되었고, 그 치료는 쉽지 않았다. 치료를 위해 복용한 신약은 나의 몸을 점점 망가뜨렸고, 결국 '말초신경증'이라는 또 다른 부작용을 남겼다.  발끝에서부터 퍼져 나가는 저림과 마비 증상이 나를 서서히 잠식했고, 일상은 점점 흐려졌다. 다리는 24시간 마비된 듯한 고통에 시달렸고 통증은 내 하루의 시작과 끝을 지배했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난 수년의 시간동안 질문 하나로 나를 옭매여놨다. 잠을 자는 순간도 통증으로 매일 잠을 설쳤다. 몸도 마음도 고통스러웠다. 고통이 나에게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이해하기까지, 나는 여러 번 좌절하고 무너졌다. 통증은 단순한 신체적인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나를 고립시켰고, 나의 정신과 영혼을 갉아먹는 듯했다. 그리고 나 자신과 세상과의 거리를 더욱 멀어지게 했다.나는 스스로 쌓은 울타리에 끝없이 빠져 들어갔고 그 곳은 어둡고 춥고 혼자였다. 나는 깊고 어두운 숲 속에서 잃어버린 나의 영혼을 찾아야 했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나는 깨닫게 된다. 우리 모두에게는 각자의 아픔이 있고 상처는 우리 삶의 일부인 것을. 누구나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상처는 예고 없이 찾아오고, 때로는 오래전의 상처가 여전히 남아 우리 안에서 그 존재를 드러낸다. 그리고 상처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은 달라진다. 상처를 부정하고 외면하는 것과, 그것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결과를 만든다.


불안과 고통은 인간 존재의 본질이다. 불안과 고통은 삶의 기본 베이스인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사람들은 삶의 이유를 행복이라고 착각한다. 사실 우리는 행복하려고 태어난 것이 아니다. 태어났으니 사는 것 뿐이고 삶은 행복,불안,즐거움,고통 이 모든 것을 그저 오롯이 느끼고 배우기 위해 살아갈 뿐이다.


고통은 나쁜 것일까? 고통도 고통대로의 깨달음이 있다. 고통을 오롯이 받아들이다보면 깨닫게 된다. 고통은 우리에게 좋은 배움을 준다. 고통 속에서 사람들은 스스로를 더 깊이 마주하게 된다. 삶의 본질을 알게 된다.

 상처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단순한 고통이 아니라, 우리가 세상과 자신을 이해하는 중요한 매개체다. 상처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우리는 도망치거나 그것을 억누르려고 한다. 하지만 그렇게 할수록 상처는 더 깊숙이 자리 잡고, 결국 우리를 잠식해 간다.


상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은 우리에게 치유의 기회를 준다. 상처는 극복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더 깊이 성찰하고 성장할 수 있는 계기로 함께 나아가야 할 대상이다..


상처는 인간으로서의 연약함을 드러내지만, 그 연약함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우리는 진정으로 강해진다. 상처를 억누르려는 시도는 우리를 더 고립시키지만, 상처를 있는 그대로 마주하는 것은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이 글을 보는 너는 그 때 그리고 그기서 어떤 아픔을 겪었을까? 그 아픔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이유가 뭘까? 이미 지나간 과거에 담긴 아픔을 왜 놓지 못하고 있는걸까.. 결국, 상처가 나를 규정짓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 상처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하느냐가 나를 결정한다.


상처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것을 나의 일부로 인정하고, 그 속에서 내가 누구인지 조금 더 깊이 이해하는 과정이다. 고통스러울 수 있지만, 그 고통 속에서 우리는 진정한 나를 만나고, 삶의 본질에 조금 더 가까워진다. 상처는 피할 수 없지만, 그 상처를 받아들이므로 우리는 더 깊고 단단해진다.


상처를 받아들이는 방법


삶의 상처는 단순히 고통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가 세상과 자신을 이해하는 방식에 깊은 흔적을 남긴다. 우리는 상처를 통해 자신을 보호하려 하고, 때로는 그 상처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기도 한다. 상처를 억누르려 애쓰는 대신, 그것이 나의 일부임을 받아들이는 것. 그 과정을 통해 비로소 삶의 진실을 배우게 된다.



