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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동 오락실 19

by 추세경

올 겨울은 유독 추웠다. 매년 역대급 폭염이다, 역대급 한파다,라는 뉴스가 티브이에 나오는데 그건 올해도 마찬가지였다. 그게 숫자로 증명되는 과학적 사실인지 아니면 조금 더 자극적이길 원하는 미디어의 속삭임인지, 굳이 관심을 가지고 찾아보진 않아도 가끔씩 왜 매년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지 궁금할 때가 있다. 혹자는 무분별한 탄소배출로 인한 지구 온난화의 영향이라고도 하지만 지구 온난화라는 테마 자체가 어떤 힘 있는 세력이 세상에 퍼트리는 헛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여기서 힘 있는 세력이란 지구 온난화라는 테마로 이득을 얻을 수 있는 세력을 말한다. 그게 음모론 이든 아니든 나같이 평범한 사람은 일단 일기 예보를 사실로 믿는다. 그리고 미디어의 언어를 마치 내 생각인 것처럼 이용한다. '올해도 역대급 한파가 예상되고 그건 환경오염으로 인한 지구 온난화 때문이다'라고.


우리 부부는 겨울마다 강원도 평창에 있는 산장을 찾는다. 장인어른의 형제분들이 돈을 모아 가족 별장으로 마련해 놓은 곳이다. 평창 읍내를 지나 자동차로 1시간 정도를 가야 한다. 읍내에서 이어진 포장도로를 50분을 달리고 비포장 된 산길을 차로 5분 정도 더 가야 했다. 가끔 눈이 많이 와서 눈길에 차가 선 적도 있지만 우리는 매년 이곳을 찾았다. 자동차를 4륜 SUV로 바꾸고 타이어를 스노 타이어로 갈고 속도를 서행으로 가더라도 우리는 의식처럼 산장에 갔다. 아내는 추운 걸 싫어하지만 겨울에 산장을 가는 일만큼은 좋아했다. 가서 어떤 요리를 해먹을지 미리 장 볼 것들을 정리해 두었고 도시에선 아무리 추워도 코트만 입지만 산장에 갈 때만큼은 패딩과 방한 용품, 핫팩까지 혹한기 훈련을 대비하는 군인처럼 준비했다. 우리는 매년 설날에 이곳에 왔다. 우리 부모님도 그렇고 처가댁도 그렇고 명절날 우리 둘만의 시간을 보내라고 집에 오지 말라고 하셨다. 결혼 초기에는 정말 그래도 되나 눈치를 보기도 했지만 삼 년 정도 지났을 때부턴 서운해하는 눈치도 없는 것 같아 마음 편하게 우리 둘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물론 명절날 전화를 드리기도 하고, 명절 전후면 꼭 한번 찾아뵙기도 하지만 설 연휴는 오로지 우리 둘만의 시간을 위해 사용하고 있다. 그때 아내가 알려준 것이 이 산장이었고 벌써 칠 년째 매년 설마다 찾아오고 있다. 공용 산장이지만 매년 똑같은 시기에 이곳에 올 수 있는 것은 설에는 보통 각자의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보내기 때문이다. 그건 우리 친척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더 이곳에 애정이 갔다. 매년 같은 시기에, 우리 둘만 이용할 수 있는 경치 좋고 공기 좋은 곳이었다. 산세가 깊은 곳은 아니었지만 주변은 모두 숲이었고 겨울이라 울창한 녹음을 기대할 순 없었지만 생크림 케이크 보다 더 하얗고 파랗고 투명한 눈꽃이 나무나무 피어 있었다. 우리는 보통 3박 4일을 그곳에서 지냈다. 서울에서 출발해 평창 읍내 마트에서 장을 본다. 아내가 미리 정해둔 목록에 따라 고르기만 하면 된다. 바비큐 숯을 사고 삼겹살과 목살을 사고 와인도 5만 원이 넘지 않는 선에서 맛있는 걸로 고른다. 아내는 보통 화이트 와인보다는 레드 와인을 좋아하는데 바디감이 있는 와인이 좋다고 한다. 그 바디감이 뭔지 나도 열심히 느껴보려 했지만 아직은 잘 모른다. 아내가 고르면 맛있게 마시면 될 뿐이다. 요리에 필요한 소금, 간장, 기본 향신료는 이미 산장에 있다. 설에는 우리만 사용하지만 봄여름가을은 다른 가족들도 한 달에 한두 번은 이곳에 오기 때문이다. 마트에서 나는 카트를 밀고 아내는 재료들을 담았다. 상추를 골라도 이것저것 살피고 더 신선한 걸로 고르는 그녀의 손길엔 산장에 간다는 설렘이 있었다. 매일매일 저녁에는 대표 메뉴가 있었다. 첫째 날은 목살 바비큐였고 둘째 날은 바지락을 넣은 얼큰 칼국수였다. 셋째 날은 올리브 오일 파스타와 스테이크였다. 안주용으로 홈런볼과 매운 새우깡, 치즈를 골랐고 라면도 빼놓을 수 없었다. 카트에 짐이 무질서하게 쌓이는 것 같았지만 이미 모두가 계획된 것들이었다. 그렇게 장을 보고 우리는 산장으로 향했다.


