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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에서 태어나고 잠든 작가 박경리

통영 바다를 품고 영원한 안식을 취한 거장을 만나다

by 다담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아는 소설 제목을 읊는 대회가 있다면, 아마 '토지'는 3위 안에는 들지 않을까 싶다. 16권의 대하소설인 만큼 제대로 완독을 한 사람은 드물지언정. 물론 대중 매체 TV 드라마의 인기가 큰 몫을 한 것도 있을 것이나, 방영만으로 인기를 얻을 수는 없는 것이니 원작 박경리 작가의 힘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여전히 지인 사이에서도 적어도 토지나 태백산맥, 혼불 정도는 완독해야 책 좀 읽었네하는 인정을 받는 정도라면 박경리 작가의 위상을 더 일러 무엇할까.

장장 25년 간의 집필 기간을 거쳐 완성된 작품이니만큼 그 기간 동안 작가는 온 삶을, 온 열정을 다 쏟아야 하는 것이니 그것으로도 대작임을 알 수 있다. 완성하기까지의 그 고뇌와 고통은 그 긴 시간으로 형상화된 글귀들로 고스란히 느껴진다.


예향의 도시 통영에서 태어나 자란 작가에게 통영은 남다른 애정의 고향이었다. 경남 하동의 <박경리문학관>은 그의 대작 '토지의' 배경이고, 최참판댁 촬영지에서 그 여운을 충분히 감상할 수 있다. 허나 작가 박경리를 만날 수 있는 곳은 통영의 <박경리기념관>이었다. 작가가 영면하고 있어서이기도 하고, 기념관 앞뜰에서 통영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작가의 시선을 따라가 보면 무한 애정이 그대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마련된 벤치에 앉아 여기 저기 새겨진 작가의 글귀들을 읊어보는 것으로도 힐링이 되고 감정이 정화되는 경험을 할 수 있으리라. 통영이 주는 아득함을 작가와 더불어 느끼기에 참 좋은 곳이다. 그리고 이곳 통영은 작가의 또다른 대작 '김약국의 딸들'의 주무대이기도 한다.

기념관 입구에 들어서면 푸근히 앉아 고추를 말리며 반겨주는 작가를 먼저 만날 수 있다. 2층 입구 앞뜰에는 안경을 쓰고 책을 든 자그마한 체구의 작가 동상과 "버리고 걸 것만 남아 홀가분하다"는 작가 말이 새겨져 있다

작가의 문학관과 작가로서의 사명감, 생명에 대한 무한 애정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곳이어서 찬찬한 걸음으로 기념관 안을 돌고 또 돌았던 기억이 선명하다. 문학은 "왜?"라는 질문에서 출발하여 삶의 진실을 추구해야 한다는 작가의 뚜렷한 소명의식은 삶을 소설 속에 치열하게 녹아들게 했으며 문제의 해답도 글 속에서 찾고자 했을 것이다.


소설가였던 작가도 때로는 시를 꾸준히 써왔기에 희망을 놓치 않았다며, 따님이 엮은 유고시집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속 가장 좋아하는 '사람의 됨됨이'를 다시 읽어보며 여운을 깊이 간직해 본다.


사람의 됨됨이


가난하다고

다 인색한 것은 아니다

부자라고

모두가 후한 것도 아니다

그것은

사람의 됨됨이에 따라 다르다


후함으로 하여

삶이 풍성해지고

인색함으로 하여

삶이 궁색해 보이기도 하는데

생명들은 어쨌거나

서로 나누며 소통하게 돼 있다

그렇게 아니하는 존재는

길가에 굴러 있는

한낱 돌멩이와 다를 바 없다


나는 인색함으로 하여

메마르고 보잘것 없는

인생을 더러 보아 왔다

심성이 후하여

넉넉하고 생기에 찬

인생도 더러 보아 왔다


인색함은 검약이 아니다

후함은 낭비가 아니다

인색한 사람은

자기 자신을 위해 낭비하지만

후한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는 준열하게 검약한다


사람 됨됨이에 따라

사는 세상도 달라진다

후한 사람은 늘 성취감을 맛보지만

인색한 사랍은 먹어도 늘 배가 고프다

천국과 지옥의 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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