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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갈해리 Jul 28. 2022

선비와 폭군(7)

부산에서의 위기

  배에 탄 태경과 식솔들은 갑판에서 쪽잠을 잘 수밖에 없었다. 저마다 쪼그리고 앉아 잠을 청하고 있었다.

  한편, 성 부자는 다리의 상처로 인해 열이 나고 있었다. 성 부자의 좌우에서 아내 이 씨와 첫째 딸 순자, 둘째 딸 명자가 성 부자를 돌보고 있었는데, 열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아 아내 이 씨가 물수건으로 성 부자의 열을 식히기 위해 계속 몸을 닦아냈다. 곁에서 지켜보고 있던 유 씨가 아들 태경에게 말했다.


  "사돈의 열이 가라앉지 않고 있으니, 이거 큰일이구나."

  "조금만 가면 곧 부산입니다. 부산에 도착해 바로 병원을 찾아가면 될 듯합니다."


  태경은 선실로 들어가 운항 중인 선장을 만났다.


  "얼마나 가면 부산에 도착하겠습니까?"

  "여기서 두세 시간만 더 가면 곧 부산입니다."

  "서둘러 주십시오. 장인어른께서 생사의 기로에 놓여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배는 주변의 암초들을 아슬아슬 피해 가면서 최대 속도로 남해안을 따라 부산으로 향하고 있었다.


  부산에 당도한 것은 어스름이 끼어 있는 시각이었다. 바다 주변이 모두 어두운 곳에 등대 불빛이 홀로 떠 있었다.


  "부산에 도착했습니다!"


  부산에 도착했다는 말을 듣자, 식솔들은 저마다 잠에서 깨어나 부산항을 바라봤다. 등대 불빛만 보이던 부산항은 드디어 그 모습을 드러냈다. 거대한 전투함들에서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고, 크고 작은 여객선과 어선들도 불빛을 내고 있었다. 부산항에 거의 다다르자, 선실의 무전기로 누군가 말을 해오고 있었다. 아마도 부산항 관계자인 것 같았다.


  "어디서 오는 배요?"

  "여수에서 오는 어선입니다. 부산에 볼 일이 있어 왔습니다."

  "부산항에 입항 후 신원 조회를 실시하겠소. 협조하시오."


  어선이 부산항에 정박하고, 태경과 식솔들은 배에서 내려 육지로 올라갔다. 부산항에는 제복을 입은 경찰들이 항구에 내리는 사람들의 신원을 조회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각자 등록표(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최초의 신분증)를 제시하고서 경찰들이 몸을 수색하자, 순순히 두 팔을 벌려 수색하도록 놔두었다. 태경과 식솔들도 등록표를 들고서 자신들의 차례가 되기만 기다렸다.

  드디어 경찰들이 태경과 식솔들에게 다가왔다. 식솔들은 저마다 등록표를 제시하고 몸수색을 받았다. 식솔들은 대부분 통과되었다. 기절해 있던 최 씨 노인 역시 부산항에 정박하기 직전에 깨어나 하인의 부축을 받은 채 등록표를 제시하고 통과되었다. 이제 남은 건 태경과 성 부자, 선장뿐이었다. 경찰들은 성 부자가 다리에 상처를 입은 것을 보자, 성 부자를 이상하게 쳐다봤다.


  "어쩌다가 다쳤소?"

  "배에 오르다 갑판에 접질렸습니다."

  "내 보기엔 총상 같은데?"

  "총상이라니요. 아닙니다요."

  "어디서 왔다고?"

  "여수에서 왔습니다."

  "일단 이 자들을 잡아라!"


  경찰들은 여수 어선에서 내린 태경과 순자의 식솔뿐만 아니라, 최 씨 노인 일가까지 모두 다시 잡아들였다. 통과되었던 식솔들은 다시 잡히자, 모두 겁에 질려 벌벌 떨었다. 태경은 경찰들에게 소리쳤다.


  "대체 왜 이러십니까?"

  "여수에서 빨갱이들이 도주했다는 보고가 있었다. 당신들이 여수 빨갱이들인지 아닌지 확인해야겠어. 협조하시오."


  경찰에 스무 명 남짓한 사람들이 모두 경찰서로 연행되었다. 그들은 경찰서에 도착해 유치장에 넣어졌다. 그들이 유치장에 들어가자, 경찰은 그들을 놔둔 채 자리를 떴다. 아버지 유 씨가 조용히 태경에게 물었다.


