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은 코로나 세대다. 고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감염병으로 인하여학교가 문을 닫았다. 갑작스럽게 전환된 온라인 수업, 고등학교에 적응해야 할 중요한 순간을 온라인으로 대체하다 보니 아들은 쉽게 풀어졌다. 수업을 틀어 놓고서 게임을 하기도 하고, 유튜브를 보기도 했다. 어떤 날은 친구들과 밤을 새우며 게임을 하기도 했다. 게임을 절제하지 못하면서 자연스럽게 공부에도 관심이 사라져 갔다.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 순간에 수학을 포기하는 것 같더니, 점점 포기하는 과목이 늘어났다.
그런 아이에게 갑자기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 모르겠지만, 아들은 요즘 들어 하루 종일 공부만 하고 있다.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이런 일이 우리 아들에게 일어나고 있다니 너무 감사하다. 아들 스스로 노력해서 변화된 것이지만, 내가 한 가지 잘한 것이 있다면, 아이에게 억지로 공부하라고 강요하지 않은 점이다. 기다리다 보면, 아이 스스로 자신의 꿈을 발견하고 공부하기 위해 노력할 날이 올 것이라고 믿었다. 다행히 아이가 아빠의 기대를 깨뜨리지 않아 얼마나 감사한 줄 모른다.
며칠 전에아들이 방학을 했다. 수능을 앞둔 마지막 방학이라 그런지 이번 방학을 맞이하는 아들의 각오가 남다르다. 아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있자면 놀랄 때가 많다. 아들은 ‘이번 방학에는 노는 시간을 최대한 줄이고 공부만 하겠다’라고 했다. 또한 ‘공부 체력을 기르기 위해서 잘 먹어야 한다’라며 건강한 식단을 주문했다. ‘자신의 공부에 적합한 수면 시간은 7시간 이기에 그 시간에 맞게 잠을 자려고 한다’라고 말하는 아들은 과연 방언이 터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공부를 하며 점점 자신을 알아가며 성장하는 아들이 대견하다.
그중에서 나를 가장 놀라게 한 것은 ‘오늘부터는 수학을 제대로 공부하려고 한다’라며 당찬 포부를 밝히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어제는 하루 종일 수학을 공부했는데, 머리에 쥐가 나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힘들기는 한데 못 할 만큼 어려운 일은 아니더라’라는 말도 했다. 수학이라면 진절머리를 치던 아들의 변화에 커다란 박수를 보낸다.
최근에는 유튜브 앱을 지웠다고 했다. 공부하다가도 심심할 때면 유튜브를 보며 머리를 식힐 만도 한데, 아들은 공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유튜브를 지워버렸다. 1달 전에는 게임을 하며 친구들과 대화하는 앱도 지웠다고 하더니. 요즘 아들의 행위는 공부에 도움이 되지 않는 행위는 일절 하지 않을 태세다.
아들이 공부에 임하는 태도가 사뭇 진지하다. 아들의 변화와 성장 과정을 바라보며 삶의 기적과 반전을 믿게 된다. 조금씩 발전하는 아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나 또한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
오늘은 방학 후의 첫 번째 토요일이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아들을 학원에 데려다주었다. 학원 근처의 상가에 주차하며, 아들에게 “오늘은 무엇을 먹을래?”라고 물었다. 아들은 전에 갔던 초밥집에 가고 싶다고 했다.
식당에서 메뉴를 살피며, 이번에는좀 더 맛있는 음식을 주문하자고 말했다. 우리는 초밥 10피스에, 우동 반 그릇, 튀김 3조각이 나오는 메뉴를 선택했다. 음식이 나오는 동안에 우리는 밀렸던 대화를 나눴다.
아들은최근에 혼자서 이 식당에 온 적이 있었다고 했다. 이전에 아빠랑 같이 와서 먹었던 메뉴를 주문했었는데, 그때도 맛있게 먹었다고 말했다. 2주 전에 우리가 이 식당을 방문했을 때, 아들이 혼자서도 이 식당에 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아들이 선택하기 좋을 점심 특선 메뉴를 시켰었다. 나의 예상대로 아들은 혼자서도 별 어려움 없이 이 식당을 방문했다고 했다. 아들이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점점 많아져서 기분이 좋았다.
나는 아들에게 “넌, 어떤 학과에 가고 싶니?”라고 물었다. 아들은 망설이지 않고 “문예창작학과”라고 답했다. 아들이 글 쓰는 데 관심이 있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전공으로 생각할 정도였는지는 몰랐다. 어쩌면 우리는 부자간에 작가가 될지도 모르겠다. 아빠가 글을 쓰고 있는 것을 지켜보던 아들에게 아빠의 일상이 괜찮게 보였나 보다. 어쩌면 '아빠도 글을 쓰는데 나라고 못쓰겠나?'라는 생각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아들에게 우리가 작가가 된다면, 쓰고 있는 글의 주제에 대해 토론하고, 글의 진행 방향과 내용, 편집에 대해서도 의견을 교환할 수 있겠다고 말했다. 아들도 내 말에 동의하며 그러면 재밌겠다면서 어쩌면 같은 주제에 관한 다른 생각을 글로 써서 세대 간의 차이점도 확인할 수 있겠다고 했다. 아들과 나는 우리의 미래에 관해 즐거운 상상을 하며 식사를 했다.
식당을 나오며 우리는 횡단보도로 접어들었다. 신호등을 기다리며 나는 2주 전쯤에 횡단보도를 걷다가 되돌아갈 뻔했던 일을 아들에게 말했다. 그리고 그 내용에 대해서 글을 쓰며, 아빠의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았고, 아들에게 어떻게 하면 좋은 아빠가 될 것인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빠는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조금 미숙한 것 같다”라며 아들에게 아빠의 부족한 사랑에 대해 고백했다. 앞으로는아빠가 아들의 마음을 서운하게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며, 만약 아빠가 아들의 마음을 몰라주거나 섭섭하게 행동하는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달라고도 했다.
아들의 얼굴에 미소가번졌다. 신호등이 바뀌면서 우리는 발걸음을 옮겼다. 아들에게 사랑을 전하며 길을 건너는데, 온 세상이 밝아지며 발걸음이 경쾌해지는 것 같았다. 오늘은 무슨 일을 하더라도신이 날것 같다. 사랑을 전하는 행위는 사랑을 받는 행위만큼 엄청난 에너지를 담고 있다. 아들에게 사랑을 전하는 아빠가 될 수 있어서 좋다.
학원 앞에 있는 엘리베이터에 도착했다. 엘리베이터는 1층에 머무르고 있었다. 아들이 버튼을 누르려는 순간, 나는 재빨리 손을 뻗어 손바닥으로 버튼을 쳤다. 그러면서 “내가 먼저 눌렀다”라고 했다.
아들은 아빠가 행한 유치한장난에 웃음을 터트렸다. 누가 먼저 버튼을 누르는가,라는 내기를 한 것도 아닌데, 혼자서 폭주하는 아빠의 행동이 귀여워 보였는지 엘리베이터를 타는 아들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아들에게 웃음을 선물한 것 같아 기분이 좋다. 이 웃음이 오늘 아들이만나게 될 수학에서의 힘든 장애물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아들이 기분 좋은 하루를 시작하는 데 도움이 된 것 같아 행복하다. 아들에게 줄 수 있는 삶의 최선이란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을 함께하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