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뭐 하고 지내?
그래서, 육아도 하고 돈도 벌 수 있는 일을 찾게 되었다. 평일의 일정한 출퇴근 시간 압박에서 자유로우며 아이가 나를 찾을 때면 언제든 출동할 수 있는 일을. 세상에, 그러한 일이 있긴 있을까? 그런 일이 있다면 도대체 무엇일까?
사실 그 무렵 자주 방문하던 sns에는 온갖 광고가 범람하고 있었다. '월 천만 원'이라는 타이틀이 (사실은 엄청난 넘사벽의 금액인데) 굉장히 쉽고 뻔한 이야기처럼, 누구나 당장 벌 수 있는 돈이란 이야기처럼 들리는 시기였다. 온라인 세상에서 자신의 길을 찾아 실제로 그 엄청난 금액을 벌고 있는 사람들이, 현재의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바보처럼 살고 있음을 일깨워주고 있었다. 누구나 가볍게 성공을 이룰 수 있다는 새로운 분야가 많았다. 수많은 정보는 각종 강의나 PDF 파일로 변환되어 나에게 결제를 종용하는 무언의 메시지로 다가왔다. 그리고 일주일 씩 고민하던 나는 결국 그 버튼을 누르며 복종의 응답을 보냈다.
사실 강의나 전자책은 양반이었다. (광고에 굴복한 건 이미 지난 일이고) 애초에 호기심은 많으나 끈기가 없어 모지란 내가 그 귀한 지식과 노하우 활용을 잘 못해먹어서 문제지, 그들은 30이 넘은 나를 정신이 번쩍 들게 하고 다른 세상을 배우고 알게 해주는 등 어떻게라도 나의 인식 변화에 도움을 주었다. 그랬다. 오히려 sns에서 나를 더 귀찮게 하고 많은 자극을 받게 했던 건, 나처럼 평범한 애엄마 계정에 거침없이 팔로우를 보내는 '부업, 재테크, 평범한 주부가 한 달에 200만 원' 따위의 계정들이었다. 그들은 나에게 결제를 종용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나의 팔로워 수를 올리는 데 도움을 주었다. 그렇지만 전혀 반갑지 않았다. 피곤했다. 이분들이 열심히 사시는 건 알겠는데, 도대체 한 명인지 수백 명인지, 아이디를 바꿔가며 계속 세포분열마냥 무한 생성을 하는 건지, 나의 계정은 이미 그들의 손아귀에 사로잡혀 끊어도 끊어도 계속 나타나셨다. 그들의 무차별 공격에 정말로 심각한 피로감을 느꼈다.
도대체 나에게 강의와 전자책을 추천하는 온라인 광고 알고리즘이며 이렇게 떼어도 떼어도 거머리처럼 달라붙는 수많은 부업 계정들은 '무언가 돈이 되고 일이 될 만한 것을 찾고 있는 나'라는 존재를 어떻게 알고 이러는 것인가. 하지만 싫은 건 싫은 거고 ‘역시나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되겠다, 세상이 이렇게 나를 부를진대 내가 무언가 하긴 해야겠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결국, 수많은 일을 벌였다.
사회의 기대와 요구에 잘 순응하며 자라왔다. 그래서 직업을 갖는다는 건, 큰 조직에 무사히 안착해 성실하게 충성을 다하며 살고 가끔 그 안에서 성취하고 인정받으며 월급을 꼬박꼬박 받은 삶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용케도 사업을 시작했다.
엄마가 되며 새로운 관심사가 생기고 그 시장을 알게 되고, 그렇게 무작정 사업을 시작했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돈을 왕창 벌겠다는 생각보다는 역시나 육아와 병행할 수 있는 일이기에 나에게 알맞다는 생각이 강했다. 평일에는 사랑스런 아이를 육아하며 엄마로서 충실히 살 수 있었고, 주말에만 업무에 매진하면 되는 것이었다. 이 일은 돌잔치의 생화 스타일링을 하는 일이었다.
