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적인 세계 속의 '나'
황정은의 <복경> | 소설 감상
이것은 내가 관찰한 일이다. 이른 아침 출근을 하기 위해 사람들로 붐비는 지하철 승강장에서 벌어진 일이다. 승강장은 줄 서서 열차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빼곡하게 차 있었다. 5분쯤 지났나, 열차가 도착해 열차에서 사람들이 내리고 승강장에서 기다리던 사람들이 열차에 타려고 하는 순간, 한 할아버지께서 뒤늦게 열차 안에서 승강장으로 빠져나오려고 하고 계셨다. 그런데 사람들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할아버지를 밀고 우격다짐으로 열차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노쇠한 할아버지는 힘을 쓰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밀려 들어가셨다. 그때 어떤 한 아주머니가 하는 말이 내 귀에 들렸다. "할아버지가 괜히 늦게 내려 가지고 다른 사람들까지 못 타게 만들려고 하고 있네." 짜증 섞인 말투였다. 그 아주머니의 말에 할아버지는 고개를 밑으로 푹 숙이셨다.
나는 이 상황을 처음부터 끝까지 눈앞에서 목격했다. 마음속 깊이 분노가 치미는 것을 느꼈다. 힘없는 할아버지가 힘에 떠밀려 내리고 싶은 역에 내리지 못한 것도 속상한데, 다른 사람의 핀잔까지 들어야 한다니. 그 할아버지의 마음은 얼마나 속상할까. 그 할아버지의 심정에 이입해 나는 분노했던 것이다.
분노를 느꼈던 또 다른 이유는 사람들이 무심코 저지르는 일상적인 폭력에 힘없는 사람의 권리가 침해되었다는 것이다. 직장에 출근하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열차를 타기 위해 너나없이 밀고 들어가는 것은 다시 말해 자신의 생존을 위해 다른 이에게 폭력을 행사하거나 불쾌감을 주어도 어쩔 수 없다는 이야기인 것이다. 아무리 열차를 놓칠 수 없다고, 직장에 지각할 수 없다고 해도 우리는 누군가에게 그러한 폭력을 행사할 권리는 없다.
우리는 주변 사람들에게 상당히 많은 폭력을 행사하면서 살고 있다. 이는 타인에게 폭력을 당하면서 나 역시도 폭력을 타인에게 가하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끊임없이 연쇄 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연쇄 작용을 일으킨다고 해서 대체적으로 무지하고 무차별적일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서로를 공격하면서도 자신이 공격하고 있는지 분명히 인지하고 있는 경우도 많으며 그 공격의 대상은 매우 선택적이다.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은 주로 자신보다 힘없고 위계가 낮은 사람에게 폭력을 행사한다. 이는 자본주의 사회 체제 안에서 살아가면서 우리가 겪는 폭력들이다.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는 폭력이 폭력을 양산하는 피라미드 구조가 생겨난다.
소설「복경」은 감정노동에 시달리는 판매원의 일상을 보여주며 폭력의 문제가 어떠한 것인지 이야기하고 있다. 소설 속에서 서술자는 어릴 때부터 조용하고 어른들을 조금도 성가시게 하지 않았다,라고 어머니에게 듣곤 했다. 그래서 머리가 눌린 채로 성장했고 머리가 눌린 것이 그녀의 콤플렉스로 자리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서술자는 자신의 일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백화점 침구류 매장에서 판매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서술자는 백화점의 판매원, 계산원, 미화원, 조리원들의 증오 관계를 이야기하고 일을 능숙하게 처리하던 매니저의 이중적인 태도를 이야기한다. 또 고객들의 무리한 요구와 그로 인한 해프닝을 이야기하고 소파가 난도질당한 것을 의심받았던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녀는 계속 웃는다는 것이다. 그녀는 어떤 일에도 웃음을 잃은 적이 없다. 그것이 웃음이든, 웃늠이든, 정태이든 동태이든. 실수로 고객의 정강이를 이불 덩어리로 쳤을 때도 웃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고객은 이 상황에 웃어? 라며 화를 내지만, 그녀는 죄송합니다, 라면서 계속 웃는다. 여기서 의문이 든다.
어쩌면 서술자의 웃음은 자신을 향한 세상의 폭력에 대한 일종의 방어기제였을지도 모른다. 서술자의 인생을 돌아보자. 어릴 때부터 어머니에게 조용하고 성가시게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방치되어 눌린 뒷머리는 콤플렉스가 되었다. 백혈병에 걸린 어머니의 병원비를 낼 수 없을 정도의 넉넉하지 않은 경제적 상황으로 어머니를 떠나보냈다. 또 백화점 판매원으로 일하면서 웃을 수밖에 없는 웃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으로 내몰렸다. 그런 상황들이 그녀를 세상으로부터 움츠러들게 하지 않았을까.
또, 서술자는 끊임없이 세상의 폭력, 자본주의의 폭력에 방치되고 내몰리면서 살아왔다. 돈으로 인해 사용자와 노동자라는 계급이 생겨나고 노동자는 사용자를 위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구조. 단적으로 말하면 갑을 관계. 갑이 횡포를 부릴 때마다 을은 생존을 위해 저자세를 취해야 한다. 서술사 역시도 그런 저자세를 취하고 있다. 웃음을 지은 채로.
소설「야만적인 앨리스 씨」에서도 폭력의 문제가 드러난다는 점에서 이 소설과 유사하다. 「야만적인 앨리스 씨」에서 앨리시어가 어머니의 씨발됨에 저항하다가 끝내는 여장 부랑자로 남았던 것, 이 소설에서 고객의 공격적인 태도에 웃음을 지어 보였던 것에서 두 소설 모두 폭력에 노출되어 있다는 점에서는 유사하지만, 폭력에 대한 저항에서는 다르다. 이 소설에서는 고객의 갑질에 친절하게 응대하고 웃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생계가 위협당할 수 있기 때문에 저항할 수 없었던 것이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상당히 불공평하다. 불공평한 구조는 폭력을 양산하고 그 폭력은 함부로 휘둘러진다. 사람은 폭력을 혐오하지만 폭력을 이용해 사람을 폭력한다. 누구도 사람을 폭력할 권리가 없음에도 우리는 그렇게 한다. 폭력적인 세계 속의 '나'는 과연 어떤 사람인가. 앨리시어처럼 함께 욕하며 폭력에 저항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이 소설의 서술자처럼 웃음인지 웃늠인지 모를 웃음을, 정태인지 동태인지 모를 웃음을 웃고 있는 사람인가. 모서리와 첨단(尖端)으로 가득한 세상 속에서 나는 과연 어떠한 사람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