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의 현자와 서양 청년이 공감한 삶의 이치

논어 위정 2, 논어 팔일 20

by whilelife


1. 얼 나이팅게일의 '사람은 생각하는 대로 된다.'


'나는 성취감에 대해 전혀 몰랐지만, 가난은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가난은 다른 아이들은 괴롭히지 않는 것 같았지만 나만은 지독하게 괴롭혔다.'


<사람은 생각하는 대로 된다>의 저자 얼 나이팅게일의 말입니다. 얼 나이팅게일은 대공황이 한창인 1933년, 캘리포니아 남부에 살았습니다. 아버지는 집을 나갔고 어머니는 재봉틀 공장에 나가 한 달에 55달러를 벌어 텐트촌에서 세 형제를 길렀다고 하지요. 그래서인지, 얼은 유독 궁금한 것이 있었다고 합니다.

"왜 어떤 사람은 가난하고, 어떤 사람은 부자가 되나요?"


얼은 텐트촌 주변 어른들에게 물었지만 제대로 대답해주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얼은, 어쩔 수 없이 어른들에게 해답을 찾는 것을 포기하고 책 속에서 그 해답을 찾기 위해 롱비치 공공도서관을 찾아 책을 읽기 시작했지요. 그렇게 다양한 책을 읽던 얼은 스물 아홉의 젊은 나이에 마침내 깨달았다고 합니다. '사람은 생각하는 대로 된다'라는 것을요.


'얼'은 이 진실을 요약해 방송으로 전파하고 책으로 알렸습니다. 이렇게 '얼 나이팅게일'의 '사람은 생각하는 대로 된다. We become what we think about.'라는 책은 시대를 초월한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저는 논어의 한 구절을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사무사(思無邪)', 생각에 사특함이 없다는 뜻입니다.


00.png



2. 공자의 사무사(思無邪)







공자가 말했다.


"시 삼백 편을 한 마디 말로 정리해 보자면,

생각에 삿됨이 없다는 것이다."


子曰 詩三百 一言以蔽之 曰 思無邪

자왈 시삼백 일언이폐지 왈 사 무 사


- 논어 위정 2 -




삿됨은 '사특함'이라고도 해석합니다. 이는 현대인에게 어려운 단어입니다. 사실 저 또한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것인지 자신이 서지 않습니다. '간사할 사(邪), 사특할 특(慝)'으로 이루어진 단어, 사특함. 이를 '네이버 국어사전'에서 검색해 보면, '요사스럽고 간특하다'라고 정의되어 있습니다. '네이버 한자사전'에는 '못되고 악함'이라고 설명이 되어 있지요.


'사특함'이라는 것이 요사스럽고 간특하며 못되고 악한 마음 상태라고 한다면, 이는 곧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마음상태에 대한 이야기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를 토대로 공자의 말을 다시 생각해 보면, "<시경>에 담겨있는 시 삼백여편의 공통된 특징은 바로 시의 중심 생각을 보니 악한 것이 없다."로 정리해 볼 수 있겠습니다.


<시경>의 시는 당시 민간에 널리 유행했던 노래의 가사를 공자가 삼백여편으로 추려 정리한 것이라고 합니다. 당시 외교의 공식석상에서 <시경>의 시는 자주 인용되었기에, 당시의 석학들에게 <시경>은 매우 중요한 공부의 대상이었습니다.


<시경> 시의 효용이야 이래저래 많다고들 하지만, 당시의 석학들이 배워야 했던 시, 학자들이 널리 애송했던 시편들을 보고 공자가 '사특함이 없음'에 주목한 까닭은 무엇일까요? 나는 이 부분이 매우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도 20여 년이 지난 후에야, '사람은 생각하는 대로 된다'라는 책을 읽다가 어렴풋이 그 해답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공자가 말했다.

"<관저>라는 시는 즐거워하면서도 음란하지 않고

슬퍼하면서도 속상한 데까지 이르지는 않는다."


子曰 "關雎, 樂而不淫, 哀而不傷."

자왈 "관저, 락이불음 애이불상."


- 논어 팔일 20 -




공자는 <시경>의 첫 번째 시 <관저>에 흐르는 감정이 중립적이라고 평하고 있습니다. 한쪽으로 심하게 치우치지 않는 적당한 선에서의 감정처리, 악함이 없는 시의 중심 생각. 이것이 공자가 정리한 <시경> 시의 특징입니다.


학자들이 자주 읽어 암송해야 하는 시가 바로 <시경>이었음을 생각해 볼 때, <시경> 시의 감정과 내용은 학자들에게 무의식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봅니다. 나도 모르게 작동하는 무의식의 영역에 의해 나의 생각과 감정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면 좋은 영향을 받을 수 있도록 애쓰는 것이 좋겠지요.


공자가 <시경> 시의 '사특함이 없음'에 주목한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사람은 생각하는 대로 된다'고 믿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고 말입니다.




3. 20대의 나에게 '사무사'는 어려웠다.




돌이켜 보면, 20대 때 매일 듣고 찾는 노래가 슬픈 것들이었습니다. 슬프고 비극적인 사랑이야기, 혹은 공포스러운 이야기 등 자극적인 이야기들을 담은 책과 뮤지컬, 영화도 매우 좋아했습니다. 원래 20대의 감정이 그래서인지, 제 취향이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확실한 것은 20대의 내 감정은 우울, 슬픔, 비탄, 고독, 외로움이 주가 되어 비관적이었다는 것입니다.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한쪽에 치우친 감정과 가치관은 스스로를 고립시킵니다. 특히나 부정적인 시선은 나 자신을 그런 상황으로 더욱 빠져들게 하는 수렁을 스스로 만들어내는 꼴이 되는 것입니다. 저 또한 이런 음악에 빠져 살았을 때에는 스스로의 재능과 노력을 낮추어보느라 나를 사랑할 줄 몰랐습니다. 하는 일은 온통 망가지고 지원하는 시험마다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시경> 시는 어떤가요? <시경> 시는 곧 노래입니다. <시경> 시의 균형 잡힌 감정과 인지상정에 잘 맞는 내용들은 학자들에게 있어서 생각과 감정이 올바른 균형상태를 유지할 수 있게 하는 무의식의 재료가 됩니다. 공자는 학자들의 마음밭이 풍요로워지기를 바랐던 것이 아닐까요? 공부도, 마음이 먼저 안정된 상태에서 술술 풀려나가는 법이니까요.


여기에까지 생각이 미치자, 세세한 부분까지 후학을 배려한 공자의 생각들에서 사랑을 발견하게 됩니다. 시행착오를 거치지 않고 더 빠르고, 더 쉬운 길로 인도하고자 하는 스승의 신념이 느껴집니다. '얼 나이팅게일'은 또 어떤가요. 힘든 시절들을 겪으며 발견한 진실을, 아낌없이 다른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자 했던 그 마음 또한 따뜻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렇게 20세기 서양 청년과 공자가 만났습니다. 바로 내 마음속에서 말이지요. 이천 년 전에 살았던 공자의 말과, 1950년대에 삶의 진실을 깨달았다는 얼 나이팅게일의 말이 내 안에서 만나 공명을 합니다. 동양과 서양, 고대와 현대, 노인과 청년, 두 사람은 달라도 너무 다릅니다. 그런데도 두 사람 모두 한 방향을 가리키는 것을 보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그 진리는 우리와 가까운 곳에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사무사.png











이전 03화모나지 않은 모난 그릇의 자아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