  "이거 어쩌면 좋으냐? 우리가 여수에서 군인들을 피해 탈출한 걸 알면 저들이 우리를 가만 두겠느냐?"

  "그러게 말입니다. 이거 어쩌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때, 앓고 있던 성 부자가 그들에게 말했다.


  "저들을 돈으로라도 매수해 보는 게 좋겠습니다."

  "빨갱이 관련해서 꽤 혈안이 되어 있는 것 같은데, 매수가 되겠습니까?"

  "전재산을 걸고서라도 여기서 빠져나가야지 어쩔 수 없네."


  성 부자는 유치장에서 경찰을 불렀다.


  "나으리, 경찰 나으리, 계십니까?"

  "왜 불렀소?"

  "저희는 여수 빨갱이 일과는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요. 믿어 주십시오."

  "그래도 조사가 다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여기서 나갈 수 없소."

  "여기 오백 원입니다. 이 정도 돈이면 풍족하게 살 수 있을 것입니다. 부디 이 돈을 받으시고, 저희를 풀어 주십시오."


  경찰은 돈을 보고 놀라는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다시 무뚝뚝한 말투로 말했다.


  "그런 돈으로 매수할 생각 마시오. 정부에서 빨갱이들은 다 잡아들이라고 했소."


  경찰은 몇 분 정도 유치장에서 서성이다가 다른 곳으로 자리를 떠났다.


  "이를 어쩌면 좋겠느냐? 태경아, 네게 무슨 생각 없느냐?"

  "저도 딱히 떠오르는 게 없습니다, 아버님."

  "아, 이를 어쩌면 좋단 말이냐..."


  그렇게 유치장에서 지내게 된 태경의 식솔들은 졸지에 빨갱이로 몰리게 되었다. 옴치고 뛸 수 없을 만큼 그들은 위기에 봉착해 있었다. 그때였다. 유치장 밖에서 그들을 바라보는 사람이 있었으니, 부산 경찰서장 총경 한 씨였다. 한 씨는 졸지에 스무 명이나 되는 식솔들이 한꺼번에 유치장에 들어온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어쩌다 이 많은 인원이 연행되어 왔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안쓰럽게 느껴지기도 한 한 씨였다. 한 씨는 유치장으로 다가가 태경을 비롯한 사람들에게 물었다.


  "어쩌다 이렇게들 잡혀온 거요?"


  태경은 한 씨가 입은 제복을 보니, 총경을 가리키는 무궁화 4개가 제복 어깨에 달려 있었다. 태경은 철창 가까이 다가가 경찰서장 한 씨에게 말했다.


  "저희는 빨갱이도 아닌데, 빨갱이로 오해를 받아 이렇게 붙잡혀 오게 되었습니다."

  "당신들이 빨갱이가 아니라는 증거라도 있소?"

  "제발 믿어 주십시오. 저희는 화성에서 선량하게 살아오던 가문일 뿐입니다."

  "그러면 여수에서는 왜 빨갱이로 몰렸소?"

  "그것은..."


  태경이 말을 얼버무리자, 이번에는 성 부자가 나서서 말했다.


  "저희가 군인들을 피해 도망가려다가 그랬습니다."

  "왜 군인들을 피해 도망을 갔소?"

  "전쟁통이라 군인들에게 붙잡히면 바로 빨갱이로 몰려 죽임을 당할까 겁이 났습니다."

  "아무리 겁이 났다고 해도 도망치면 가중 처벌되는 걸 모른단 말이요."

  "아이고, 그런 줄 몰랐습니다.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식솔들은 저마다 땅에 엎드려 총경 한 씨에게 용서를 구했다. 총경 한 씨는 원래 선량한 사람이었다. 무고한 사람들이 잡혀 들어와 곤혹을 치르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었다. 게다가 성 부자는 다리에 상처를 입어 열이 불덩이같이 나고 있었고, 순자는 임신한 상태인지라 여간 힘들어 보이지 않았다. 한 씨는 부하 경찰에게 명령했다.


  "이들을 풀어줘라!"

  "그러나 정부에서 빨갱이들을 잡아들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들은 빨갱이가 아니다. 내가 보증한다. 어서 풀어줘라!"


  부하 경찰은 표정은 못마땅했지만, 한 씨의 명령에 어쩔 수 없이 복종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태경의 식솔들을 유치장의 철문을 열어주고 나오도록 했다.


  "현재 정부군이 빨치산, 빨갱이들을 잡아들이고 있는 와중이라 경계가 삼엄하오. 모쪼록 특이한 행동들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요. 이제 가 봐도 좋소."

