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지앵들에게 가고 싶은 여름 휴가지를 물었을 때 빠지지 않고 순위에 이름을 올리는 곳이 있다.
브르타뉴 앞바다에 있는 섬 중 가장 큰 섬. 프랑스 서쪽 끝의 조그만 항구 키베홍(Quiberon)에서 배를 타고 40여분이면 도착하는 섬.
'벨 일(Belle-Ile)'이다.
‘별 일’이 아니라 '아름다운 섬'이란 뜻의 ‘벨 일’이다. 이름조차도 '아름다운 섬'이란다. 정식 명칭은 Belle-ile-en-Mer다.
섬은 바다와 어우러지는 풍광들로 웬만하면 아름답기 마련이지만 이 섬은 얼마나 아름다우면 이름을 아예 ‘아름다운 섬’이라 지었을까?
'아름답다'라고 하면 먼저 떠오르는 보기에 좋고 예쁜 이미지들이 있다. '벨 일'은 그런 전형적인 아름다움 뿐만 아니라 자연 본래의 다듬어지지 않은 거칠고 야생적인 아름다움까지 함께 가지고 있어 보는 이들이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보는 시각에 따라 다양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니 프랑스인들이 생각하는 아름다움의 기준이 어떤 것인지를 가늠케 한다.
이러한 매력에 이끌려온 유명한 사람들의 다양한 사연도 재미를 더해 주는데, 전설적인 프랑스 국민 여배우가 사랑했던 여름 별장도 있고 모네가 그의 연작 활동을 최초로 시작한 것으로 알려진 거칠고 매력적인 해변도 있으며 루이 14세에게 미움을 사 철가면의 주인공일지도 모른다는 루머의 주인공 니콜라 푸케(Nicolas Fouquet)는 한때 이 섬의 주인이기도 했다.
그다지 크지도 않은 섬에 벌써 이야깃거리가 많은 것 같은데 자연 풍광 또한 독특한(?) 매력을 가지고 있어 여름이면 많은 피서객들이 찾아오는 곳이다. 브르타뉴 여행 끝자락에 배를 타리라고는 상상도 안 했는데 '벨 일'로 떠나는 키베홍 항은 휴가철이 아님에도 이미 승선을 기다리는 많은 이들로 붐비고 있었다.
이제는 어디를 가더라도 나 혼자 일 것이라는 생각은 버리는 게 당연한 세상이 되었음을 다시 한번 실감케 한다.
'벨 일'로 떠나는 키베홍 항구
‘벨 일’로 가는 뱃길은 섬에서 가장 가까운 육지인 키베홍(Quiberon) 반도의 항구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키베홍에서 14km 떨어진 가까운 앞바다에 있는 '벨 일'은 날씨가 쾌청할 때는 육지에서도 보인다고 하는데 가로 9km, 세로 17km의 섬으로 크기로 치자면 서울의 칠 분의 일 정도의 크기다.
보기 나름이겠지만 섬을 한 바퀴 돌아보는데 하루면 충분하다.
'르 빨레' 선착장
섬에는 ‘르 빨레(Le palais)’와 ‘써종(Sauzon)’이라는 두 개의 항구가 있는데 브르타뉴에서 출발하는 배는 ‘르 빨레’ 항구에 도착한다. 키베홍에서 떠난 배가 쾌속으로 달려 40여분 만에 도착한 항구 ‘르 빨레’에는 배가 선착장으로 서서히 들어오면 거대한 성곽이 방문객들을 제일 먼저 맞이한다. ‘보방요새(Citadelle Vauban)’다.
보방(Vauban:1633-1707)은 루이 14세 시대에 군인 출신의 요새 건설 명장으로 프랑스 전역에 300여 개에 달하는 요새가 그의 작품이다. 그중 12개는 유네스코 세계 유산에도 등재되었는데 알자스 지방의 프랑스와 독일 국경에 있는 'Neuf Brisach'는 그의 대표적 작품이다. '벨 일'의 보방 요새는 기존에 있던 요새를 증축하여 막강한 성벽으로 리모델링한 요새로 '보방'이란 이름만으로도 다시 한번 쳐다보게 되는 '벨 일'의 관문이다.
선상에서 바라본 보방요새
보방 요새 조감도(좌), 유네스코 세계 유산 'Neuf Brisach"요새(우)
1960년 개인 소유가 되면서 군사적 소임은 더 이상 하지 않고 호텔과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탄탄하게 만들어진 성벽만이 요새로서의 위용을 보이고 있다. 박물관에 들어서면 낯익은 흉상이 눈에 들어온다.