꽃에 대해 전문 지식은 없었지만 태교를 하면서 취미로 했던 꽃꽂이가 도움이 됐다. 직접 우리 아이의 돌잔치 스타일링한 것을 맘카페에 올리며 입소문이 났고, 그렇게 한 두건 의뢰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마도 사장인 내가 직접 그 일을 준비해본 엄마였기에 고객인 엄마들의 입장을 누구보다 잘 안 덕분이랄까? 친근하고 다정하며 세세한 상담 덕분에 고객의 만족도가 좋았다. 그 덕에 이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서울 5성급 유명 호텔의 돌잔치 플라워 스타일링도 진행할 수 있었다. 돌팔이 주제에 정말이지 급격한 성장이었다.
계절마다 다른 꽃은 참 아름다웠고 '중요한 날 나의 노고로 자리를 함께 빛낼 수 있다'는 마음은 참 뿌듯했다. 향기롭고 아름다운 삶의 현장이었다.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그 화사하고 반짝이는 순간의 이면, 사실은 여러 가지 제약과 단점이 있었다. 우선은 육아와 일이 알맞은 균형을 이루지 못한 것이었다. 평일엔 아이와 집에 함께 있으면서 주말에 단 하루 일하는 것으로 적당한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쏟아지는 예약 문의와 상담에 몸만 아이와 함께 있을 뿐 일주일 내내 24시간 내내, 뭔가 일을 하는 것도 안 하는 것도 아닌 애매한 상태로 항상 휴대폰에 매여있었다. 아이에게 밥을 먹이거나 놀이를 하다가도, 자꾸 휴대폰을 들여다 보고 고객 응대를 하자니, 이것이 '내가 원하던 육아와 일의 병행'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누군가에게 세상에 단 하루뿐인 굉장히 중요한 날'을 내가 준비하고 마련한다는 것에 점점 상당한 부담감이 밀려왔다. 파티를 채우는 꽃장식 하나하나는 세상에 내놓는 하나의 작품이었기에, 늘 꽃 한 송이 한 송이에도 최선을 다했지만, '살아있는 생물'인 꽃은 파티의 마지막 순간까지 아주 섬세한 손길과 보살핌을 요구하였다. 고객들의 기대가 부담으로 다가왔다. 점점 더 긴장이 되었다.
그리고 1인 기업의 다양하고 사소한 많은 일에 진지한 현실이 느껴졌다. 파티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카드나 포스터를 디자인한 후 인쇄를 의뢰했는데, 업체의 사정에 의해 인쇄나 배송이 미뤄지는 날이면 나는 전화를 붙들고 사정사정을 했다. 영세 자영업자를 향한 호텔의 갑질도 불편하고 힘들었다. 어쨌거나 이것이 기획, 제작, 주문, 마케팅, 홍보, 현장관리, CS, 세무 등 모든 것을 혼자 해야 하는 작은 1인 기업의 현실이었다.
심지어 나의 1인 기업은 온전한 1인 기업이 아니었다. 결정적으로 운전을 잘 못하는 나는, 파티를 장식할 꽃과 소품들을 옮기는 것을 남편의 일로 정해주었고 평일 내내 힘들게 일하고 온 남편은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주말이면 나의 일에 동원됐다. 악덕 사장은 남편에게 알바비도 주지 않았다.
적절한 이윤을 내는 것에도 미숙했다. 아마도 이게 다 경험이라며(?) 에너지를 바쳐 퍼주는 식의 장사를 한 것 같다. 그 소박한 돈을 벌기 위해 엄마, 아빠가 주말에 일을 나가니, 돌이 막 지난 2살 아기도 주말이면 어김없이 일터로 따라나섰다. 그러면 때때로 아이를 돌봐주기 위해 친정엄마나 시누이까지 출동되었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그렇게 바라던 육아와 일의 완벽한 병행인 것인가... (진심으로 웃펐다.) 그렇게 꽃이 함께 하는 아름답고 행복한 시간, 결코 세~네 사람의 인건비는 나오지 않는 시간들이 켜켜이 쌓였다.
전형적인 '전업맘'도 '워킹맘'도 선택하지 않는다면서, '내 일을 찾겠다'고 했다.