산장 앞에 도착해 바라본 겨울 산 앞에서 가슴이 트였다. 햇살 가루를 뿌려놓은 듯 눈 쌓인 가지들은 반짝였다. 눈 쌓인 땅을 신발로 다지는 기분이 뭔가 뿌듯했다. 죽은 시체라도 살릴 것 같은 맑은 공기가 코와 입과 귀로 들어와 폐로 들어왔다. 자동차 히터로 더럽혀진 폐 속 공기가 겨울 산의 공기로 맑아졌다. 트렁크에서 짐을 꺼내는데 아내가 나에게 눈을 던졌다. 귀엽다는 듯 별일 아닌 척 웃고 말았지만 속으로는 나도 꼭 한번 던져야겠다고 다짐했다. 손가락이 벌써부터 근질거렸다. 산장의 문을 열고 아궁이에 장작을 넣어 불을 붙였다. 옛날 감성으로 짓는다고 현대식 보일러를 빼고 아궁이에 장작을 넣어서 보온을 했다. 아궁이 난방배관을 온수 배관으로 연결시켜 온수도 쉽게 쓸 수 있었다. 그럼에도 여름 더위를 위해 에어컨은 설치해 두었다. 편의가 없는 감성과 낭만이란 존재할 수 없는 것일까. 장작은 따로 준비가 되어 있었다. 아내의 삼촌이 이곳에서 여름에 한 달 정도 묵는데 그분이 거의 관리자 역할을 하셨다. 일 년 치 장작도 모두 패서 창고에 쌓아 두셨다. 나는 그걸 가져다가 아궁이에 불을 붙이기만 하면 된다. 내가 짐을 옮기고 불을 때고 장롱의 이불 털고 화장실 물이 잘 나오는지 확인하는 동안 아내는 장 본 것들을 냉장고에 넣고 캐리어에 쌓온 옷과 따로 챙겨 온 세면도구 등을 화장실에 정리했다. 벌써 7년째 이러고 있으니 서로 말하지 않아도 각자의 할 일을 알고 있었다. 그렇게 방이 따뜻해지고 3박 4일간 우리가 머물 수 있게 준비했다. 그러는데 보통 한 시간 정도가 걸렸다. 그동안은 산장 안에서도 패딩을 입었다. 준비를 마치고는 소파에 앉아 한 시간 정도 휴식을 취했다. 차가 밀릴까 아침 일찍부터 출발했고 아무래도 겨울에 눈길 운전은 운전 피로도가 훨씬 심했기 때문이다. 따뜻한 커피를 머그컵에 담아 손으로 쥐었다. 얼었던 몸이 녹으면 노곤해졌다. 아내는 유튜브를 보았고 나는 잠시 눈을 붙였다. 눈이 저절로 감겼으니 눈이 부쳐졌다,라고 하는 게 맞을 수도 있었다. 눈을 뜨니 오후 세시쯤 된 것 같았다. 내가 눈을 뜨니 아내도 잠에 들어 있었다. 유튜브에서는 영화를 요약 설명해 주는 채널이 틀어져 있었다. 이십 분 정도 기다리니 아내가 눈을 떴다. 잘 잤냐고 아내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었다. 벗어두었던 패딩과 장갑, 넥워머 등을 다시 입었다. 아내도 잠이 덜 깼지만 느린 몸동작으로 옷을 입기 시작했다. 한 시간 정도 트레킹을 할 생각이었다. 이곳에 머무는 동안 우리는 매일 이 근처를 걸었기 때문이다.


