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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국어 교원 Mar 17. 2021

선생님! 저도 베트남에서 왔어요!

한국어 수업이 너무 재미있어요

C 초등학교에서 한국어 수업을 하게 된 건 10월 둘째 주부터였다. 당시에 난 한국어 수업을 하던 A 초등학교에서 갑자기 수업을 못하게 되었고, 충청북도 다문화 교육지원센터는 고맙게도 그런 내 사정을 고려해서 C 초등학교를 소개해 주었다.


(수업을 못하게 된 이유 : 학급에서 외톨이가 된 외국인 학생들 (brunch.co.kr))


C 초등학교에서 내가 가르칠 학생은 어머니가 베트남 사람이고 8살까지 베트남에서 살다가 온 2학년 해영이였다. 해영이는 아버지가 한국 사람이라 한국어를 어느 정도 할 수 있었으나 어머니의 한국어 실력이 좋지 않아 어색한 한국어를 사용했다. 듣고 이해하는 건 무리가 없었고 알고 있는 어휘도 많았지만, 말할 때 아주 한정적인 어휘와 문법만 사용했고 말도 자주 더듬었으며 문장 순서와 문법을 가끔 틀리게 말했다.

     

해영이 : 선생님, 해영이는 지난주에 엄마하고 아빠하고 가요. 산에! 산에서 김밥 먹어요. 주스도 마셔요. 재미있었어요. 엄~청!


하지만 해영이는 다문화가정 아이 치고는 한국말을 잘하는 편이었고, 다행히도 학교 수업을 아예 못 들을 정도는 아니었다. 다만 아무래도 한국어 실력이 부족하다 보니 다른 아이들처럼 잘 따라가지는 못했고, 담임선생님이 해영이를 위해 신경을 많이 쓰셔야 했다. 그래서 나는 해영이를 위한 한국어 수업 방향을 크게 다음과 같이 정했다.


① 말하기 : 말할 때 더 많은 어휘와 문법을 사용할 수 있게 연습시킨다. 문법과 어순을 바르게 말하도록 계속 교정한다. (더듬거리는 것까지 교정하면 아이가 부담을 느낄 수 있다. 말하기 연습을 계속 시키면 더듬거리는 것은 자연히 고쳐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② 쓰기 : 교재에 나온 문장을 계속 공책에 쓰고 읽는 연습을 한다. 그리고 한 단원이 끝날 때마다 받아쓰기를 한다.

③ 교과 학습과 연계된 활동 : 한국어만 가르치는 게 아니라 해영이가 정규 수업에 무리 없이 따라갈 수 있도록 교과 학습과 연계된 활동도 한다.


교재는 <초등학생을 위한 표준 한국어 저학년 의사소통 3>을 사용했는데, ③번의 이유 때문에 부교재로 <초등학생을 위한 표준 한국어 저학년 학습도구 1-2학년용>도 사용했다. ‘학습도구 한국어’ 시리즈는 본 교재인 ‘의사소통 한국어’ 내용을 보충하면서 정규 교과 학습과 연계해서 한국어를 공부할 수 있는 교재였다.


의사소통 한국어와 학습 도구 한국어
<팥죽 할머니와 호랑이>는 초등학교 2학년 국어 교과서에도 나온 동화이다. 이렇게 '학습도구 한국어'는 초등 교과과정과 연계해서 한국어를 공부할 수 있다.


처음에 해영이를 만났을 때 해영이는 어색해서 그런지 묻는 말에만 대답을 하고 표정도 약간 긴장한 듯했다. 그런데 내가 "해영아, 선생님은 베트남에서 2년 동안 살았어"라고 말하자 살짝 놀라며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는데, 그때부터 해영이는 나한테 완전 마음을 연 것인지 폭포수처럼 수다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해영이 : 선생님! 저도 베트남에서 왔어요! 선생님 베트남 살았어요? 우와. 어디 살았어요?

나 : 선생님은 후에(Hue)라는 도시에서 2년 동안 살았어. 해영이 후에 알아?

