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제명 Feb 24. 2024

백제를 달리는 즐거움.

2023 공주백제 마라톤

그놈의 런저니 메달이 뭔지. 동아일보에서 주최하는 3개의 마라톤(서울, 공주, 경주)을 1년 안에 모두 참가하면 기념 메달을 추가로 준다. 일종에 2+1 마케팅일 수도 있고, 동아마라톤 찐 팬관리차원의 고객 서비스일 수도 있겠다. 서울은 봄에 이미 다녀왔고, 경주는 가을에 갈 예정이니 공주만 다녀오면 가능하겠다는 생각에 쉽게 신청한 대회. 그 메달이 뭐라고,

[메달이 크긴하다. 서울과 공주와 경주를 다 구겨넣은 복잡한 문양]

시간당 20mm의 폭우를 뚫고, 10미터 앞도 보이지 않는 길을 8시간을 달려서 갔을까. 고속도로에 갇혀 오도 가도 못했던 그 시간이 영원할 것만 같았지만. 결국 도착은 하더라. 마라톤이나 장거리 운전이나 그저 버티며 앞으로 가는 수밖에. 대회장과 약간 거리가 떨어져 있긴 했지만 부여에 있는 롯데리조트로 숙소를 잡았다. 리조트에는 워터파크와 온천과 나이키 아울렛이 있었고, 부여에는 시장통닭집과 장원막국수가 있었다. 이번 대회는 비교적 짧은 10k, 통닭과 막국수를 먹으러 간 길에, 아침에 잠시 나가서 달리고 왔다고 말하는 편이 더 정확한 표현일지도. 결론부터 말하면 둘 다 너무 맛있었다. 달리기는 모르겠다.

[내 기준 미슐랭 ⭐️⭐️(우회해서 갈 만한 식당)는 충분했다. 두 곳다]

시장통닭은 껍질이 진짜 맛있었다. 바삭하면서도 풍미가 있는 껍질, 파채와 같이 먹으며 곁들이는 소주 한잔. 배부르게 먹고도 더 먹고 싶은 마음에 한 마리 더 포장해서 숙소로 들어갔다. 익숙한 브랜드의 맛과는 다른, 치킨이 아닌 통닭 맛집. 이름도 시장통닭이 아닌가. 대회 후에 찾은 장원막국수도 명불허전이었다. 장원 막국수는 백마강 유람선 탑승을 위한 선착장 뒤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언제나 문전성시인 맛집이다. 몇 년 전 유람선을 타러 왔을 때는, 왜 몰랐을까. 알았다면 벌써 두 번째 먹는 것일 텐데. 공주까지 한번 더 운전해서 올까 고민하게 만드는 수육과 막국수. 강원도 출신 상무님을 따라서 먹곤 했던 부산의 송정 막국수와는 또 다른 향과 식감. 미슐랭이 별 건가.

우리나라에는 언론사들이 주최하는 마라톤 대회가 많다. 아니 주요 대회들은 전부 언론사에서 주최한다. 낭만의 춘천마라톤은 조선일보에서, 젊은 에너지가 가득한 JTBC마라톤은 과거 중앙일보 시절에는 중마라고 불렸다. 동아일보도 플레티넘 레밸의 서울국제마라톤을 비롯해 연간 총 4회의 마라톤을 주관한다. 우리나라 마라톤 역사에서는 언론사의 역할이 결코 작지 않다. 중소도시의 소소한 마라톤도 신문사나 방송국이 주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언론이 독자의 건강까지 케어한다는 뭐 그런 사회적 책임감 차원인가. 아니면 뉴스거리가 부족했던 시절 직접 뉴스가 될 만한 일들을 만들어 내겠다는 작전이었을까. 참가비 장사로는 큰 마진이 남지는 않을 거 같은데 꾸준히 여러 곳에서  대회를 주최하는 이유는 모르겠다. 방송국 대회들을 생각 하다 보니 부산의 KNN 환경마라톤 식전행사 무대에서 유명 아이돌들의 노래를 카피하던 팀이 생각난다. 노래나 안무는 티브이에서 보던 것과 같은데 내가 아는 그 사람들은 아닌, 하지만 걸 그룹의 구성은 갖춰져 있던,  그 팀은 누구였을까. 그들이 누군지 알지도 못하면서 무대로 우르르 달려 나갔던 달림이들은 또 어떤 마음이었을까.  세상은 언제나 모르는 것들로 가득하다.


공주는 유명 스포츠인들의 고향이기도 하다. 무려 박찬호와 박세리의 동상이 같이 서 있는 고장. 대통령계의 거제도, 예술계의 통영정도 될까. 그런 체육인의 기운은 개뿔. 코스는 10K 주제에 오르막이 몇 개나 있는 건지... 날씨도 녹록지 않았다. 22년엔 극심한 더위까지 더해져 고생했다는 후기가 많았는데 23년엔 전날까지 계속된 기록적 폭우로 개최가 걱정될 수준이었다. 그러니까 여러모로  달리기에 좋지 않은 조건이었다는 건 확실하다. 그러니까 내가 제대로 못 달린 게 전날 먹은 시장통닭 탓이 아니라는 변명. 기록은 최근 1년 중 가장 저조한 48분. 진짜 런저니 메달과, 시장통닭과 장원 막국수만 아니었어도.


[10k 뛴거 치고는 상태가 둘 다 좋지 않다. 대회의 터프함이 느껴진다]
이전 03화 참외는 성주가 맛있어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