'인지 행동 치료(CBT)'와 사고의 전환


나의 상처는 단순한 고통 그 이상이었다. 그것은 트라우마였고, 트라우마는 흔적을 남긴다. 그 흔적은 일상을 조금씩 잠식하며 나를 고립시키고 약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심리학에서는 '회복탄력성'이라는 개념을 이야기한다. 아무리 깊은 상처라도, 우리는 그로부터 다시 일어설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중요한 건 그 힘을 어떻게 발견하고, 또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있다. 상처를 억누르거나 외면하는 대신,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첫걸음이었다.


고통이 나를 완전히 삼키기 전에, 나는 작은 변화를 시도했다. 거창한 건 아니었다. 그저 하루하루를 버티기 위한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해본 건 '인지 행동 치료(CBT)'와 사고의 전환이었다. 고통 속에서 부정적인 생각들이 나를 잠식하는 순간들이 많았다. "이 고통은 끝나지 않을 거야", "이 병 때문에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같은 생각들이었다. 하지만 그 생각들을 조금씩 바꾸기 시작했다.


부정적인 생각을 인지하고, 그 생각을 조용히 반박해 보는 연습을 했다. "고통은 존재하지만, 그것이 내 모든 가능성을 막을 수는 없어", "오히려 이 기회에 나 자신을 더 잘 알게 될 거야"라고 스스로에게 말하며, 생각의 방향을 조금씩 바꿔나갔다. 그런 작은 전환들로 나는 조금씩 마음의 근육을 키워나갔다. 큰 변화는 아니지만 노력과 이겨냄의 시간이 쌓여 난 조금씩 치유의 힘을 얻게 되었다.


결국 고통과 상처는 삶의 일부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것이 나를 삼키도록 두지 않는 선택은 언제나 나의 몫이다.


'마음 챙김 명상(Mindfulness Meditation)'


통증을 완전히 없앨 수 없었기에, 나는 그 통증과 공존하는 방법을 배워야 했다. 두번째로는 '마음 챙김 명상'을 추천한다. 명상은 도대체 무엇일까? 명상은 지금 이 순간 나 자신을 인지하고 알아차려주는 것이다. 길게도 아닌 하루에 5분에서 10분 정도, 조용한 곳에서 앉아 내 호흡에 집중하고, 현재 순간에만 머무르려고 노력해본다. 고통이 느껴지면 그것을 억지로 없애려 하지 않고, 그 고통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받아들이는 연습을 했다. 명상은 통증을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었지만, 통증에 대한 나의 반응을 느슨하게 변화시켰다. 빠르게 흘러가는 감정 속에 조금 더 숨을 고르는 여유를 갖게 되었고 그 여유는 나에게 서두르지 않고 조심조심 나아가는 법을 깨우치게 했다. 오로지 지금 이 순간에 집중 하다보면 고통도 아픔도 생각보다 덜 괴로운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고통을 '나쁜 것'으로 여기기보다, 그저 당연한 감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함으로써 나는 매 순간의 시련을 차분하게 흘려보내게 되었다.



'신체적 한계 속에서 찾은 작은 움직임'


말초신경병증으로 인해 과도한 운동은 어려웠지만,작은 신체 활동을 통해 마음의 균형을 찾기 시작했다.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날이면 끝없이 우울에 빠졌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날엔 난 뭐든 할 수 있었다. 그리고'스트레칭'이나 '간단한 요가', 혹은 짧은'산책,러닝'들은 통증을 줄여주진 않았지만, 나의 몸과 마음을 다시 연결 해주고 작지만 확실하게 회복시켜 주었다. 통증이 심할 때는 숨을 깊게 들이쉬고 내쉬며 몸의 긴장을 풀어주는 간단한 '호흡 운동'을 하기도 했다. 숨을 깊게 들이쉬고, 천천히 내쉬는 것만으로도 몸의 긴장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때로는 이런 작은 움직임들이 하루를 버티게 해주는 유일한 힘이 되어 주었다.


