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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제명 Feb 10. 2024

참외는 성주가 맛있어요

2023년 성주참외 마라톤

마치 인력시장의 풍경 같았다. 아직 차가운 새벽공기에 비니를 눌러쓴 사람들이 교대역 8번 출구에 삼삼오오 모여있었다. 다양한 브랜드의 비니와 두꺼운 바람막이, 더플백들의 쇼룸에 온 것 같았다. 대절되었다던 버스는 예정시간을 10분여 넘겨 도착했다. 당초 배차되었던 버스는 고양이로 인한 결함으로 운행이 불가하게 되어 급하게 투입된 차량이라 했다. 인솔자도 없고, 탑승자 확인도 안 되는 상황.

"안 탄 사람 없으시죠?"

실제로 타지 못한 사람은 들을 수 없었던 문답이 오가고 나서 버스는 출발했다. 핸드폰 네비를 찍어보니 성주까지의 거리는 140km, 2시간 남짓.  앞에 앉았다는 이유로 아저씨 한 분이 총괄 인솔자의 역할을 맡으셨다. 대회를 마친 후 막걸리 한잔 할 시간은 있어야 한다는 어르신들의 요청이 있었고, 종료 후 출발시간은 넉넉하게 오후 3시로 정해졌다.

대회는 주최하는 입장에선 남는 게 하나 없는 대회였다. 30km 부문 참가비는 35,000원. 집에 넘쳐나는 기념티셔츠는 제공하지 않는 대신에, 왕복 버스 편과  성주사랑 상품권 3만 원. 대회장에서 수육과 어묵까지 제공하는 혜자스러운 대회. 2주 뒤에 열릴 동아마라톤의 마지막 점검 차원에서 참가하기에 딱 좋은 일정까지, 흠잡을 곳 하나 없는 대회였다.

성주별운동장에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는데, 얼마 후 지역에서 있을 농협 조합장 선거와 관련된 선거 운동원들이 어깨띠를 매고 피켓을 들고 있기도 했었다. 다른 지역에서 온 동갑내기 친구들과 기념사진 촬영을 겸한 짧은 만남을 하고 나니 몸만 풀고 있기에는 아까울 만큼의 시간이 남았다. 평소 경기 전엔 먹지 않는 어묵과 수육을 먹으며 시간을 보낼 수 있었는데, 세팅되기를 기다려 1등으로 먹은 따뜻한 음식들이 유달리 맛이 있었다. 성주의 특산품인 참외도 전시하고 있었는데  배번표에 부착된 성주사랑상품권으로 구매가 가능하다고 안내가 되어 있었다. 먹거리 장터부터 참외 홍보부스까지 백 명은 넘어 보이는 사람들이 분주하게 대회를 챙기고 있었다. 지역의 마라톤 대회가 그냥 작은 대회가 아니게 하는 것은 대회를 만들어가는 여러 마음들 덕분이 아닐까.

대회코스는 너무 힘들었다. 로컬대회들이 가질 수밖에 없는 지형적인 한계 같은 게 있다고 치더라도 성주는 특히 오르막이 많았다. 30km 코스동안 총 상승고도 523m의 언덕들. 특히 22km 반환점 이후의 긴 언덕에선 걷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 그놈의 코스 탓은 질리지도 않고 참 꾸준하다. 최종 2시간 30분에 9초 넘치는 기록으로 피니시. 2주 뒤 서울동아에서 목표했던 3시간 30분이 될 것도 같고 안될 것도 같은 애매한 중간점검결과표를 받아 들게 되었다.

마치고 나서는 오히려 좋았다. 구미에 사는 친구의 배려로 성주 시장에 유명한 선지국밥집에서 막걸리도 마시고, 그러고도 남는 돈으로 와이프에게 선물할 참외도 샀다. 계속되는 근육경련으로 걷다가도 멈춰 서길 반복해야 했었지만, 달리기를 마치고 뭐라도 벌어가는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참외의 고장 성주에서 올해 수확한 첫 참외라니, 뭔가 추석을 맞이한 농부의 심정이랄까. 몸에 온기가 돌고 취기가 오르자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낙관까지 더해졌고, 그야말로 남는 장사였다.

성주참외 마라톤처럼  돈을 벌어가는 느낌을 주는 대회가 있는 반면에,  주최사의 주된 수입원이 본업이 아닌 대회운영에서 남기는 마진이 아닐까 싶은 대회들도 있다. 해외 대회들은 더 하다. 일단 우리나라에서 비싸다고 욕을 먹었던 대회들도 리즈너블 한 가격이라 느껴질 정도의 참가비를 받는다. 거기에 비행기 삯도 더해야 하니 비용부담은 몇 곱절 커진다. 그래서 해외 대회는 제일 긴 풀코스를 뛰고, 그다음 날부터 바로 관광을 해야 그나마 타산이 맞는다. 비단 해외의 경우가 아니더라도 달리기만을 위해 다른 지역을 찾는 건 웬만해선 수지가 맞지 않는다. 비용을 차치하고서라도 이동시간을 생각하면 해당지역의 동네 맛집이라도 다녀오도 나서야 본전 생각으로부터 겨우 자유로워질 수 있다. 마라톤 대회 덕분에 전국 방방곡곡을 누빌 이유가 생겼으니 오히려 다행인 건가. 어차피 셈이 맞지 않는 장사를 계속할 이유를 찾느라 늘 마음이 바쁘다. 답을 정해놓고 숫자를 끼워 맞추는 엉터리 수학인걸 알면서도 항상 속아주는 와이프에게 감사할 일이다. 설날에도 달리러 나가며 진심을 가득히 담아 눈치껏 덧붙인 문장이니 해량해 주시기를. 귀댁도 갑진년 한해 만복을 취하시고 가내 평안하시기를.

[10초만 빨랐어도.. 항상 한끗이 모자라 아쉬운 경우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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