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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적작가 Apr 19. 2024

영하의 날씨 구독일기:6.하이볼을 기대했는데

영하의 날씨 구독일기 :기록취미


하이볼을 기대했는데…


하이볼을 기대했는데…

지금,
내 손에 있는 것은 맥주~
내 배에 든 건 비빔라면~

숨 쉬기 힘들다
졸음이 온다

에이, 모르겠다
걷기는 물 건너갔다



내 맘속에 담긴 하이볼~~


오늘은 금요일. 저녁 스케줄이 없다. 이거 이거 그냥 넘길 수 없는 날이다. 냉장고에 있는 주류를 살펴보았다. 김 빠진 청주. 와인은 없고 소주 한 병. 그리고 양주. 주류를 멀리한 티가 난다. 오늘은 하이볼이 당기는데. 이대로 있을 수는 없지. 딸아이와 마트에 가기로 했으니. 간 김에 맥주를 사야겠다. 맥주에 양주를 넣고 레몬즙을 살짝 톡 하고 넣어서 맛난 하이볼을 먹으면서 글을 써야지. 음- 정말 꿈같은 일이다.



집 앞 마트에서 딸아이는 주말에 만들 인절미와 찹쌀 모찌 재료를 바구니에 넣고 있다. 찹쌀 3kg의 값이 좋다.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세일을 한다. 왠지 기분이 들뜬다. 룰루랄라 마트를 한 바퀴 휘리릭 돌았다. 그 사이 아이는 찹쌀 안에 넣을 팥소를 찾는다. 없다. 적두를 바구니에 넣으려는 딸아이. 아니야, 아니야. 힘들어. 기대한 것보다 잘 안 될 수도 있어. 아이를 말렸다. 잘한 것 같다. 적두를 물에 불리고, 익혀 설탕을 넣고 팥소를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시간을 들였으니 기대감은 한 층 올라갈 것이다. 기대감이 채워지면야 좋겠지만. 기대란 것이 그렇다. 잘 채워지지 않는다. 아무튼 적두는 다음을 기약하며 제자리에 조심히 놓았다. 마트에 팥소가 없기에 ‘팥이 듬뿍 앙버터 스프레드’를 사 왔다. 전에 먹어봤을 때 무지 달았던 앙버터 스프레드. 딸~ 달달해서 왠지 찹쌀 모찌와 잘 어울릴 듯한데. 아이에게 기대감을 넣어 준다. 바구니로 들어갔다.    



아쉬운 마음이 조금 사라졌나 보다. 다행이다. 어찌 되었든 살 수 있는 것이 이것뿐이니. 조금 기대감을 갖는 것도 좋지 않을까.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기대라는 카드를 요리조리 잘도 써먹는다. 이제 인절미를 만들 때 필요한 콩가루만 사면 된다. 저런 없다. 점원분께 물어보러 갔다. 점원분과 함께 아이가 왔다. 열심히 찾아주신다. 하지만 없다. 우리는 다 똑같은 눈을 갖고 있으니 당연하다. 점원분이 핸드폰을 꺼내서 물류검색을 하신다. 오, 창고에 있을 수도 있겠다. 아이와 나의 두 눈이 반짝. 역시 반짝반짝은 짧구나. 찰나의 기대가 와르르 무너졌다.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인사하고 다시 마트 안을 서성거린다. 바구니에 든 찹쌀 3kg이 무거운 걸까. 아니면 기대했던 마음이 날아가서일까. 아이의 어깨가 축 쳐진 듯하다.



하지만 고개를 든 아이가 갑자기 딸기를 사겠다고 했다. 갑자기 이렇게 딸기를 산다고? 그것도 자기 용돈으로? 감사하다. 근데 딸기로 무얼 하려고 그럴까. 걱정된다. 세일도 하지 않는 딸기로 무언가를 만들다가 기대한 것보다 안 나오면 완전 낭패이다. 맛도 돈도 기분도 주말도 날아갈 수 있다. 딸아이에게 꽤 심각하게 물어본다. 딸아, 이런 싱싱한 딸기로 딸기잼 같은 걸 만들려는 건 아니지? 끝까지 숨기려는 딸. 딸아, 숨기면 기대감이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불안감이 높아진단다. 그렇구나 불안은 나만 느끼는구나. 딸아이의 눈은 신나서 반짝거린다. 답답해하는 엄마가 안타까웠나 보다. 결국 딸기를 찹쌀 안에 넣을 거야. 고백하는 딸.



아! 그 순간 마트에 오기 전에 스마트 폰에서 본 딸기모찌 만드는 방법이 생각났다. 불안감은 기대감으로 바뀌었다. 딸 내일 맛있게 해 줘. 딸기 진짜 잘 샀네. 앙버터 스프레드 넣으면 진짜 맛있겠다. 콩가루를 못 산건 이미 기억도 나지 않는다. 딸에게 잘 보이기 위해 음료수를 사라고 했다. 2+1으로 좋아하는 음료를 고른 딸과 신나서 맥주 2캔을 고른 엄마. 계산을 하고 집으로 왔다. 오자마나 물건을 정리하고 드디어 하이볼을 만들려고 맥주를 꺼냈다.



저런 시원한 하이볼의 목 넘김을 기대했는데. 기대는 한순간에 물거품처럼 무너져 내렸다. 얼음이 없다. 얼음이. 하이볼을 기대했는데….   지금 내 손에 있는 것은 맥주뿐이다. 허전한 마음은 탄수화물을 급격하게 부르나 보다. 비빔라면 하나가 내 배에 들어갔다. 숨 쉬기가 힘들다. 배가 부르니 졸음이 온다. 에이, 걷기를 하려고 했는데. 포기다. 걷기는 내일의 기대로 미뤄야겠다. 야밤에 걷는 것보다. 아침이나 낮에 해님이 있을 때 걸으면 꽃도 보고 나무도 보고 좋잖아. 다시 어설픈 기대를 해본다.


너라도 마시자.


한 시간도 안 되는
이 짧은 시간에
기대는 참 많이도 왔다 갔다 한다.

아, 실망도 같이….

기대와 실망이 춤추는 스텝을 따라가기가 힘들다.
가끔은 좀 쉬어주길 기대해 본다.


김영하 작가의 [영하의 날씨] 6화는 실망에 대한 내용이다. 아버지에게 실망했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인간과 인간의 관계는 기대와 실망이 뱅글뱅글 돌며 함께 추는 왈츠인 것 같다고 했다. 기대 한 발, 실망 한 발. 또한 기대도 실망도 나 혼자 추는 춤일 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얼음이 없어 슬프다.


사진출처: 픽사베이 & 내 폰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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