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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갈해리 Jul 12. 2022

사랑과 우정 사이

오토바이를 탄 그대

  그는 자신의 오토바이를 좋아했다. 아니, 사랑한다고 표현해야 맞을까. 어느 겨울날, 그가 나에게 새로 산 오토바이를 보여주며 함께 타보자고 제안했을 때, 나는 오토바이를 바라보는 그의 눈에서 마치 꿀이 떨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명마는 주인을 알아본다고 했던가. 그의 오토바이 또한 그랬던 것 같다. 스피드를 즐길 줄 아는 그를 태우고 오토바이는 잘도 도로 위를 달렸더랬다. 그는 나를 뒷자리에 앉히고 자주 드라이브를 나갔다. 그러면 속도감에 지레 겁먹은 나는 그의 재킷 옷자락을 손으로 꼭 움켜쥐고 그의 등에 붙어 한겨울의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아야 했다.

  적토마. 그는 자신의 오토바이에게 엄청난 이름을 붙여 주었다. 유명한 장수들만이 탄다고 일컬어지는 용사들의 애마. ‘인중여포 마중적토’라는 이름이 애석하지 않게 적토마는 한겨울의 빙판길 위에서도 잘 달렸다. 왜 하필 한겨울에 오토바이를 구매한 건지 나는 그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는 그때마다 바람은 칼바람이 제격이라며 장갑을 끼고 헬멧을 쓰면서 드라이브 준비를 단단히 했다. 나는 그의 뒷자리에서 장갑 없이 덜덜 떨어야만 했는데, 장갑이라도 꼈다면 덜 추웠을 것을, 그걸 챙기지 못한 것이 꽤나 후회가 되었다.

  여느 때처럼 그렇게 두 명의 남자가 적토마를 타고 도로를 질주하고 있을 때였다. 승용차 한 대가 옆에서 빵빵거리며 우리가 있는 차선으로 끼어들었다. 그 차는 계속 빵빵거리며 두 차선을 걸쳐 왔다 갔다 하기 시작했다.

  “뭐야, 저 새끼. 우리 놀리는 거 아냐?”

  화가 난 그는 앞차를 추월하기 위해 이쪽저쪽으로 손잡이를 움직이면서 속도를 냈다. 이리저리 움직이는 통에 속도감은 둘째치고 멀미가 날 것만 같았던 나는 그의 재킷 자락을 세게 움켜잡았다. 그러다 갑자기 그가 잡은 손잡이가 잠시 틀어지면서 오토바이의 중심이 흔들렸다. 오토바이 바퀴가 빙판길과 가까워지는 듯 보였다. 나는 지레 겁을 먹고 빽 소리 질렀다.

  “위험해!”

  그는 재빠르게 다시 손잡이를 꺾어 오토바이의 중심을 바로 세웠고,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하마터면 빙판길 위로 오토바이와 함께 두 사람이 슬라이딩할 뻔했던 아찔한 순간이었다.

  “휴우. 하마터면 황천길이 될 뻔했네.”
  “그러게 왜 앞차를 따라가 가지고...”

  오토바이는 길가에 멈춰 섰지만, 아직도 나는 그의 재킷 자락을 부여잡고 있었다. 순간, 나는 왠지 모르게 부끄러웠지만, 그는 내가 재킷을 잡고 있든 않든 신경조차 쓰지 않는 것 같았다. 그는 특유의 쾌활한 웃음을 내게 보여주었다. 그 웃음은 다 지난 일인데 어떠냐는, 사심 없이 순수하고 털털한 웃음이었다.

  그 뒤로 1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여자 친구가 생긴 그는 어느 날 나에게 다짜고짜 부탁을 해왔다.

  “나 좀 도와주라. 여자 친구 화 풀어줘야 해.”

  그는 여자 친구 화를 풀어줘야 한다는 명목으로 나와 함께 여자 친구가 사는 도시까지 차를 타고 가자고 했다.

  “미쳤어? 너 운전면허 딴 지 얼마나 됐다고?”

  운전면허 딴 지 일주일밖에 되지 않은 신참 운전자인 그는 용감하게도 고속도로를 타고 여자 친구에게 가서 용서를 구하겠다고 했다. 나는 아무리 중요한 일이라고 해도 이건 아니라고 했다. 굳이 목숨을 담보로 그런 행동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그가 내 옷자락을 붙잡고 애걸복걸하는 통에 나는 어쩔 수 없이 그의 차 조수석에 올라탈 수밖에 없었다.

