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3
지난 화 마지막:
"후. 징그러운 김 대리랑 마신 술이 다 깨버렸네."
노트북을 끄려는데 갑자기 한 아이디가 눈에 들어왔다.
'뭐지?'
안 쓰는 메일이라고 분명 말했는데. 웬 메일이지.
클릭했다. 2년 전에 온 메일이었다.
열었다.
순간 숨이 멎었다.
사진이 있었다.
모지코 바다. 노을빛. 그리고 웃고 있는 나.
너무 예뻤다. 그 사진 속의 내가.
노을빛이 얼굴을 물들이고, 바람에 머리카락이 날리고, 활짝 웃고 있는 내 모습.
이렇게 예뻤던 적이 있었구나. 내가. 웃고 떠들고.
어느새 눈가에는 나도 모르게 물이 고이기 시작했고
이어서 메일 본문을 읽었다.
『잘 지내고 계실까요.
아마 문자를 보내고 이걸 확인했을 때쯤이면 저를 많이 미워하거나 원망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얼굴 한 번 보지 않고, 떠난다는 문자 하나 남겨두고 저는 사라졌을 테니까요.
그 여행 이후 반년이 벌써 지났네요.
이 사진은 선물이에요.
모지코에서, 그쪽이 너무 예뻐 보였어요. 지금까지 찍어온 수많은 사진 중에서 가장 예쁜 사진이었어요. 그래서 꼭 선물로 주고 싶어서 찍어둔 사진이에요.
더 빨리 혜은 씨에게 줬어야 하는데, 이렇게밖에 못 전해줘서 미안해요.
저는 혜은 씨 덕분에 좋은 기억을 많이 가지게 되었습니다.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아래쪽에 사진이 하나 더 있습니다. 조금은 부담스러울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따로 숨겨두었어요. 혜은 씨에게 주는 거긴 하지만, 굳이 보고 싶지 않다면 찾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그럼 언제나 행복하세요. 혜은 씨.
- 그쪽 드림』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뭐야 이 사람은. 끝까지 그쪽이라니 참"
"왜 이렇게."
"왜 이렇게 마음이 아픈 거야."
엉엉 울었다. 멈출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찍어온 수많은 사진 중에서 가장 예쁜 사진이었어요.'
그 말이 가슴에 박혔다.
사진작가인 그가. 수많은 사진을 찍어온 그가. 가장 예쁜 사진이라고.
나를.
울면서 화면을 내렸다. 아래쪽에 숨겨둔 사진이 있다고 했다.
뭘까.
뭘 숨겨둔 걸까.
찾아봐야 할까. 말아야 할까.
손이 떨렸다.
메일을 내려 확인해 보니 정체를 알 수 없는 사진이 있었다.
아... 우리가 우연히 공원에서 만나 여행을 계획한 하루에 비가 쏟아져 내려 비를 피한 정자 위에
봉투 하나를 테이프로 붙여둔 사진이었다. 정자나무 기둥 위 안쪽에 보이지 않는..
눈물을 흘리면서도 웃음이 나왔다.
"그보다 USB라니 진짜 엉뚱한 사람이야.. 이건 도대체 어떻게 붙여둔 거야? 어떻게 올라가서는"
이 사람과는 더 이상 연이 닿을 수 없겠지만.
그래도 내게 남겨둔 게 있다니 호기심을 참을 수 없었다.
몇 날 며칠을 고민했다. 찾아봐야 할까. 말아야 할까. 찾는다고 뭐가 달라지나. 이미 3년이나 지났는데.
결국 호기심이 이겼다.
일요일 밤. 사람들이 없을 시간을 골라 의자 하나를 챙겨 그 공원으로 향했다.
그때 그 나무 정자.
비가 쏟아지던 날. 둘이서 비를 피했던 곳.
그가 붙인 시점에서 2년 반이나 지났는데. 설마 봉투가 아직 있을까?
의자를 기둥 옆에 놓고 올라갔다. 손을 뻗어 안쪽을 더듬었다.
뭔가 손에 잡혔다.
심장이 멎었다.
먼지가 수북이 쌓인 채로. 테이프가 낡아 거의 떨어질 것 같았지만. 봉투는 그 자리에 있었다.
마치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처럼. 봉투를 꺼내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와 봉투를 열었다.
사진 몇 장이 들어 있었다. 그리고 USB 하나.
사진을 먼저 봤다.
당시 규슈에서 찍은 사진들이었다.
모지코 바다. 간몬 해협. 나카스 강. 후쿠오카 야경.
그리고 나.
웃고 있는 나. 떠들고 있는 나. 먹고 있는 나. 잠든 나.
전부 내 사진이었다. 여러 표정을 하고 있지만 전부 행복해 보이는 나.
'이렇게 많이 찍어뒀던 거야?'
눈시울이 붉어졌다.
USB를 노트북에 꽂아 폴더를 확인했다.
정말 수많은 사진들이 폴더별로 정리되어 있었다.
이 사람이 처음 카메라를 배울 때부터의 모든 사진들이 있었다.
그리고 우리의 시간들이 차례대로 정리되어 있었다.
'공원 근처 술집', '모지코', '시모노세키', '나카스', '텐진'.
하나하나 열어봤다.
그때의 기억이 쏟아져 들어왔다.
이렇게 많이 찍어뒀구나. 나를. 우리를.
참 예뻤구나.
폴더를 더 내리니 파일이 두 개 있었다.
'필요할 때 쓰세요. pdf'
'비밀. txt'
"필요할 때 쓰세요?"
뭐야 이건.
그리고 '비밀. txt'.
이건 뭘까.
열어봐야 할까.
손이 멈췄다.
무서웠다. 뭐가 적혀 있을지.
메일 원문을 다시 확인했다. 맨 아래에 p.s. 가 있었다.
『p.s. 혹시나 물건을 찾는다면.
비밀이라는 파일은 정말 궁금하면 열어봐 주세요. 당시 내기에서 그쪽이 이겼는데, 그 소원 제가 들어주지 못해서 이렇게 남겨요. 제 입으로 꼭 말해주고 싶었는데 미안해요.』
내기…
기억하고 있었구나. 그때 내가 이겼었지. 끝내 말하지 못한.
비밀. txt.
열어봐야 할까.
손이 떨렸다. 너무나도 궁금했지만 차마 열 수 없었다. 한 사람의 괴로울 수도 있는 비밀이 적혀 있다니. 쉽게 읽을 수가 없어 노트북을 덮어버렸다.
일주일이 지났다.
아직까지도 비밀 파일은 열지 못했다.
어떤 내용이 있을지 몰라 무서웠다.
그냥 이대로 덮어두자. 어차피 3년 전 사람이니까. 지금은 아무 상관없는 사람이니까.
그렇게 생각했다.
어느 날이었다.
일이 너무 지쳐 퇴근하자마자 편의점에서 맥주를 사 왔다. 침대에 누워 멍하니 핸드폰을 보다가 SNS를 켰다.
별생각 없이 피드를 내리는데.
한동안 크게 생각하지 않았던 유미의 게시물이 눈에 들어왔다.
"유미. 그 사람 동창이었지."
순간에 심장이 멈췄다.
writer: 추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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