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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y Oct 24. 2021

선인장은 사실 물을 좋아한다

Revised on Oct 24, 2021


작년 봄 옥상에서 빗물을 머금고 있는 나의 용신목 선인장



식물을 처음 기르는 사람들이 키우기 가장 쉬울 거라고 생각하는 식물은 선인장일 것이다. 왜냐면 물 주기를 게을리해도 쉽게 죽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틀린 말도 아니고 틀린 생각도 아니다. 하지만 선인장의 속사정은 조금 다를 수 있다. 사막에서 살아남은 선인장은 물을 좋아하는 식물이다. 다만 거칠고 메마른 사막에서 살아남으려 누구보다 열심히 버티는 것일 뿐이다. 나는 이 사실을 많은 사람들이 알아줬으면 좋겠다.


선인장은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사막에서 자라는 식물이다. 비가 잘 내리지 않는 사막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몸에 최대한 많은 물을 저장한다. 물이 부족한 선인장은 육안으로 봐도 비쩍 말라있고, 물을 주고 하루정도 지나면 비쩍 말라있던 몸이 다시 물을 머금어 통통해져 있다. 그래서 건강한 선인장을 만져보면 단단하고, 잘라보면 그 안에 수분이 가득하다. 그리고 반대로 죽어가는 선인장은 몸통이 말랑말랑하고 표면이 쭈글 하고, 잘라보면 안에서부터 썩어있다.


나는 선인장을 보면 너무 안쓰럽다. 살아남기 위해 좋아하는 것(=물)을 절제해야 하고, 물을 달라고 티를 내는 식물이 있는가 하는 반면에 선인장은 그런 티를 내지도 않는다. 그리고 자신을 보호하기 위하여 뾰족한 가시를 온몸에 두르고 있다. 하지만 기특하게도 추위에도 더위에도 잘 버텨주고, 상처가 나면 그 부분이 어느 부분보다 단단하게 아문다. 마치 다시는 그 부분에 흠집 하나 안 날 거라는 듯이 말이다. 


선인장을 가장 애정하고 사랑하지만, 선인장을 볼 때마다 나는 선인장 같은 사람은 되지 말자고 생각한다. 선인장처럼 최대한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티지 말고, 물이 고프면 고프다고 티도 내고, 괜히 가시 둘러서 먼저 다가오는 사람들 찌르지 말아야지 하고. 그러다 겉은 멀쩡해 보여도 속부터 물러서 썩어버릴까 봐 두렵기 때문이다.


자신의 몸이 썩어가는 도중에도, 선인장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바로 썩은 부분을 잘라준다면 선인장은 잘린 부분에 튼튼한 상처를 안고서라도 다시 살아난다. 하지만 선인장의 한 부분이 썩어버렸다해서 바로 포기해 버린다면, 그 선인장은 며칠 내에 썩은 부분이 온몸에 퍼져 죽어버린다.


상처 입은 후 더 단단해진 나의 용신목 선인장


위의 용신목 선인장은 실제로 내가 키우던 선인장의 사진이다. 과습으로 인하여 윗부분이 물러져 버렸다. 나는 처음으로 산 용신목 선인장이 아까워 자를 엄두도 내지 못하였는데, 저 부분을 자르지 않으면 전체를 잃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는 용기를 내어 칼을 소독하여 물러버린 부분보다 훨씬 더 많이 잘라내었다.


잘라진 선인장 단면은 너무나 여리고 깨끗했다. 나는 절반 이상 잘라진 선인장이 살아날 수 있을까 걱정했다. 잘라진 부분이 화상을 입지 않게 그늘에 일주일 정도 적응을 시켜준 다음 해가 잘 드는 곳에 다시 놓아준다.


그러고 몇 주가 지나면, 그렇게 여리고 깨끗했던 단면은 굳은살이 배긴 것처럼 더 단단한 보호막이 생긴다. 그리고 더 이상 자라지 않을 것 같던 선인장은, 잘린 단면에서 새로운 몸통을 다시 키워낸다.



포기하지 않고 계속 새로운 싹(자구)을 틔워내는 용신목 선인장


선인장 하나가 그 어떤 무엇보다, 그 누구보다 큰 깨달음을 준다.


선인장은 사실 물을 좋아한다. 다만 누구보다 열심히 버티는 중일뿐이다. 그리고 버티고 버텨 결국 보란 듯이 선인장은 세상에서 가장 예쁜 꽃을 피운다.



(*선인장이 물을 좋아한다 해서 실생지인 사막이 아닌 실내 화분에서 자라는 선인장에게 필요 이상의 물은 익사시키는 것과 같다.)



나의 비화옥 선인장 꽃 (사진: 나)



나의 흑룡각 꽃 (사진: 나)



나의 단모환 선인장 꽃 (사진: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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