  시동을 걸 때부터 뭔가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조짐이 좋지 않았다. 시동이 잘 걸리지 않아 몇 번이나 시도한 끝에 차가 겨우 앞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그러게, 좋은 차 좀 빌리지. 나는 구시렁댔지만, 그는 듣지 못한 건지, 아니면 듣지 않은 건지 운전하는 데에 여념이 없었다.

  차는 이제 고속도로에 진입하기 시작했다. 초보 운전자들은 보통 속력 내는 걸 두려워해 액셀을 잘 밟지 못했지만, 오토바이를 운전해봤던 그는 속도감을 제대로 즐길 줄 알았다. 그는 급한 마음에선지 액셀을 마구 밟아댔고, 그런 그의 행동에 나는 안절부절못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그래도 나는 그를 믿었다. 예전의 그 아찔했던 순간, 기적처럼 오토바이 손잡이를 꺾어 우리 두 사람을 살린 건 그의 기지였다. 가끔 그가 즐기는 속도감을 따라갈 수 없어 버거워했지만, 그래도 그와 함께라면 그런 장해들은 뛰어넘을 수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시속 150km 정도의 속도로 한창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을 때, 옆에서 어떤 차가 빵빵거리며 우리 앞으로 끼어들어 오고 있었다. 그가 그 차를 피해 오른쪽으로 핸들을 꺾은 순간, 나는 순간 그가 핸들을 너무 많이 꺾었다고 생각했다. 조수석 창문으로 오른편 차선에서 달려오던 승용차가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나는 심지어 그 승용차 운전자와 눈이 마주치기까지 했다.

  “핸들 돌려!”

  나는 그에게 다급하게 소리쳤고, 그는 다시 핸들을 중앙으로 맞췄다. 차는 약간의 덜컹거림과 함께 다시 차선을 따라 달리고 있었다.

  “너 진짜 운전 제대로 안 할래?”
  “미안해...”

  잔뜩 주눅이 든 그의 모습에 나는 순간적으로 실소가 터져 나올 뻔했지만, 웃음을 참았다.

  그의 여자 친구 집 앞에서 그는 끝내 자리에 주저앉아 울고야 말았다. 여자 친구는 그를 만나주지 않았고, 나는 가슴 아파하는 그를 지켜봐야만 했다. 그런 그를 보면서 나는 여러 생각에 잠길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의 자유로움을 사랑했다. 속도감을 즐길 줄 알고, 누구보다 자유롭게 살아가는 그가 좋았다. 우리는 당장은 위험천만하고 불안해 보여도 겪고 나면 웃으면서 그땐 그랬지 할 수 있는 사이였고, 그런 관계를 우정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애정과 우정은 어떻게 다른 건가요?" 하고 한 상담가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상담가는 대답했다.

  “애정과 우정의 본질은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가 어떤 대상과 호감이나 애정을 나누고 있는지가 중요하죠.”
  “그렇군요. 그렇다면 애정일 수도, 우정일 수도 있는 관계가 있는 건가요?”
  “그럴 수도 있겠죠.”

  아직도 나는 그의 재킷을 세게 움켜쥐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게 지금의 그에게 장해가 되어 그를 큰 위험에 빠뜨릴까, 아니면 그를 위험에서 구하는 구조 신호가 될까. 그는 그대로, 그의 속도를 즐기고 있는데, 그는 그의 자유를 만끽하고 있는데, 나만 두려워 떨고 있는 건 아닐까. 나는 그때 그의 재킷이 아니라, 그의 허리를 잡았어야 하는 게 아니었을까. 그도 분명 거절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에게 더 다가가 볼까.

  아니다. 그는 애정과 우정을 구별할 줄 아는 사람이다. 본질이 다르지 않다고 차이가 없을 수 없다. 나는 그와 다르다. 한겨울에도 오토바이를 타고 도로를 질주했던, 대범했던 그와 칼바람에 잔뜩 겁을 먹었던, 소심했던 나는 분명 다를 것이다.
그렇게 나는 내 눈과 귀와 입과 마음을 닫아버리기로 결정했다. 어느샌가 나와 그의 거리는 멀어졌고, 서로 연락이 뜸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가 그렇게 좋아하던 오토바이를 타고 나갔다 교통사고로 뇌사상태에 빠졌다는. 갑작스러운 소식에 머리가 아찔하고 속이 뒤집히는 것만 같았다. 그렇지만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그를 생각하니, 나는 억지로라도 힘을 내야 했다. 옷가지를 주워 입고 다급하게 그에게로 향한다. 이렇게 가지 말아 줘. 내가 아직도 너의 재킷을 움켜쥐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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