  "총경 나으리,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태경과 식솔들은 경찰서장에게 두 번 세 번 감사 인사를 하고, 경찰서를 빠져나왔다. 그리고 곧바로 성 부자의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 전체가 마치 폭탄을 맞은 것처럼 복잡하고 어수선했다. 환자들로 가득했는데, 전쟁통에 중상을 입은 군인들이 대다수였다. 그들은 전방에서 부상을 입고 후방으로 호송되어 온 것 같았다. 어떤 이는 총알이 어깨를 관통한 이도 있었고, 어떤 이는 머리를 다쳐 머리의 반을 붕대로 감고 있었다. 다들 고통을 참지 못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간호사들과 의사들도 정신없이 환자들을 돌보느라 여념이 없었다. 아내 이 씨는 대기증을 받고 의사들이 성 부자를 치료해 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몇 시간을 기다려도 그들은 성 부자를 보러 오지 않았다. 태경이 간호사를 붙잡고 청을 하니, 그제야 간호사가 의사를 데리고 성 부자의 상태를 보기 위해 왔다. 의사는 성 부자의 다리에 감은 헝겊을 풀었다. 성 부자의 다리는 탱탱하게 잔뜩 부어 있었고, 상처 부위가 점점 곪아가고 있었다.


  "이거, 다리에 박힌 총알을 꺼내지 않았군요. 총알을 꺼내지 않으면 다리를 잘라내야 합니다."

  "그러면 수술을 해야 합니까?"

  "총알만 꺼내면 되는 처치입니다. 환자분, 잠시만 고통을 참아보세요."


  의사는 간호사에게 처치 도구를 가져오게 했다. 그리고 핀셋으로 다리 상처를 이리저리 후벼 팠다. 성 부자는 고통에 마구 몸부림쳤다. 태경과 집사는 성 부자가 못 움직이게 양쪽 팔을 잡았다. 핀셋은 다행히 다리에 박힌 총알을 찾아냈고, 의사는 총알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성 부자의 상처에 연고를 바르고 붕대를 감았다. 그리고 간호사에게 항생제 주사를 성 부자의 팔에 놓게 했다.


  "상처를 치료하고, 항생제 주사를 놓았으니, 이제 곧 열이 가라앉을 겁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의사 선생님."


  의사와 간호사가 다른 환자를 보러 가자, 성 부자의 아내 이 씨와 순자, 명자가 성 부자에게 다가왔다. 아내 이 씨는 손수건으로 성 부자의 땀을 닦아냈다.


  "장인어른, 이제 한 시름 놓겠습니다."

  "그래, 하늘이 우릴 도우셨어."


  태경의 아버지 유 씨와 유 진사, 서 씨도 성 부자가 처치를 받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유 씨도 치료를 잘 받은 성 부자에게 말했다.


  "사돈, 애쓰셨습니다."

  "고맙습니다, 사돈."

  "이제 우리는 부산에서 머무를 곳을 찾으러 가볼까 합니다. 태경이는 나를 따라오고, 순자는 여기 있거라."

  "예, 아버님."


  유 씨를 따라온 식솔들은 원래 유가의 일가친척들과 최 씨 노인의 일가였다. 성 부자의 일가와 하인들은 병원에 머물렀다.


  "강 집사, 부산에 머무를 여관이 있나 한 번 찾아보게. 전쟁통이라 아무래도 여관 찾기가 쉽지는 않을 걸세."

  "예, 영감마님."


  유 씨는 부산 병원을 나와 길거리를 바라보았다. 길거리에는 전국 각지에서 온 사람들로 가득했다. 어떤 이는 시장 좌판에서 장사하는 이도 있었고, 또 어떤 이는 사람들에게 구걸을 하는 이도 있었다. 전쟁통에 부모를 잃어 길거리를 헤매는 아이들도 있었다.


  "전쟁이 나니, 세상이 아수라장이 되었구나. 혼란한 세상이야."

  "이 부산마저도 인민군에 점령당하면 어쩝니까? 영감."

  "그러게 말이오. 화성은 지금쯤 어떻게 되었을지 모르겠소."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


  태경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말씀을 들어보니, 정말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이 전쟁의 끝에는 과연 무엇이 남을까. 이 한반도의 산과 들, 마을과 고향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는 것은 아닐까. 우리들이 갈 수 있는 곳은 있을까. 부산에 오니, 회의적인 생각은 자꾸만 깊어져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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