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에도 논어를 읽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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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hilelife

저는 가끔 마음이 어지러울 때 논어를 찾아 읽고는 합니다. 그래서 가끔 직장에서도 점심 시간에 제 자리에 앉아 논어를 읽습니다. 그럴때마다 논어는 꼭 한문 원문으로 된 책을 펼쳐 읽습니다. 한자를 하나하나 곱씹어보아야 그 의미가 뼛속 깊이 전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연히 이 한문으로만 가득한 논어 책을 목격하신 몇몇 분들의 반응은 두 가지 정도로 나뉩니다.


반응 1 : "와! 논어를 읽으세요? 신기하고 대단해 보여요."

반응 2 : "AI가 발달하고 있는 21세기에 논어를 꼭 읽어야 하나요?"


두 반응 모두 이해가 가능합니다. 저 또한 우연히 한문을 공부하지 않았다면 한문으로 된 책을 들고 있을리 없으니까요. 게다가 지금은 첨단 과학 시대입니다. 온갖 정보가 넘쳐나는 이 시대에 이천년도 더 지난 사람의 말과 행동을 기록한 책인 논어에 관심을 둘 이유를 찾기란 어렵습니다.


논어는 삼엽충 화석이나 구석기시대에나 사용했던 돌도끼처럼, 구시대의 유물에 더 가까워 보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도 제가 꾸준히 논어를 읽는 이유, 부끄럽지만 고백해보려고 합니다.



1. 무늬만 모범생이었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때까지 매우 바람직한(?) 학생이었습니다. 교과서와 사전을 학교에 두고 다니는 것은 학생의 본분이 아니라고 들었습니다. 매일 가방이 터지도록 사전과 교과서를 가방에 꾸역꾸역 넣어 그 무거운 책가방을 메고 매일 등하교를 했습니다. 덕분에 만성 고관절 통증과 허리 통증에 시달렸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한 켠에 급식실이 한참 지어지고 있던 도시락 마지막 세대입니다. 덕분에 도시락을 점심, 저녁 두 개씩 싸다녔습니다. 학급 친구들은 대부분 2교시 쉬는 시간에 도시락을 까먹고 저녁 식사 시간이 되면 담을 넘어 주변 분식집에 가거나 자장면을 시켜먹기도 했습니다. 속으로 참 부러웠습니다. 그런데 단 한번도 해보지 못했습니다. 학교의 모든 규율을 철저히 지켰습니다.


도대체 왜 그랬냐고요? 바른 삶에 대한 원칙이 있었냐고요? 절대 아닙니다. 그저, 부모님이 바라는 대로, 선생님이 하지 말라는 대로 사는 것이 최선이라 여겨서였습니다. 잔소리를 듣거나 된통 혼이 나는 것이 싫었습니다. 그래서 사실은 무늬만 모범생이었습니다. 진짜 속내는 대충대충 건성건성이었죠.


제대로 된 목표도 없었기에 공부도 야단맞지 않을 정도로만 적당하게 했습니다. 수업 중에도 야단을 안맞을 정도로, 적당히 한눈을 팔았고요. 항상 머리 한켠으로는 다른 세계에 빠져 현실을 외면하며 살았지요. 그런데 수능 날, 딱 걸렸습니다. 다른 친구들은 수능이 쉬워서 다들 성적이 올랐다는데, 나는 평소보다 성적이 더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한마디로 수능을 망쳤습니다.


크게 바라는 것도 없었기에 대충 성적에 맞추어 원서를 작성했습니다. 학과를 조금 더 낮추어 국문과를 지망하면, 원래 가려던 대학 정도는 갈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면 그럭저럭 살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부모님은 최대로 하향 지원할 것을 권했습니다. '재수'는 있을 수 없다며 제 적성에 맞지 않는 독일어 전공을 강요했습니다. 원서 쓰는 기간 내내 부모님을 설득했지만 실패했고 저는 뜻하지 않은 학과 선택에 절망했습니다.