해영이: 네. 알아요. 훼(후에)! 그런데 안 가요. 저는 하이퐁(Hai Phong)에서 살아요. 하이퐁 알아요? 선생님 갔어요? 거기는 우리 할머니 있어요. 해영이는 거기에서 초등학교 다녀요. 8살 때 한국에 와요. 그런데 해영이는 베트남에서 2학년! 한국에서는 1학년이 돼요.(베트남에서는 7살이 초등학교 1학년이라고 한다). 그리고 거기에서 ~!@#$


정말 해영이는 한번 이야기를 시작하면 끊임없이 이야기를 쏟아내는 재미있는 아이였다. 그리고 말하기를 너무 좋아해서 수업을 듣다가 뭔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기면 또 폭포수같이 수다를 떨었다.


나 : 여기 그림을 보자. 이가 썩었지? 이걸 ‘충치가 생기다’라고 해. 왜 충치가 생겼을까?

해영이 : 사탕 먹어요. 그리고 이 안 닦아요. 그래, 충치 생겨요. 선생님! 해영이는 작년에 충치 생겼어요. 그래, 병원에 가서 위이잉(치과 치료 하는 흉내를 내며) 했어요. 아팠어요! 선생님! 해영이는 7살 때 이빨이 빠졌어요 ~!@#%~~


나 : 이 친구들은 어떤 잘못을 한 것 같아?

해영이 : 쓰레기를 버려요! 쓰레기 버리면 안 되지! 나쁜데. 그렇지요? 선생님, 해영이는 지난 주말에 엄마하고 엄마 친구 떡집 이모하고 같이 등산 갔어요. 과자 먹었는데 쓰레기통 없어서 가방에 가져왔어요. 나 잘했지!



해영이는 수업할 때 갑자기 자기 개인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덕분에 나는 별로 알고 싶지 않은 해영이 엄마 친구 떡집 이모 이야기, 엄마 아빠가 싸운 이야기, 아빠가 도둑과 싸워서 도둑을 잡은 이야기와 베트남에 살고 있는 사촌 이야기까지 마치 내가 옆에서 그 장면들을 본 것처럼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다.


해영이는 한국어 수업도 정말 진심으로 재미있어하는 아주 훌륭한 학생이었다.


나 : 해영아, 선생님이 의사 선생님. 해영이가 환자 역할을 해 보자. ‘어디가 아프세요?’

해영이 : 아이고... 발목... 발목이 아파요...


나 : ‘남자끼리 모둠을 만들어요.’ 여기 여자가 있어, 없어? 없지? ‘여자끼리 같이 다녀요.’ 남자는 없고 여자만 같이 다녀.

해영이 : 남자끼리, 여자끼리. 끼리. 선생님, 끼리는 코끼리 같아요. 코끼리! 아하하하...


의사와 환자 역할, '끼리' 학습


이렇게 잠시도 지루할 새 없이 수다를 떨며 재미있게 공부하는 해영이 덕분에 나도 수업이 재미있었다. 해영이는 시키는 과제도 다 재미있어하며 열심히 했다. 담임선생님께서는 해영이가 한국어 수업을 정말 좋아하고 공부도 열심히 한다며 자주 칭찬하셨다.


수업 시간은 한 시간 반이었는데, 수업을 재미있게 듣는 해영이였지만 중간에 쉬는 시간 없이 계속하면 지루해할 수 있기 때문에 중간에 색종이 접기 놀이를 했다. 해영이는 색종이 접기를 아주 재미있어했고, 색종이 접기를 하면서도 쉴 새 없이 수다를 떨었다. 어느 날은 핸드폰 접기를 했는데 자기가 접은 핸드폰에 그린 그림이 아주 마음에 들었는지 사흘 정도는 색종이 핸드폰 자랑을 했다.


