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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봉희 May 06. 2020

어린이날 받은 따뜻한 위로

 종일 쉬지 않고 나를 선생님이라 부르며 애타게 기다리고, 찾던 아이들이 있었다. 내 이름이 뭔지도 모르고 내 나이만 궁금해하며 나를 선생님으로 만들어준 아이들. 나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던 아이들과의 생활을 멈춘 지 어느덧 1년이 지났고, 어린이날이 찾아오면 떡볶이 불판 앞에서 땀 흘리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매년 어린이날이 다가오면 학원 아이들은 어린이날 파티는 할 거냐고 물었다. 분명 의사를 묻는 거였지만, 사실은 ‘선생님, 어린이날 파티했으면 좋겠어요. 다른 학원은 한데요! 어린이날 파티해 주세요.’와 다름없었다. 나는 아이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파티와 선물을 준비하고, 떡볶이를 만들어 나눠주는 분식집 주인이 되어야 했었다. 항상 아이들이 오기 전 선물을 준비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고, 어린이날 종일 떡볶이를 만들면서 분식집 사장님의 마음을 헤아리기도 했었다. 몇십 명이 넘는 아이들의 선물을 하나하나 포장하고 있으면 아이들이 기뻐할 거라는 생각에 신이 나다가도 작은 부분까지 신경 쓰며 해야 하는 일로 인해 금세 지쳤다. 내가 생각하는 작은 부분이 아이에게는 굉장히 커다란 부분이었기에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그렇기에 모든 아이의 선물은 색깔도 디자인도 같아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평화로운 어린이날을 보낼 수 없었다. 그래서 난 항상 어린이날만큼은 어느 때보다 다정하고 공평한 선생님이 되어야만 했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떡볶이 냄새에 이끌려 우르르 몰려드는 아이들의 한층 흥분된 목소리와 발걸음이 들리면 긴장이 됐다. 그리고 아이들은 눈 깜빡할 사이에 떡볶이를 해치웠고, 한 손에는 선물을 들고 너무 행복해하고 있었다. 작은 선물에도 행복해하는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힘들지만 뿌듯했다. 그 에너지로 나는 또 새로운 떡볶이를 만들었다. 그리고 퇴근하는 내 몸에서 떡볶이 냄새가 진동했다. 그렇게 어린이날을 보내고 나면 며칠 동안은 떡볶이와 거리를 두고 지냈다. 7년 동안 나의 5월 5일은 변함없이 늘 이랬다. 매년 챙겨주는 역할을 맡은 어른이고, 선생님이어야 했다.


 그랬던 내가 이제는 일주일을 통 틀어도 선생님이라 불리는 일이 다섯 번도 되지 않는다. 그때만큼의 책임감을 가지고 하루를 보내지도 않는다. 그리고 이전과는 다른 어린이날을 보내고 있다. 아이들의 선물을 포장하지도 않고, 떡볶이를 만들기 위해 가락 떡을 떼고, 네모난 어묵을 자르며 빠르게 움직이는 시곗바늘에 초조해하며 보내지도 않는다. 이제 나에게 어린이날은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중 하루일 뿐이다. 이렇게 달라진 어린이날의 풍경이 홀가분하면서 우리 아이들은 올해 어떤 선물을 받았을지 궁금하기도 하다. 선물을 받고 한껏 톤이 오른 목소리로 침을 튀기며 자랑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우리 아이들이 어떤 선물을 받았는지 직접 물어볼 수 없는 어린이 날을 보내고 있던 내가 선물을 받는 5월 5일을 보냈다. 나를 아직 선생님이라 불러주는 제자와 귀여운 선생님이라며 예뻐해 주시는 학부모님이 주신 선물. 깜깜한 밤, 내 집 앞까지 와서 제자가 품에 안겨주고 간 상자 안에는 5개의 다육식물과 예쁘게 접힌 쪽지가 들어있었다. 다육식물이 너무 예뻐서, 알콩달콩 신혼집에 예쁘게 놓으면 좋을 것 같다는 내용이 적혀있는 편지. 내 행복을 응원해주는 학부모님의 마음이 너무 따뜻했다. 나를 위해 예쁘게 자란 다육식물을 고르시고, 시간을 내어 편지를 적어 주신 마음이 정말 감사했다. 7년 동안 열심히 아이들을 위해 노력하며 어린이날을 보낸 나에게 수고했다고 말해주시는 것 같았다. 왠지 모르게 그동안의 시간을 위로받은 기분이었다.


 성인이 되고 처음으로 감동적인 어린이날을 보냈다. 식물을 보살피는 손길이 아직 많이 부족한 내가 1개도 아닌 5개의 다육식물을 잘 키울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서지만, 부단히 노력해서 보호자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싶다. 5월 5일, 품에 다육이를 꼭 안고, 나는 또 한 번 부끄럽지 않은 사람으로 살아가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그리고 나를 위해 시간을 내어주고, 내 행복을 빌어주는 이들이 있기에 내일도 기쁜 마음으로 하루를 만들 수 있는 힘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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