2. 우울의 계절이 오래 떠나지 않았습니다.




캠퍼스의 낭만은 그렇게 시작부터 어긋났습니다. 싫어했던 과목이 전공이 되니 대학 수업에 흥미가 생기지 않았습니다. 수업을 자꾸 빠지고 자연스레 친구 사귀는 것도 어려웠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소외감은 커져갔습니다. 나만 제외하고, 다른 학생들은 모두 수업 시간이 즐거워 보였습니다. 함께 모여 밥을 먹으러 다니고, 미팅이며 소개팅을 하는 모습들이 부러웠습니다.


나만 홀로 뒤처져 있는 듯했습니다. 갈수록 대학 수업에 빠지는 날이 더 많아졌고 심지어 시험도 보러가지 않았습니다. 등록금을 내어주는 부모님께 죄송해서 겨우 용기를 내 학교에 가는 날은 대학 교문을 바라보기만 해도 답답함이 밀려와 한숨부터 내쉬었습니다. 비참했습니다.


그런 어느날, 캠퍼스 잔디밭 구석진 곳에 쭈그려 앉아 다음 수업 시간을 기다리고 있으려니 한 여자분이 다가와 알은체를 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학생, 참 힘들어 보이네요. 기분이 우울한가요? 학생이 교문에 들어서는 모습을 제가 보았는데요, 마치 먹구름도 함께 몰려오는 것 같았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얼마나 위로가 되던지, 그 분 손을 잡고 엉엉 울고만 싶었습니다. 부모님도 몰라주었던 답답했던 내 마음을, 이렇게 알아주는 이는 처음이었습니다. 그녀는 캠퍼스를 돌며 '도(道)를 아시나요'를 묻는, 그런 분이었습니다. 저는 익히 알면서도 다음 수업을 빼먹고 그녀를 따라갔습니다. 제사를 지내면 운이 풀린다는 말에 전 재산 '만원'을 털어 장을 보고 제사도 드리고 왔습니다.


그런데 막상 집에 돌아와 생각해 보니 스스로가 우스웠습니다. 지나고 보니 모르는 사람을 덜컥 따라갔다는 것 부터 아찔한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제사까지 지내고 왔지만 현실은 달라지는 것이 없었고, 오히려 이성적 판단을 잃었다는 사실에 스스로 자책하며 비참함만 더해젔습니다.


방황은 더 해갔습니다. 시험을 보는 날에도 학교에 가지 않았습니다. 대학 생활 내내 낙제점수만 받다가 등록금이 아까워 휴학만 2년 넘게 했습니다. 어른들이 말한 것처럼, 대학에 들어가면 다 해결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뼈져리게 느꼈던 우울의 계절이, 끝나지 않은 장마처럼 계속되었습니다.




3. 뿌리 깊이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내 삶이 아닌 다른 이의 삶만 바라보며 부러워했던 그 순간이 스쳐갑니다. 왜 그렇게 방황했을까 생각해보면, 내게는 가장 중요한 것이 한 가지가 없었습니다. 바로 가치관이었습니다.


꽤 많은 고전 소설을 읽었습니다. 그렇다면 내 안에 많은 것이 쌓여야하는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남에게 보이는 독서를 하고, 소설을 읽는다는 핑계로 남의 인생을 흥미거리로 엿본 것일 뿐이었습니다. 독서를 통해 '나'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하는데, 단 한번도 나를 돌아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 아이가 대학생이 되어서야 '너의 삶에 대해 생각해'라는 종용을 받게 되었습니다. 시간표도 직접 짜야했고 동아리 활동도 스스로 선택해야 합니다. 중간중간 남는 시간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가도 내가 선택해야 했고 친구도 내가 선택해야 했지요. 그런데 이 '선택'이라는 것은 내가 지향하는 삶이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이 깔려 있는 행위입니다.


그러나 나는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살고 싶은 지, 아무것도 스스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 결과 나는 손발이 묶인 채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나이만 어른이 되어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저 환경만을 탓하고 있었습니다.