보방 요새 입구와 박물관
니콜라 푸케(좌), 보방(우)
루이 14세 시절 재무장관을 지낸 니콜라 푸케(1615-1680)의 흉상이다. 그 옆에는 보방의 흉상도 있다. 재무 장관이었던 니콜라 푸케는 그의 소유였던 보르비꽁트(Vaux-le-Vicomte) 성에서 너무 화려한 집들이를 하다 루이 14세에게 괘씸죄에 걸려 무기형을 선고받은 바로 그 인물이다. 아름다운 보르비콩트 성은 베르사유 궁전의 모티브가 된 성으로도 유명하다(https://brunch.co.kr/@cielbleu/8 참조). 푸케는 브르타뉴에서 상업으로 부를 축적한 소위 브르타뉴 재벌 가문이었는데 한창 잘 나가던 시절인 1658년에 아예 이 섬을 사버렸다고 한다. 부동산 투기가 아니라 이 섬을 대서양을 넘어 식민지 탐험의 출발지로 삼으려 했다고.
그러나 그가 1661년 유죄를 선고받고 투옥되는 바람에 그의 원대한 꿈은 이뤄지지 못했다.
선착장에 있는 고이렁 레스토랑(왼편 오렌지색 건물이다)
고이렁 레스토랑의 아늑한 내부
‘르 빨레’ 항구에도 여느 항구들처럼 선술집과 식당들이 즐비하다.
어느 여행지에서나 현지인들이 좋아하는 식당은 큰 실패가 없는 법. 나도 한 곳을 소개받아 가 보았는데 역시 바닷가라 그런지 해산물 요리가 썩 괜찮았다. ‘르 고이렁(Le Goeland:바다 갈매기)’ 이 바로 그곳. 음식 맛도 좋았지만 편안한 분위기와 친절한 서비스로 기억에 남는 식당이다.
그 동네에선 꽤 인기 있는 곳인지 예약은 필수인 식당이란다. 예약 없이 찾은 몇 팀이 아쉽게 돌아가는 것을 보니 내가 먹고 있는 요리가 더 맛있게 느껴진다. 짓궂은 심보다.
‘르 빨레’항구에서부터 섬을 시계 방향으로 돌면 가슴이 탁 트이는 길고 넓은 백사장이 있는 ‘플라쥬 데 그랑 사블르(Plage des Grands Sables)’를 만나게 된다.
1km에 걸쳐 펼쳐진 해변과 모래사장은 가슴이 뻥 뚫리는 시원함을 선사한다. 이곳에 도착하니 잔잔한 바다와 탁 트인 해변이 왜 ‘벨 일’이 프랑스인들에게 여름 휴양지로 각광받는 섬인지 알 거 같았다. 그러나 해변이 길고 평온하다는 것 외에는 여느 해변 가와 크게 다를 것이 없는 ‘그랑 사블르’였다. 그러나 이렇게 잔잔한 바다로 시작한 '벨 일'의 해변은 곧 변화무쌍한 다른 모습의 해변으로 바뀌어 호기심에 가득 찬 방문객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랑 사블르 해변
'벨 일'의 제일 남단에는 ‘로크 마리아(Loc Maria)’라는 조용하고 자그마한 마을이 있다. 이 곳에는 이 섬에서 가장 오래된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이 있는데 성당보다도 마을에 관심이 간다. 왜냐하면 이 마을은 알렉산더 뒤마의 소설 ‘철가면’에 배경(47장:The Grotto of Locmaria)으로 나온 곳이기 때문이다. 철가면의 실존 인물일지도 모른다는 한때 이 섬의 주인이었던 니콜라 푸케와 소설 철가면의 배경이 되었다는 로크 마리아. 소박하고 깨끗한 분위기의 자그마한 마을이지만 왠지 큰 비밀이라도 안고 있을 것 같은 묘한 인상을 준다.
로크 마리아 성당
조용한 마을을 벗어나면 섬의 남서쪽에는 아주 거칠고 무서울 정도의 자연적인 해변 ‘꼬트 사바쥐(Cote Sauvage:야생의 해변)’를 비롯 모네의 작품 속에도 남아 있는 ‘포르트 꼬통(Port Coton)’, 프랑스 국민 여배우 사라 베르나르의 별장 등과 더불어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듯 자연 그대로의 야생적인 해변이 있는가 하면 자연이 만든 아름다운 해변도 있어 각각의 아름다움을 뽐내면서 찾는 이들의 입을 못 다물게 만든다.
