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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 Jul 27. 2020

몽롱한 괴물 이야기


믿었던 사람이 갑자기 흉측한 괴물 보듯 하면서 공포에 떤다면 기분이 어떨까.

그녀는 '네가 그렇게 무서운 사람이었어'라고 울먹거리며 소리쳤다.



그녀와 그의 첫 만남은 비행기 안에서였다. 38살 나이에 중국 항저우 예술대학 교수인 장빙은 한국에서 개최하는 해외 화가 작품 전시회 초청을 받았다. 상하이 공항에서 작품을 통관시키려다 보니 아슬아슬하게 탑승하게 됐다. 승무원이 서둘러 안내한 자리는 미리 탑승하여 잠든 무섭게 생긴 사내 옆 좌석이었다. 그녀는 앉기를 주저하며 잠시 사방을 둘러보았다. 빈자리가 보이지 않았다. 다른 자리로의 이동은 불가능했다. 대부분 남녀를 떨어뜨려 배정하는데 그날은 만석이었다. 항공사 입장에서도 하는 수 없지 않았을까 라는 이해심보다 불편한 마음이 더 컸다. 장빙은 체념한 표정을 지으며 그가 절대 깨지 않도록 신경을 곤두세워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보지 말아야 한다는 마음이 강할수록 더 보게 된다. 그녀는 옆에 잠든 사내를 흘깃거렸다. 보통 영화에서 보면, 이런 경우에, 머리카락이 흐트러진 지적으로 생긴 남자가 책을 읽다가 여자가 앉으려 하면 미소 띤 얼굴로 살짝 손 인사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러나 현실에선 외모와 상관없이 무작위로 출연시킨다. 영국제 유명 브랜드가 툭 튀어 보이는 티셔츠, 손목에 찬 번쩍이는 명품 시계, 진한 감청색 양복바지의 촌스러움까지는 용서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바싹 올려 깎은 짧은 머리, 이마의 불거진 깊은 상처는 90kg은 족히 나갈 것 같은 덩치와 합쳐져 조폭을 연상시켰다. 분명히 티셔츠로 가려진 몸에는 커다란 용 문신이 새겨져 있을 것이라 여겼다. 그는 중국과 한국을 오가며 더러운 일을 하는 자였다. 그런 사람이 깨어나 자신에게 집적 거리는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다행스러운 것은, 그 조폭은 도착할 때까지 절대로 깨어나지 않을 것 같다는 것이다. 그녀의 예상은 거의 맞았다. 잠 못 잔 귀신이라도 들었는지, 그는 깨어나지 않았고 가끔 코까지 골았다. 자신 스스로 이 자리에 앉는 순간 전혀 어울리지 않는 장면이 만들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행기 가운데 통로를 기준으로 한편은 좌석이 세 개고 그녀와 조폭이 꼭 붙어 앉은자리는 두 개다. 모르는 사람은 부조화스러운 커플로 착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혈통으로 따진다면, 그녀는 약간의 혼혈이었다. 장빙은 청나라를 세웠던 북방의 만족 출신이었고 외할머니는 러시아계 미인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외할머니를 많이 닮았다. 그래서 그런지 이따금 화장실을 오가는 승객들이 쳐다보는 느낌도 들었다.


도착 삼십 분을 남겨 놓고 승무원이 입국 카드를 나눠 주었다. 그녀는 영어로 말하기보다 읽기 능력이 부족했다. 어떻게 써야 할지 들고서 한참을 망설였다. 사실, 그녀는 혼자서 하는  해외여행은 해본 경험이 없다. 게다가 한국은 처음이었다. 전에는 베이징에 있는 예술대학 교수인 남편과 다녔다. 그때, 손에 든 입국 카드를 무뚝뚝하게 뺏어가는 낯선 손이 있었다. 옆에서 잠자던 그가 진작 깨어나 그녀의 답답함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대뜸 "패스포트"라는 단마디를 내뱉었다. 장빙은 겁먹은 사람처럼 얼떨결에 자신의 여권도 쉽게 건네주었다. 그 조폭은 여권에 나와 있는 그녀의 신상 정보를 낱낱이 살펴보면서 입국 카드를 작성하여 돌려주었다. 전혀 어울리지 않은 둘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됐다.


그는 물건을 판매하려고 세상 곳곳을 다니는 사람이었다. 해외 출장을 갈 때면 중국을 경유해 서쪽으로 계속 나아갔다. 그가 오는 날이면, 그녀는 언제나 항저우에서 상하이 공항으로 픽업하러 갔다. 장빙은 그가 올 때를 기다렸다. 그는 출세지향적인 자신의 남편과는 전혀 다른 부류였고 자신이 아는 모든 사람과도 달랐다. 겉모습과 달리 무척 해맑고 순수하고 모험심이 강했다. 사업에 대한 것은 물어보기 전에는 하지 않았다. 돈, 명예, 유명세 따위의 것들은 그에게는 중요한 게 아니라고 여겼다. 항저우 시호의 물결이 노을에 물들면 그의 눈동자는 꿈꾸듯 몽롱해졌고, 맞은편 화방과 찻집 거리의 초롱등불이 하나둘 밝혀지면 아이처럼 좋아했다. 그의 천진난만한 표정과 호기심 가득한 눈빛은, 그를 39살 된 성인이 아니라 파랑새를 찾아 여행하는 꿈 꾸는 소년으로 보이게 했다. 그래서 그런지 장빙의 딸도 그를 좋아했고, 한 달에 한 번씩 베이징에서 오는 그녀의 남편도 그를 경쟁자로 여기지 않았다.