산은 하천을 끼고 있었다. 산을 두르는 트레킹 코스는 목재로 되어 하천을 바라보며 걸을 수 있었다. 날씨가 좋을 때면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었지만 지금은 겨울이었고 게다가 설연휴였다. 7년째 매년 이곳을 걸었지만 사람을 마주치는 일은 드물었다. 아내는 겨울을 싫어했지만 이곳을 걷는 건 좋아했다. 처음 산장에 와서 내가 트레킹을 하자고 했을 때 아내는 싫다고 했다. 3박 4일 내내 숙소에만 있을 수는 없지 않냐고 설득해 처음 트레킹을 한 이후로는 아내도 이곳에 오는 건 좋아했다. 언젠가 아내에게 왜 이곳을 걷는 건 별로 안 싫어하냐고 물었더니 아내는 '나무에서 눈이 떨어지는 소리가 좋아'라고 했다. 그게 뭐냐고, 왜 좋냐고 물었더니 '글쎄, 그냥 좋은데... 뭐라고 해야 되지, 그냥 마음이 편해져, 어렸을 때도 생각나고,... 몰라, 그냥 좋아'라고 했다. 나무에서 눈이 떨어지는 소리가 왜 좋은 건지 내 입장에선 잘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부부라고 해서 상대방의 모든 걸 이해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오히려 아내가 잘 모르겠다고 해서 나는 납득이 되었다. 세상에는 언어로도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이 많고 어쩌면 그것들에 삶의 진실이 더 많이 숨어 있을 수도 있는 법이다. 그렇게 아내와 나는 이곳에서 매년, 묵는 동안은 매일, 이곳을 걸었다. 얼어붙은 하천 위로 가끔은 두루미가 날기도 했다. 트레킹 코스를 돌다 하천이 시야에서 사라지고 다시 길이 산 쪽으로 들어오는 부근이 있었다. 그곳에서 아내는 내 바지에 손을 넣고 페니스를 만지곤 했다. 이번에 와서도 그랬다. 서로 몸을 맞대어 가리고 아내는 내 바지의 단추와 지퍼를 내려 페니스를 만졌다. 차가운 촉감에 나의 페니스는 더없이 강하게 발기했다. 아내는 혹시라도 다른 사람이 나타날지 눈을 좌우로 굴리며 나의 그것을 아래서부터 위로는 손 안쪽으로 위에서부터 아래로는 손 바깥쪽으로 때로는 규칙 없이 쓸어 만졌다. 이런 순간이 오면 나는 이걸 위해 이 여행을 매년 오고 있나 하는 착각이 들만큼 흥분이 된다. 아내의 등 뒤쪽은 내가 감시하지만 그녀의 내 것을 강하게 쥐자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다. 위로 아래로 아내는 손을 움직였다. 내가 그녀의 귀에 대고 신음하자 아내는 무릎을 굽혔다. 주변을 한번 살피고 혀로 나의 귀두를 한번 핥았다. 나를 한번 올려다 보고는 그녀의 입에 페니스를 넣었다. 겨울바람에 바지가 내려간 쪽으로도 찬 기운이 들어왔지만 그녀의 입에 들어간 그 끝은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트레킹을 마치고 산장에 들어와 따뜻한 물로 샤워를 했다. 소파에 앉아 잠깐 핸드폰을 하다가 저녁 준비를 했다. 아내는 재료를 씻었고 나는 마트에서 사 온 숯에 불을 피웠다. 착화제를 밑에 깔고 토치로 20분 정도 불을 붙여야 했다. 산장의 널찍한 베란다 쪽에는 방풍 비닐이 있어 겨울에도 바비큐를 할 수 있었다. 목살을 굽고 소시지를 굽고 마늘과 버섯까지 함께 구웠다. 숯 안쪽으로는 포일에 고구마를 싸서 넣어두었다. 구워진 고기를 먹고 마트에서 사 온 레드 와인으로 잔을 나눴다. '여보 새해 복 많이 받아' 음력으로 맞은 새해를 축하했다. 고기를 삼분의 이쯤 먹었을 때 아내가 비빔면을 해왔다. 대충 먹을 수는 없다며 비빔면 위로 김과 오이고명까지 올라가 있었다. 그걸 다 먹고는 숯 옆에서 고구마를 꺼냈다. 젓가락으로 찌르니 푹 들어갔고 포일을 벗기고 껍질을 까보니 속이 노랗게 익어 있었다. 그걸 하나씩 들고 산장 앞으로 나와 한입 씩 먹었다. 하늘의 별을 올려다봤다. 낮에 눈 위로 쌓였던 햇볕 가루가 이제는 밤하늘로 올라가 붙은 것 같았다. 이 산장은 별이 잘 보였다. 숯에서 익은 고구마에서 뜨거운 연기가 하늘로 솟았다. 고구마는 노랬고 연기는 하얬고 별은 반짝였고 하늘은 까맸다. 이만한 행복이라면 이대로 죽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런 감상도 잠시, 너무 추워 다시 바비큐 장 안으로 들어왔다. 바비큐 장을 정리했다. 쓰레기를 모았고 설거지를 했다. 우리가 방에 들어오자 밖에는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일기예보에 저녁부터 눈이 온다고 되어 있었는데 타이밍이 좋게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바람이 없는 눈이라 내리는 모양이 상냥해 보였다. 땅을 보듬어주려고 내리는 눈 같았다. 하나하나 천천히, 차분히, 눈이 내렸다. 소파에 앉아 남은 와인을 마시기 시작했다. 안주는 치즈와 방울토마토였다. 스피커로 음악을 틀었다. 선우정아의 '도망가자'였다. 그녀의 목소리가 방안 구석구석에 닿았다. 선우정아의 노래는 언제 들어도 마음의 밑바닥을 간질였다.