대학에 입학한 뒤 4년을 그렇게 방황했습니다. 고등학교 때 친구들은 졸업을 앞두고 취업을 알아보기 시작할 즈음이었습니다. 그러자 마음이 다급해졌습니다. 3개월 수능 공부 후 다시 신입학으로 대학에 지원했습니다. 이번에는 학교와 학과 모두 제가 선택했습니다. 감사하게도 공부한 기간에 비해 무난히 합격했습니다. 처음으로 내 미래를 내 손으로 설계해 성공을 맛본 순간이었습니다.


KakaoTalk_20240221_113222862.jpg 그림 강지수의 모란 / 어둠 속에서도 빛나게 피어난 꽃이 인상적이다. 우리 삶도 그러하길.



4. 논어가 말했습니다. 흔들려도 된다고.



이렇게 하여 늦깎이 대학생으로 처음 만나게 된 책이 <논어>였습니다. 처음 한문 공부를 하는 학생들을 위해 논어의 유명한 구절이나 쉬운 구절을 찾아 한문 그대로 강독을 하는 수업이었습니다. 교과서 속에서나 보던 공자, 논어와 처음으로 대면하게 된 순간이었습니다.





"감히 죽음에 대해 묻습니다."


"敢問死."

감 문 사


- 논어 선진 11 -




간단한 이 문장은 공자의 제자인 자로가 공자에게 했던 질문입니다. 한참 삶의 방향을 찾지 못해 헤매고 있을 때, 이 문장과 대면했습니다. 대학에 새로 들어오기는 했으나 저는 여전히 불안했습니다. 내가 싫어하는 과목을 전공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만 있을 뿐. 앞으로의 삶이 막막하고 빛도 없는 동굴처럼 느껴지는 건 여전했지요.


이 질문은, 나 또한 누군가에게 간절히 묻고 싶은 것이었습니다. 남들보다 출발선은 한참 늦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도 알지 못하겠고. 다른 친구들은 벌써 취직하여 자기 삶을 찾아가는데, 나라는 인간은 참으로 한심하다 느꼈던 그 시절. '산다는 것'이 벌써 지겹게 느껴졌던 20대였습니다. 정말로 삶이 죽음보다 나은지 알고 싶었습니다.


이 제자의 질문에 공자는 어떻게 대답하였을까요? 나는 큰 기대를 가지고 공자의 대답을 읽어 내려갔습니다.





공자가 말했다.

"아직 삶도 알지 못하는데 어찌 죽음을 알겠느냐."


曰 "未知生, 焉知死?"

왈 "미 지 생, 언 지 사?"


- 논어 선진 11 -




'뭐야, 이거?'

허탈했습니다. 뭔가 현학적이고 멋진 말을 기대했는데, 막상 공자의 대답은 소탈하기 그지없었습니다. 그러나 허탈함은 잠시, 그 여운이 깊게 남아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마음에서 떠나지 않는 이 문장을 정복해보고 싶었습니다. 하루 종일 사전을 뒤적이며 한 글자 한 글자를 음미하며 곱씹었습니다. 제대로 된 독서를 처음 해보게 되었습니다. 나에게 질문하며 너는 누구냐며 묻는 그런 독서였습니다.


이렇게 한 문장을 여러번 읽어보니 또 다른 것이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동양의 최고의 스승님인 어른이 '삶'을 모른다고 했습니다. 제자가 묻는데도, '모른다'라고 솔직하게 대답했습니다. 신선했습니다. 게다가 면박을 주는 듯한 그 문장에서 되려 따뜻함마저 느껴졌습니다. 죽음에 호기심을 갖는 나와 같은 젊은이에게 '떼지'하며 떼어놓으려는 사랑의 힘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우물로 기어가는 아기를 어른이 번쩍 들어 올려 안아주는 듯 안도감을 주는 대답이었스빈다.