'벨 일'의 야생적인 해변
모네의 그림에 남은 '포르트 꼬통'은 사나운 파도가 몰아치는 가운데 솟아 있는 바위들의 모습이 멋진 장소다. ‘포르트 꼬통’이란 이름도 무섭게 몰아치는 파도가 만드는 흰 거품이 마치 흰 목화솜 같다고 하여 붙여진 것이라고 한다. 모네는 이곳을 ‘뽀르트 꼬통의 피라미드(Pyramids at Port-Coton)’라는 제목으로 그렸는데 1886년 이 섬을 찾아온 모네는 두 달여를 머무는 동안 모두 39편의 '포르트 꼬통'을 그려 그의 최초의 연작이 탄생한 기념비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모네의 그림과 실제 배경이 된 포르트 꼬통 해변
워낙 유명세를 타다 보니 이곳을 방문하는 이들은 바닷속에 솟아 있는 5개의 바위 들에 형태에 따라 각각 재미있는 이름을 붙여 놓았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이 ‘작은 몽생미셸’ 바위다. 실제 몽생미셸(https://brunch.co.kr/@cielbleu/66 참조)과 모양이 상당이 흡사하여 금방 알아볼 수 있다. 그밖에 개의 모양, 울부짖는 늑대, 암탉, 스핑크스(어떤 이는 루이 14세의 프로필이라고도 한다. 나는 이 의견에 한 표다.)등 이름이 붙여진 대로 그들의 모습을 찾아보는 것도 ‘포르트 꼬통’을 감상하는 또 하나의 재미다.
루이 14세 프로필, 작은 몽생미셸, 암탉(좌로부터)
파리 로댕 미술관에는 모네가 로댕에게 선물한 이 곳의 그림이 전시되어 있다.
그림을 먼저 보았던 로댕은 '벨 일'을 찾아 이곳을 처음 본 순간 ‘아! 모네다.’하고 탄성을 내뱉었을 만큼 모네의 그림은 이곳의 풍경과 느낌을 사실적으로 묘사해 냈다.
로댕 박물관에 있는 모네의 '벨 일' 그림
‘포르트 꼬통’에서 북쪽으로 이동하면 멀지 않은 해변에 사나운 파도가 몰아치는 해저 동굴이 있다. ‘라포치캐어리(L’Apothicairerie:연금술사)‘라 불리는 동굴이다.
이 동굴은 절벽 위에서 내려다보면 깎아지른 절벽과 무섭게 몰아치는 파도 때문에 동굴은 잘 안 보인다. 조금이라도 가까이 가려하면 파도에 휩쓸릴 것 같아 오금이 저려 오는 곳이다.
'라포치캐어리' 동굴
역시 이곳을 왜 ‘라포치캐어리’라 부르는지 이해가 간다. 마녀나 마술사들은 평범한 인간이 접근하기 어려운 곳에 주로 살지 않던가? 이곳도 그런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 아닌가 싶다. 가파른 절벽 때문에 동굴 바로 위의 절벽보다는 옆의 절벽으로 자리를 옮겨 관람하는 것이 동굴도 잘 보이고 보는 마음도 편하다.
멀리서 보는 것이 성에 안 차는 사람들은 동굴을 직접 보려면 절벽을 따라 바위에 만들어 놓은 계단을 걸어 내려가야 한다.
그런데 파도에 젖은 바위가 얼마나 미끄러운지 상상이 갈 것이다. 급기야 몇 번의 인명사고가 난 뒤로는 바위를 타고 내려가는 것이 금지되었다고 하는데 어디나 무모한 사람들은 있는 모양이다.
내가 갔던 그날도 위험을 무릅쓰고 내려가는 이들이 보인다. 걱정스러워 물었더니 각자 자기 책임 하에 몇몇 용감한 이들은 바위 위의 계단을 타고 내려가 이 신비한 동굴의 모습을 보려고 한다는 것이다.
절벽 밑의 해저 동굴은 양쪽이 뚫려 있어 파도가 칠 때는 양쪽에서 파도가 오기 때문에 정말 위험하다고 한다. 어디나 그렇듯 이상한 용기를 내는 이들이 있어 매년 사고가 일어나는 곳이라고 가이드가 아주 걱정스러운 듯이 설명한다.
자연의 신비로운 아름다움도 좋긴 하지만 소름이 끼치고 온 몸이 꽁꽁 굳어 버리는 것이 왜 이 섬을 ‘벨 일’이라 이름을 붙였는지, 프랑스인들은 아름다움을 이런 거친 자연에서도 찾는 것인지 우리의 감성과는 많이 다르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벨 일'이다.
