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7년전 쯤 제가 도저히 뛰어넘을 수 없는 직급의 차이를 가진 여성 관리자를 만났습니다.
나이는 6-7살 나지만 공무원 직급은 죽었다 깨어나도 도달할 수 없는 자리에 계신 분이었습니다.
그때 그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우리가 태어났을 때는 저분이나 나나 동일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을텐데 어디서부터 이런 차이가 났을까?”
그분은 우리 기관의 부기관장이었고 혹시나 공·사적으로 뵙고 싶으면 비서실을 통해 일정을 확인하고 허락을 받아야만 하는 존재였습니다. 같은 시대를 살고 같은 직장을 다니지만 그분과는 결코 동등할 수 없는 묘한 정서적 계급이 존재하고 있었던 겁니다.
한동안 혼자만의 열병 같은 것을 앓았던 것 같습니다.
나와 다른 부유한 집안, 행정고시 출신, 미국 유학, 교수 남편, 서울대를 다니는 자녀들!
어느것 하나 대단하지 않은 것이 없었습니다.
너무나 우아한 외모와 똑소리 나는 업무추진력까지~
그러던 어느날 우리에게 큰 공통점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책 이었습니다.
직장 내 독서동아리를 구성하고 일과 후 독서토론을 하며 정말 신나게 떠들어 대었습니다.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사고의 장은 외부의 제약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묘한 심리적 경쟁도 가능했습니다.
그래서 그분보다 한 권이라도 책을 더 읽어내기 위해 정말 열심히 몰입했었습니다.
덕분에 우리는 정신적 친구가 되어 있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그분이 다른 지역으로 떠나시고 그리움을 안고 살아가던 시간 코로나로 인해 확장된 줌이 다시 우리를 엮어주었습니다.
즉 줌으로 독서동아리를 다시 시작하게 된 것이지요.
그렇게 무의식적으로 흘러간 오랜 시간속에 우리는 이제 제법 서로의 개인사정에 대해 속속들이 공유하게 되었고 저 깊은 곳의 나약한 정서도 같이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보이는 것과 상관없이 먹고 살고 아프고 기쁘고 하는 것은 별반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요.
그분도 여자이고 엄마이고 감정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아파하고 좋아라하던 모든 것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가끔은 제가 당연히 가지고 있던 사연들이 그분에게는 또 다른 감사가 되기도 했구요.
사람이 각자 저마다의 모습이 다르듯 사연도 다르다는 것이 맞구나 싶습니다.
요즘 저는 내가 주인이 되는 인생을 위해 매일 나를 뒤돌아 보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고 있습니다.
분명 오늘보다 내일이 더 좋아질것이고 아직 때가 되지 않았을 뿐 나는 반드시 내가 생각한 것들에 도달하리라는 것을 굳게 믿습니다.
그러니 매일이 신나서 춤추는 소녀의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구요.
그러다 최근 제법 당찬 꿈을 꾸었습니다.
만약 내가 매일을 이렇게 열심히 살아가고 나의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내가 퇴직후에는 어쩜 그분을 뛰어넘는 인생역전이 가능 할 수도 있겠다 하는 것입니다.
이 조직안에서 비교하니 내가 뛰어넘지 못할 벽들이 있는 것이지 경기장을 바꾸어 다른 종목을 하게 된다면 다른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지요.
지금의 나는 20대의 내가 기반이 되어 연계되어 온 것입니다. 그런데 그 20대와 비슷한 인생의 결정기가 한 번 더 오는데 그게 60대입니다.
그때 우리는 그동안 종사하고 있던 직장을 퇴직하고 자녀들도 독립시키고 다시 후반기 인생의 출발선에 서게 됩니다.
즉 인생 후반전이 리셋 되는 변곡의 시기를 만나는 것입니다.
쇼트트랙 경기에서 묘미는 추월 장면입니다.
직선에서는 쭉쭉 따라가는 레이스를 펼치다 급격한 코너를 만나게 되면 고도의 코너링으로 추월이 가능하게 됩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내가 추월해야 하는 상대 선수를 최대한 밀착해서 직선 레이스를 펼치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렬려면 어쨌든 현재 경기를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 기본이 되어야 합니다.
현재 저는 남다를 것이 없는 평범한 사람입니다. 그저 제 자리에서 주어진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는 모습만이 보일 뿐입니다. 그러나 제게는 늘 새로운 희망과 그것을 위해 나아가는 개인적 시간들이 존재합니다.
감자와 고구마는 비슷한 듯 하지만 수확시기도 다르고 그 맛도 다릅니다.
사람도 각자가 가진 정체성과 수확의 시기가 다릅니다. 그러니 타인을 기준으로 나의 현재를 비교하며 힘들어 할 이유가 없습니다.
인생의 수확시기가 다른 것 뿐입니다. 제가 모셨던 그 관리자분이 젊은 시절부터 열매를 맺는 인생이었다면 저는 인생 후반으로 갈수록 그 결과를 만나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니 나의 시기를 기다리며 묵묵히 걸어가면 됩니다.
내가 언제 어떤 꽃을 피우고 어떤 과실을 맺을지는 모릅니다. 다만 분명 크고 달콤할 것이라는 것은 확신합니다.
오늘도 나는 인생 후반전 역전을 꿈꾸며 열심히 손짓 발짓을 휘젓고 있습니다.
먼 후일 그때 누군가가 나를 보며 말할지도 모릅니다.
“아, 저분과 나는 어디에서 차이가 나기 시작한 것일까?”
그럼 저는 이렇게 대답하겠지요.
“바로 오늘 이 순간이요. 내가 숨 쉬는 이 시간 즉시 내딛는 한 걸음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그러니 바꾸지 못하는 과거의 안타까움에 사로잡히지 말고 현재 나의 레이스에 집중하세요.
그럼 언젠가 우리는 정말 멋진 코너링으로 역전의 승리를 맛보게 될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