그렇게 익숙한 곳을 떠나 낯선 곳으로 발을 내딛으며 '안전한 울타리를 벗어나서도 새로운 곳에서 충분히 멋진 일을 하는 내가 될 수 있다' 생각했다. 시간을 잘 활용하여 '일과 육아를 모두 잘 해낼 것'이리라, 그렇게 믿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제대로 된 준비 없이 만났던 맨땅은, 차갑고 딱딱했고 아팠다. 온실 안에선 바깥이 자유롭고 진취적이고 아름답게 보였는데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직장이 전쟁터라고? 밖은 지옥이다."라는 '미생'의 대사가 조금 실감 났다.
하지만, 이번 판을 실패했다고 다시 그 처음의 두 가지 선택지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다시 알맞은 일을 찾아야 했다. 삽질을 다시 해야 했다. 도대체 금은 어디에 숨어있는가?
1년 정도 이끌어오던 첫 번째 사업에서 원하던 성과를 얻지 못했다. (모든 일이 그렇겠지만) 마냥 아름답게만 보였던 일 이면엔 알고 보니 수많은 허드렛일이 있었고, 뿌듯하고 재미는 있었지만 돈이 되지 않았다. 입소문으로 지금도 가끔 고객의 문의가 온다. 하지만 효율성이 떨어지는 그 일을 더 이상 붙들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나는 새로운 시도들을 시작한다.
'PDF 전자책 작가'의 삶
'스마트 스토어를 운영하는 전자상거래 자영업자'의 삶
'공구를 하는 인스타그램 육아 인플루언서'의 삶
'아이와의 여행을 다루는 블로거'의 삶
이런 삶들을 꿈꿨다. 그리고 무언가를 시도하고 삽질했다. 그리고 또, 여지없이 실패했다.
시작하기 전에는 잘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누군가는 지금이 '단군 이래 가장 돈 벌기 쉬운 시대'라 말했고 누군가는 이러한 일로 정말 떼돈을 벌고 있으니 말이었다.
그러나 매일매일 무언가를 생각하고 고민하고 시도했음에도, 막상 어떤 '특정 분야'에 뛰어드니 기초나 소스가 매우 부족했다. 그리고 실천력도. 새로운 일을 벌일 때마다 매번 솔깃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이러다 진짜 대박 나면 어떡하지?'라는 행복한 상상을 했지만, 사실 '그 일'에 진정한 관심이나 재능이 없었다. 끈기가 없었고, 좀처럼 빠르게 오지 않는 반응에 곧 지쳤다.
그리고 이런 시간이 지속되다 보니, 이제는 어떤 일을 마주하고 시작하는 내 마음이 처음의 것과는 조금 달라진 듯했다. '육아와 일의 병행'이라는 처음의 목표를 떠나, '방황을 위한 방황'이 되어버린 듯했다. 계속 방황하고 계속 삽질했다. 계속 시도하고 계속 실패했다.
지금 나의 상황에서 모든 걸 잘할 수 있는 ‘최적의 일’을 찾겠다고 한 것 같은데? 이제까지 해온 일 말고 정말 내가 원하고 나에게 알맞은 '나 다운 일'을 찾겠다고 한 것 같은데? 그런데 나는 왜 이 모양일까?
그에 앞서, 나는 왜 모든 것을 잘하고 싶을까? 사실 일이든 육아든 적성이든, 어느 하나 적당한 선에서 포기하면 괜찮았다. 그런데 나는 어째서, 그 모두를 포기하지 못하고, 워킹과 전업을 선택하지 못하며, 굳이 이렇게 힘든 길을 계속 가는 것인가? 어째서 나는 모두를 만족시키려 안간힘을 쓰는 것인가?
가끔 사람들이 물었다. 요즘 무얼 하고 있냐고. 그런데 마땅히 할 말이 없었다. 회사를 다니는 것도 아니었고, 집에서 살림과 육아를 하고 있을 뿐이었고, 그런데 살림과 육아는 힘드니 노는 것도 아니었고, 또 한편으론 무언가를 해내기 위해 열심히 시도하고 있는데 드러낼 만한 것도 아니었으니. 정말이지 마땅한 할 말이 없었다.
그래서 자신 있고 당당하게 어떤 말을 하기 위해 나는 또 어딘가에 있는 금을 찾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