해영이가 며칠 동안 자랑했던 색종이 휴대폰


해영이와는 교재를 이용해서 수업한 것 외에도 동화책과 스티커북을 이용한 수업도 했다. 특히 동화책은 초등학교 2학년 국어 교과서에 나오는 동화를 공부하거나, 아니면 초등학교 2학년 교과 학습과 관련된 내용을 공부할 수 있는 동화책으로 준비했다. 같이 역할극을 하며 동화책을 읽으면서 책에 나오는 새로운 어휘를 학습하고, ‘만약에 내가 주인공이라면?’, ‘그 뒤의 이야기는 어떻게 될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른 방법이 있을까?’ 등의 심화 질문을 통해 아이의 사고력도 향상될 수 있는 수업을 하려고 노력했다.


'신데렐라' 스티커북. 신데렐라 이야기도 공부하고 동화책에 나오는 새로운 어휘도 많이 공부했다.


다문화 아이들은 한국 학생과 다른 외모와 부족한 한국어 실력 때문에 학교에서 소외감을 느끼고 위축되는 경우가 많고, 심지어는 따돌림을 당하는 아이들도 있다. 게다가 친구들과 다른 문화적 배경 때문에 정체성의 혼란도 겪을 수 있다. ‘학급에서 외톨이가 된 외국인 학생들’ 편에서도 언급했지만, 다문화 학생과 외국인 학생들은 이러한 이유와 학교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는 이유 등으로 학업을 중단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해영이를 실제로 만나기 전에는 해영이도 그런 문제로 힘들어하지 않을까 걱정했었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해영이는 학교 생활이 너무 재미있다고 했다. 친구들과도 사이좋게 지냈는데, 언젠가는 우리 둘만 교실에 있을 때 친구들의 빈자리를 가리키며 소개를 자기 친구를 소개하고 친구들과 어떻게 노는지 손짓 발짓을 이용해서 재미있게 설명하기도 했다.


해영이는 자신이 한국어를 친구들보다 못한다는 거에 주눅 들지 않았으며, 오히려 자기는 한국어를 잘 못하지만 베트남어도 한국어도 할 수 있다는 거에 자부심을 가진 당찬 아이였다. 자기가 한국어를 별로 못 해도 엄마보다는 잘한다고, 나와 같이 공부한 것을 엄마에게 가르쳐 준 적도 있다며 자랑한 적도 있었다. ‘장래희망’에 대해서 공부했을 때는 승무원이 되고 싶다고 했는데, 자기는 한국어 베트남어 둘 다 잘하니까 한국과 베트남을 오가는 비행기에 타면 딱 좋다며 어깨를 펴고 자신만만하게 이야기하기도 했다.


해영이가 그린 승무원이 된 자기 모습


어느 날, 해영이는 공부를 하다가 갑자기 나한테 이런 말을 했다.

 

해영이 : 선생님. 저는 4월에 한국사람이에요.

나 : 응? 무슨 말이야? 올해 4월에 한국에 왔어?
해영이 : 아니이~ 4월에 꾹적 있어요. 꾹적! 그래서 올해 4월에 해영이는 한국 사람.

나 : 아! 올해 4월에 한국 국적이 생긴 거야?

해영이 : 네. 엄마는 내년에 시험 봐요. 해영이는 국적이 있어서 한국 사람이에요. 헤헤.


해영이는 이렇게 항상 밝은 아이였다. 아직은 9살밖에 되지 않아 천진난만할 걸 수도 있지만, 해영이가 이런 천진난만한 마음을 오래오래 간직했으면 좋겠다. 앞으로도 이렇게 긍정적이고 밝은 아이로 자라길 바란다. 그리고 비행기 승무원이 되어서든 다른 직업이 되어서든, 자신의 장점을 살려 정말로 한국과 베트남 두 나라를 이어주는 사람으로 크길 바란다.

    





<출처>

초등학생을 위한 표준 한국어 의사소통 1-2학년용 :

학습 도구 한국어 1~2학년 (korean.go.kr)

초등학생을 위한 표준 한국어 저학년 의사소통 3 :

의사소통 한국어 1 (korean.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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