장빙은 저렇게 순진하고 착한 사람이 어떻게 사업을 할까 하는 걱정이 생겼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은지, 그의 사무실도 자신의 집 근처 아파트로 알아봐 주고 통역하는 직원도 구해주었다. 그가 없을 때면 그의 사무실에서 그림을 그리며 보냈다. 그러다 통역하는 직원이 그가 가져다 놓은 샘플을 조금씩 시장에 몰래 내다 판다는 것을 눈치챘다. 장빙은 그가 돌아오자 말해주었으나, 그는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성격상 싫은 소리 못 하고, 기껏 가르쳐 놓은 직원이 그만두면 일에 차질이 생겨서 그런가 하면서도 애가 탔다.


며칠 후, 사무실에서 큰 거래가 있었고 통역은 그 직원이 맡았다. 계약은 오전에 성사됐고 현지 은행에 입금도 확인했다. 오후에는 그녀도 잘 아는 손님이 찾아왔다. 전부터 그를 통역해 주던 상하이에 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뒤따라 공안이 사무실로 들어왔다. 그녀는 그들이 왜 왔는지 짐작하고는 다소 놀랐다. 그가 말하면 통역을 거쳐 공안이 받아 적었다. 그녀가 모르는 일도 그는 훤히 알고 있었다. 문제는, 그의 표정과 목소리가 여느 때와 같다는 것이다. 그 직원에 대한 티끌만큼의 미움과 분노도 섞여 있지 않았다. 단순히 계약을 성사시키기 위해 남겨둔 유형의 존재였다. 그냥 간단히 법대로 처리하면 된다는 식이었다. 공안이 작성한 조서를 내밀자 그는 결재 서류에 사인이라도 하듯 휘갈겼다. 장빙은 혼란스러웠고 소름이 끼쳤다.


잠시 후, 공안이 그 직원을 데리고 나가는 것으로 사건은 마무리됐다. 사무실에는 그와 그녀만 남았다. 그는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표정으로 시호에 있는 찻집에 가자고 했다. 장빙은 그의 변함없이 해맑은 미소에 공포감이 밀려왔다. 급기야 식은땀이 나면서 온몸이 떨렸다. 그에게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녀는 울먹이며 "네가 그렇게 무서운 사람이었어"라고 소리쳤다. 그는 곧바로 반응했다. 금세 풀이 죽어 어른에게 야단맞는 아이처럼 고개를 떨구고 눈만 껌벅거렸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그의 정신과 육체는 급속히 허물어져 갔다. 마치 내림굿을 거부하는 무당 후보자처럼 온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차라리 그녀에게 냉소를 받고 핀잔을 들었다면 했다. 흉측한 괴물 보듯 한 그녀의 눈빛이 수시로 떠올랐다.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학대와 차별 속에서 바보로 키워졌다. 그런 자신의 모습이 싫어서 남들이 선망하는 사회적 인간이 되려고 했으나, 숫자를 섬기고 사람을 수단으로 밖에 볼 줄 모르는 철저히 자본화된 괴물이 돼버렸다. 장빙은 나날이 수척해지는 그를 볼 때마다 안쓰러웠다. 그는 자신의 아이들 때문에라도 무너지지 않으려고 간신히 버티고 있다고 생각했다. 수시로 병원을 데려가 온종일 영양제를 맞춰줘도 나아지지 않았다. 어느 날, 모든 것을 정리해 달라는 말만 남기고 떠나서 돌아오지 않았다.


18년이 흘렀다. 그는 많이 변했다. 유명 브랜드 옷도 번쩍이는 시계도 차지 않는다. 그런 쓸모없는 것들로 자신을 내보이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었다. 머리칼은 제멋대로 헝클어지고 몸은 노동으로 단단해졌다. 사업은 그가 서 있을 자리가 아니었다. 지금은 산골과 도시를 오가며 농사를 짓고 글을 다. 그는 전직 괴물답게 자본화된 괴물을 구별할 줄도 안다. 괴물은 성별, 나이, 학벌, 지위 등 가리지 않는다. 그들은 사람들 속에 숨어있다. 매우 똑똑하고 때로는 상당히 세련되고 지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는 그들을 볼 때마다 한심스러웠고 자신은 이제 괴물이 아니라는 것에 안도했다. 그가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아직도 몽롱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는 것이다. 얼마 전이었다, 누군가 그에게 천진난만한 아이 같다고 말했다. 나이가 몇인데, 그 기분 좋은 소리를 여태껏 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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