"완벽한 하루야" 내가 말했다.


"진짜, 완벽했어" 아내와 나는 잔을 부딪혔다.


"눈도 진짜 예쁘게 온다. 여보처럼"


아내는 황당한 이야기를 들었다는 눈으로 나를 쳐다봤지만 그래도 입은 웃고 있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창밖의 내리는 눈을 바라봤다. 손으로 와인잔을 돌리다 입에 댔다.


"올해도 행복하자 여보" 그녀가 나에게 말했다.

"그러자"


"여보" 창밖을 보던 아내가 시선을 나에게 돌렸다.


"응"


"여보는 나 사랑해?"


"사랑하지"


"왜 사랑해?"


"어제도 물어봤는데 여보?"


"그러니까, 오늘은 왜 사랑하냐고"


나는 와인 잔을 입에 대며 머리를 굴렸다.


"여보는 아직도 엄청 예쁘고, 엄청 귀여워, 그리고 섹시하고"


"아니~ 그런 거 말고~" 아내는 애교 섞인 목소리였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여보 평소에 코트만 입어서 패딩 잘 안 어울릴 것 같았는데 패딩 입어도 우아하고 잘 어울리더라고?"


"그래? 또~?"

"아까 여보가 오프너로 와인 딸 때, 엄청 깔끔하게 잘 따서 한번 또 놀랐잖아. 코르크 돌릴 때 순간 엄청 집중 잘하더라고, 그래서 또 반했어"


"그래? 내가 또 집중 잘했어?"


"응"


"그래~ 여기까지 하자 오늘은" 아내는 상체를 내 쪽으로 기울여 내 볼에 입을 맞췄다.


벽 쪽의 장 스탠드에서 은은한 주황 불빛이 비쳤다. 아내와 내가 주인공인 듯 산장 한가운데를 밝혔다. 모나리자의 표정 같은 선우정아의 목소리가 산장을 감쌌다. 창밖으로는 눈이 계속 내렸다.



그렇게, 밤이 깊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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