삶을 다시 바라보기 '감사 일기'


고통 속에서 나는 소소한 것에 감사하는 습관을 들였다. 매일 밤 '감사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감사할 만한 것을 찾는 것조차 어려웠다. 하지만 차츰 아침에 눈을 뜨는 것, 평온한 집, 밥을 먹을 수 있는 것, 따뜻한 차 한 잔, 책을 읽을 수 있는 것 같은 것들이 내가 붙잡을 수 있는 작은 희망임을 알게 되었다. 그런 작은 것들을 기록할 때마다, 마음이 조금씩 가벼워졌다.


고통이 나를 지배할 때면 고통과 싸우기보다는, 고통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는 '정신적 피난처'를 찾았다. 책을 읽으며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서 잠시 고통을 잊었고, 그림을 보며 내 감정에 공감하고 위로를 받았다. 특히 심리적 통찰을 담은 책들은 내 내면을 다독이는 데 큰 도움이 됐다. 미술이나 음악 같은 예술에 몰입하는 시간들은 고통을 잠시 잊고, 나만의 평화로운 공간을 만들어주었다.


고통은 여전히 내 곁에 있었지만, 나는 그 속에서 잠시 숨을 고르는 법을 배워가고 있었다.



상처를 통한 성찰


키르케고르는 '불안과 고통 속에서 인간은 자신의 존재를 깨닫는다'고 말했다. 불안과 고통은 그 순간 견디기 어려울지 모르지만, 결국 우리에게 깊은 깨달음을 안겨주고,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의 일부가 된다. 이 말의 진리는 불안과 고통을 직접 겪어본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으며, 그 이후의 깨달음도 같은 경험을 한 사람만이 깨달을 수 있다. 불안과 고통은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더 큰 성찰을 이끌어내는 통로일 뿐이다. 결국 불안, 고통, 그리고 고뇌는 그것을 받아들일 힘을 가진 자만이 온전히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나의 고통도 단순히 육체적인 문제에 그치지 않았다. 그것은 나를 나 자신에게로 이끌었다. 나는 그 고통 속에서 나의 연약함과 마주해야 했고, 그 연약함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갔다.


상처는 나를 무너뜨렸지만, 동시에 나를 더 깊이 이해하게 했다. 니체는 "고통은 나를 강하게 만든다"고 했지만, 나에게 고통은 단순히 강해지기 위한 수단이 아니었다. 오히려, 고통은 나에게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었다. 나는 이 말에 부분적으로 공감하면서도, 고통 자체가 하나의 의미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24시간 이어지는 통증 속에서도, 나는 매 순간을 더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고 있었다. 통증과 고통은 내가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해주었고, 매 순간에 감사하게 만들었다.


상처는 나만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모두가 겪는 인간의 보편적인 경험이다. 우리는 각자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나의 고통을 통해 나는 타인의 상처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고, 그들에게 진심으로 공감할 수 있었다. 상처를 마주하는 일은 어렵지만, 그것이야말로 우리를 진정한 나 자신으로 이끄는 길이다. 비록 걸음은 느리지만, 나는 그 과정 속에서 나만의 리듬을 찾아가고 있다. 상처는 나를 무너뜨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은 나에게 새로운 길을 가르쳐주었다.



불완전함 속에서도 길은 있다


삶은 늘 불완전하다. 우리는 그 불완전함 속에서 살아간다. 삶의 여정에서 상처와 고통은 피할 수 없다. 상처와 고통은 우리의 일부이며,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치유의 시작이다. 나는 통증을 없앨 수는 없었지만, 그것을 나의 삶의 일부로 받아들였다. 상처를 껴안고 살아가는 법을 배울 때, 비로소 우리는 성장을 시작할 수 있다.


내 발걸음은 느리고, 고통은 여전히 나를 따라다닌다. 하지만 그 고통 속에서 나는 새로운 나를 발견하고, 나만의 길을 찾아가고 있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아마 자신의 상처를 안고 있을 것이다. 그 상처가 나와 다를지라도, 고통은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경험이다. 중요한 것은, 그 고통 속에서도 우리가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다시 찾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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