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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제명 Jan 10. 2024

그러니까 내 달리기의 '스타트'

'스타트', 그러니까 그 만화책이 시작이었다.

'스타트', 그러니까 그 만화책이 시작이었다. 원숭이 바위를 내달리던 파도섬의 유스케, 눈물인지 땀인지 흠뻑 젖은 어깨띠를 주고받는, 역전 마라톤의 묘미. 운동이라곤 해본 적이 없는 21살. 반 백수와 비슷한, 조금 모자란 쪽에 가까운 대학생의 마음에 불이 일어난 것은.  앞서 뛴 주자의 마음을 받아 어깨에 거는, 그 무거운 마음과 마음의 이어 달리기에 잠시라도 함께 뛰고 싶은 마음


그때나 지금이나 일단 저지르고 수습하는 편이었던지라, 가장 가까운 일정의 대회를 검색했고, 마침 검색된 것이 무려 제1회 창원 통일 마라톤, 2000년 6.15 공동선언을 기념하는 역사적인 대회였던 것이다. 첫 대회를 겁도 없이 하프 마라톤을 신청하고 돌아서니 나에게 남은 것은 한 달 정도의 시간. 그전에 뛰어본 적도 없으면서 훈련이라고는 그 당시 내 기준으로는 가장 장거리였던 학교까지의 7km 남짓한 통학길을 걷다 뛰다 몇 번 해본 것이 전부. 대회 전날은 어찌나 바짝 쫄았던지, 후배가 사주는 치킨에 소주를 한 병 먹고도 자다 깨다를 몇 번이나 반복하다, 다음날 겨우 시간을 맞춰 근처 터미널에서 창원까지, 거기에서 또 버스를 타고 대회장까지 꾸역꾸역 찾아갔던.


택도 없이 모자란 준비에도 출발선에 설 수 있었던 것은 진짜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에, 내가 부족하다는 느낌조차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고, 만화책의 주인공들은 전문 훈련 없이 생활상의 달리기만으로도 이미 완주정도는 해내고 남을 실력들을 가지고 있었고, 유스케의 간절한 마음정도는, 그래 마음이니 따라 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근거 없는 확신. 7킬로 남짓의 등굣길을 걷는 것과 다름없는 속도로 달려갔던 게 훈련의 전부였지만, 그날의 나는 이미 파도섬의 유스케였다.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말자는 하루키의 유명한 그 마인드로 출발. 초반 얼마간은 차들이 달리는 대로를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달리는 기분에, 주변의 수많은 주자들의 숨소리와 발소리에 취해, 그러니까 대회뽕에 절여진 상태로 즐겁게 달 수 있었다. 그 와중에도 신발은 딱딱한 컨버스, 제대로 된 운동복도 하나 없었던 내가 신기했는지 옆에 뛰던 2시간 페이스 메이커 아저씨가 계속 말을 걸어주셨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그 페메분께서 분위기에 취해 분수도 모르고 오버페이스를 하려는 나를 계속 붙들어 주신 덕분에 완주라도 할 수 있었다고 생각되지만, 시작 전까지는 하프는 그래도 한 시간 반에는 들어와야 하지 않나. 이런 말도 안 되는 산수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정도로 무작정 나간 첫 대회는. 어차피 개고생으로 끝날 수밖에.