사라 베르나르 맨션과 그녀의 포스터
'벨 일' 땅 끝의 빨간 등대
다음으로 찾은 곳은 예쁜 등대와 사라 베르나르의 여름 별장이 있는 ‘라 푸앙데풀랑(La pointe des Poulains’이다.
19세기 프랑스의 국민 여배우 ‘사라 베르나르’(Sarah Bernhardt:1844-1923:https://brunch.co.kr/@cielbleu/32 참조)는 프랑스 인들에게는 워낙 유명 인사라 그녀의 별장이 있는 이곳은 늘 많은 관광객으로 붐빈다.
19세기 프랑스 최고의 여배우로 평가되는 사라 베르나르는 유대인계 프랑스 인이다. 어머니가 코티잔(courtesan:고급 창녀)이었고 아버지는 누군지도 모르는 불우한 환경 속에서도 1899년 셰익스피어의 햄릿에서 주연을 맡아 장장 4시간에 걸친 공연을 성공리에 마친 그녀는 ‘여신 사라(Divine Sarah)’라는 애칭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그녀가 맡은 역이 대 성공을 거두면서 레종도뇌르(legion d’honneur) 훈장까지 수여받은 국민 여배우다.
사라는 '벨 일'의 자연에 매료되어 요새가 있던 자리에 그녀의 여름 별장을 만들었다. 대 배우의 여름 별장에는 지금은 그녀의 유품들이 전시되어 있고 그녀의 출연 영화를 상영하기도 한다. 그녀가 살았던 집을 관람할 수 도 있다.
그녀의 별장을 지나 섬 끝을 향해 닦아 놓은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저 멀리 빨간 지붕을 얹은 자그마한 하얀 등대가 파란 바다를 배경으로 서 있는 것이 보인다. 보는 눈이 즐겁다. 1868년에 세워졌다는 이 등대는 23마일 정도까지 빛을 비출 수 있어서 날이 좋을 때는 우리가 배를 타고 떠나온 키베홍 항이 보이기도 한다는데 내가 간 날은 하늘이 허락을 안 해주는 날이었다.
만조 때는 이 등대는 걸어서 갈 수가 없다고 한다. 섬의 끝자락에서 밀물로 고립된 섬이 되기 때문이다. 어쩌면 사라는 이런 지리적 환경 때문에 이곳을 그리도 사랑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든다.
'써종' 항구의 평온한 모습
마지막 가 볼 곳은 이 섬에서 두 번째로 큰 항구인 ‘써종(Sauzon)’이다.
작지만 정겨움이 묻어나는 항구다. 집들은 모두 형형색색 아름다운 색으로 칠해져 밝은 느낌으로 보는 이의 마음을 안온하게 해 준다.
개인적으로 휴가를 위해 ‘벨 일’을 찾는 다면 이 섬의 다른 어떤 지역보다 써종을 택하고 싶은 마음이다. 도시의 복잡함을 피해 조용히 생각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으면서도 적당히 문명과 연결되어 꽤 괜찮은 식당들이 써종의 조그만 골목골목에서 영업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프랑스인 친구가 만일 ‘벨 일’을 간다면 추천할 식당이 있다고 했다. 그의 소개로 찾은 ‘호자벨(Roz Avel) 레스토랑’은 저절로 '엄지 척'을 하게 만드는 식당이었다. 이런 외진 항구에서 기대하지 않았던 훌륭한 레스토랑을 만나게 되다니 과연 미식가들의 나라란 생각이 든다.
써종은 지금은 조용한 항구 마을이지만 19세기 말에는 고기잡이 배 들로 성황을 이루었던 곳이라고 한다. 과거의 영광을 뒤로하고 항구를 지키고 있는 두 개의 등대가 아름답고 평온하다.
등대 뒤로 줄을 맞추어 정박해 있는 요트들의 행렬이 마치 써종의 시간을 멈추게 한 듯하다. 이 순간이 그대로 멈추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서둘러 눈앞의 풍경을 마음에 담았다.
'르 빨레'의 조금은 부산한 거리를 시작으로 유명인들의 이야기도 따라가 보고 멋진 자연도 보다가, 조금은 너무 자연적이라 무서움이 들었던 자연도 보다가 다시 조용한 작은 항구 '써종'의 예쁜 식당에서 기대 이상의 식사로 마무리한 '벨 일'의 하루는 다녀온 지 꽤 시간이 흘렀음에도 문득문득 추억의 창문을 열게 하는 매력을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