서서히 마음속에 물음표 대신 느낌표가 그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나보다 더 오래 살았던, 나보다 더 많은 공부를 했던 어르신도 모르는 것이 바로 '삶'입니다. 그런데 이제 20대 중반도 채 되지 않은 데다 제대로 공부해 본적 없는 내가 삶에 대해 모르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나의 방황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또한 앞으로도 나의 방황은 계속될 예정이라는 예감이 들었습니다. 공자만큼 살아내고 공자만큼 공부해도 모를 것이 '삶'이니까요. 그러니, 앞으로도 방황하고 헤매더라도 스스로를 탓하지 말자고 다짐해 보았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니 스스로를 부끄러워하며 자꾸 움츠리기만 했던 내게, 용기라는 것이 조금쯤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공자보다 더 살아봐야겠다고, 공자보다 더 공부해 봐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야 죽음을 논할 수 있는 자격이 생길 수 있는 것이라고 말이예요. 물론 공자만큼 공부하려면 앞으로 이백 년은 더 살아야 할 것 같습니다만, 20대에 만난 논어가 그 순간 날 살린 것임은 틀림없습니다.




5. 그래서, 21세기에도 논어를 읽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며 겪은 우울증은 나의 20대 전체를 온통 뒤흔들었습니다. 쉽게 떨어지지 않고 끊임없이 나를 보잘것없게 만들고, 삶보다는 죽음에 호기심을 갖게 만들고는 했습니다. 다시 들어간 대학에서 논어를 만나고 나서도, 우울증은 바로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가족과 떨어져 홀로 공부에만 매달리니 더욱 깊은 우울증이 찾아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시간을 견딜 수 있게 붙들어 준 것은 역시, 부모님의 삶과, 가슴을 울리는 공자의 말들이었습니다.


살아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없을 때도 우리는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생명이 가진 길이니까요. 다행인 것은, 이천 년 전이건, 지금이건 간에 사람 사는 이치는 비슷하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저는 21세기에도 논어를 펼쳐 들고 공자와 공자의 제자들을 만나러 갑니다.


공자와 공자의 제자들이 만들어낸 변주곡, 논어 안에서 공자와 공자의 제자들 사이에 끊임없이 오가는 질문과 대답들을 읽고 있으면 나도 어느새 그 속에 끼어들어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어떻게 질문해야 할까 고민하게 됩니다. 논어의 문장들은 스스로의 삶을 점검하라며 끊임없이 말을 겁니다.


'그 옛날에 살던 우리도 이렇게 고민하며 살았어. 그런데 너는 지금, 얼마나 고민하며 살고 있니?' 라고 말입니다.


아직도 가끔, 우울할 때면 이 문장을 찾아 읽고는 합니다. 인간관계가 힘들 때, 삶에 대해 잘 모르겠다 여겨질 때, 이 문장을 읽으면 그때의 내 모습이 떠올라 홀로 미소짓게 됩니다. 죽음보다 삶을 노래했던 공자, '죽음'에 호기심을 갖지 않도록 '떼지'해줄 수 있는 공자, 젊은이들 앞에서 '모름'을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공자를 만날 수 있어 행복합니다.


내가 행복해서, 내 주위의 다른 많은 사람들도 함께 논어를 읽었으면 하고 바랍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선생님을 추천해주고 싶은 것 처럼 말이에요. 그리하여 저는 오늘도 논어를 읽습니다.













*아래는 논어 선진 11장의 전문을 실었습니다.



계로가 물었다. "귀신을 섬기는 일에 대해 여쭙습니다."

공자께서 답하셨다. "아직 사람도 잘 못 섬기는데 어찌 귀신을 잘 섬기겠느냐."


"감히 죽음에 대해 묻습니다."

대답하셨다. "아직 삶도 잘 모르는데 어찌 죽음을 알겠느냐."


季路, 問"事鬼神." 子曰 "未能事人, 焉能事鬼."

계 로, 문 사 귀 신 자 왈 미 능 사 인, 언 능 사 귀


"敢問死." 曰 "未知生, 焉知死."

감 문 사 왈 미 지 생, 언 지 사


-논어 선진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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