"대단하다." " 역시 젊은 게 좋네, 몇 살이에요?" "어디에서 왔어요?" " 대회는 처음이세요?"  말할 기운도 없는데 계속해서 힘! 힘! 외쳐주시던,  페이스메이커 분과 그 옆에서 같이 뛰던 2시간 목표 주자들 덕분에 혼미한 채로나마 달릴 수 있었던 것 같다. 오르막도 있었던 것 같고, 내리막도 있었나? 경찰아저씨가 교통을 통제한 것도 같고,  숫자를 일만 정도까지 헤아렸던 것도 같고, 만화책에서 도로의 가운데가 높고 가장자리가 낮다고 말했던 대사들이 뒤죽박죽 빙글빙글.  어떻게든 꾸역꾸역 따라가고 있었지만, 결국 도착 1킬로 남짓을 남기고 걸을 수밖에 없었다. 허벅지에는 알이 수십 개는 배긴 것 같고, 발바닥은 물집이 또 몇 개나 잡힌 건지 가늠도 안 되는 상황이었지만, 집에 가려면 동행한 후배가 기다리고 있는 종합운동장까지는 어떻게든 갔어야 했다. 1시간 50분 이상을 멱살 잡고 나를 끌어주셨던 2시간 페이스메이커아저씨는 마지막으로 파이팅을 외쳐주고 탁탁탁탁 리드미컬하게 사라지고... 나는 걷는 게 부끄러워 고개를 숙이고 질질질질 발을 끌며 창원종합운동장으로 들어가는데. 아, 아, 출입구를 돌아서는 순간. 어찌 그 순간을 잊으랴. 내 기억으론 운동장을 가득 채운 관중들이 국가대표 선수가 피니시 라인에 들어오는 것 처럼 박수를 쳐주고 다 왔다고 힘내라고, 멋지다고 외쳐주는 게 아닌가. '내가 뭐라고' '뭔데, 왜 이렇게 까지'라는 생각도 잠시 들었지만, '그래 진짜 고생했지. 내가 참 잘한 건가보다' '이제는 다 끝났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21살 인생 최고로 벅차올랐다. 그런 응원을 받고서는 도저히 걸을 수 없어 마지막 힘을 내서 300미터 남짓한 트랙을 뛰었다. 그리곤, 도착과 동시에 두 다리에 쥐가 올라와서 뻗어서 누워버렸다. 같이 온 후배가 행님 멋있어요 해주는데, 그 친군 잘 있으려나 궁금하네. 쥐가 안 풀리는 게 아닌가. 그래도 예전에 배구 중계에서 본 걸 또 어떻게 기억해서, 배번의 옷핀을 분리해서 라이터로 대충 소독하고는, 뾰족한 바늘로 쥐가 가시지 않는 종아리를 마구 찔렀다. 무슨 올림픽 마라톤 을 완주한 선수처럼 그렇게 피를 몇 방울 짜내고 나니 그래도 걸을 수 있게 되었고,  그대로 절룩절룩 버스를 타고, 또 버스를 타고 집으로. 기록은 2시간 5분. 그 뒤로 불철주야 달리기의 매력에 빠져서 삼천리 금수강산의 산야를 뛰어다녔다면. 어쩌면 지금은 서브쓰리정도는 했을 수도. 아쉽게도 21살의 대학생은 하고 싶은 것도 많았고, 해야 할 것들도 많았다.


첫 마라톤을 뛰었던 나이의 딱 2배가 되던 22년 겨울. 2년 차 병아리 러너의  신분으로 22회 창원통일 마라톤을 다시 한번 참가했었다. 그래도 풀코스도 뛰어보고, 제일 좋은 나이키 신발도 사고, 선수들이 먹는 에너지 젤도 먹고, 주로에서 파이팅 하고 인사하는 사람들도 몇 명 생긴 게, 그래도 딱딱한 컨버스로 용감하게 달리던 시절에 비하면 괄목상대. 피니시가 가까워지는 지점, 5킬로 부분에 참가했다가 벌써 지쳐 걷고 있는 참가자들을 하나하나 앞질러 나가면서 괜히 속도를 더 높이며 잘난 척도 해보고, 힘들어 고개 숙인 친구들에겐 20년 전 내가 들었던 '힘', '힘'이라는 파이팅도 전해 주었다. 현물로 바로 지급하는 푸짐한 경품들을 보면서는 와, 급한 사람들 다 먼저 가고 나면 경쟁률이 그렇게 높지 않다. 자전거가 걸리면 타고 가자.  티브이가 걸리면 근처 친구네 사무실에 두고 택배로 받자. 이런 헛된 기대로 두 시간을 수다를 떨다가, 추위에 떨다가 결국 추첨에 떨어지고, 늦은 점심으로 로컬 맛집 중국집에서 소주도 한잔 하고, 맥주도 한 잔 하고, 탕수육도 먹고 짜장면도 먹고, 모자라서 양념 탕수육도 시켜 먹었던 추억까지 아름다웠던 창원통일마라톤. 내 달리기의 '스타트'.


*심지어  첫 훈련이라고 깝죽거렸던 등하굣길의 거리가 7km밖에 안되었다는 사실은 방금 글을 쓰면서 발견했음. 당시 체감은 15킬로 이상이었던 걸로 기억되는데.. 역시나 기억은 짓말에 능숙한 듯.

이전 05화 트레일 러닝, 오히려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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