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질문이다.
나는 다시 빈 칸을 채워 나간다.
질문지에 답을 하는 이 곳은 작지만 조용하고 아득한 방이다.
향이 좋고, 잔잔한 음악이 흘러 마음을 편하게 한다.
하지만 질문지는 무겁고 답답하다.
그래서 종종 누가 보는 사람도 없는데 나는 주위를 의식하면서 글을 써 내려간다.
이번 질문은 특히 무겁다.
나는 꾹꾹 눌러 쓴다.
내가 어렸을 때는 [아팠고, 어른들은 나빴다]
돌이켜 보면 어떤 것들은 확실히 사라지지 않는다.
하나의 덩어리로 기억되는, 뽀얗게 먼지를 뒤집어 쓴 상자 속 인형처럼
시절은 기억이라는 상자에 담겨 어딘가에 살아 있다.
쫓기듯 지나온 시간과 눈치보며 살아야 했던 어린 시절의 쓰린 감각도
기억이라는 상자에 담기면 폴짝 뛰어들고 싶어질 만큼 폭신폭신하고 몽글몽글한 감각으로 남는다.
염치라는 것 때문에 괜찮지 않았던 시간도, 좋아하는 마음보다 더 큰 창피함에 달아났던 언덕 위의 가쁜 숨도
그리움이라는 단어로 쓱 뭉개버릴 수 있는 것이 마법 같은 단어, ‘시절’이다.
종종 어린 날을 이야기하라고 하면 우리는 이 ‘시절’이라는 마법에 걸려 낭만적 정서에 빠져들곤 한다.
하지만 사실 우리의 어린 시절은 낭만적이지도 예쁘지도 않았다.
나는 어린 시절의 나와 만나 화해하고, 조금 더 나은 어른이 되고 싶어서 지금 상담을 받고 있지만 사실 할 수만 있다면 나의 어린 시절을 지워버리고 싶을 때도 있다.
울렁거림에 가까운 소동의 시간 속
나는 아팠고, 어른들은 나빴다.
어른들은 모두 겪는 일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그 어린 날의 시간들은
왜 그렇게 날을 세워 날카로웠는지....
그럼에도 그 시절을 이야기하자면, 볕 좋은 마루에 누워 까무룩 잠이 들었던 순간처럼 아늑하거나,
지금의 마음과 너무 멀어 아득해지곤 한다.
철없던 삶과 덧없는 지금의 시간, 사이에서 내가 느끼는 감정이 그리움인지,
그리움에 대한 기억인지 모르겠다.
늘 떠나려 하지만 결국 되돌아와 의지하고 싶은 집처럼, 나의 과거는 단단하고 낡은 집처럼 아늑하고도 아득하게 마음에 벽을 친다.
마치 카메라 보다 뒤쳐진 피사체처럼 우리는 시간 속에서 계속 멀어진다. 허덕대며 뒤쫓거나, 헐떡대며 달아나려 했지만 시간 보다 한 발짝 늦었던 그 시절,
나는 아팠고,
어른들은 한결 같이 참 나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