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옥씨는 부동산 눈이 밝았다. 운도 따랐다.
24평형 새 아파트는 온전히 혜옥씨의 작품이었다. 모델 하우스를 돌며 앞으로의 전망을 알아보고 계약 도장을 찍었다. 아랫집에 사는 한 달배기 아기 돌보는 일자리를 구했다. 남의 집 아기 기저귀를 갈고 분유를 타 먹이면서 내 아이들도 챙길 수 있는 일이었다. 아기의 이름은 제나였다. 제나의 부모는 소방서와 종합 병원에서 일을 했고 월급을 밀리지 않고 주었다. 남매는 제나를 친동생처럼 예뻐했다.
혜옥씨는 24평에서 33평으로 한 번만 더 갈아탔으면 했다. 남매를 졸업시키고 시집장가보내고 갑천씨와 둘이 평생 살기에 적당한 평수 같았다. 집에 모델 하우스 아파트 전단지가 다시 쌓이기 시작했다. 남매는 평면도를 펼쳐 놓고 네 방 내 방을 정하고 물건 배치를 그려 넣으며 깔깔대며 놀았다.
신도시 33평의 새 아파트로 이사했다.
남매는 고등학생 중학생이 되었고 곧 대학생 고등학생이 되었다. 초등학생이 된 제나의 가족은 혜옥씨를 따라서 같은 아파트로 이사했다. 혜옥씨는 제나와 그 동생까지 돌보는 일을 계속했다.
IMF 금융 위기로 나라가 시끄러웠지만 혜옥씨는 아파트 대출금을 갚는 와중에도 딸의 대학 등록금을 단 한 번도 밀리지 않았다. 딸은 학자금 대출이라는 말을 모르고 신입생이 되었다. 갑천씨는 여전히 새벽에 나갔다가 밤에 들어왔다. 여전히 일 년에 단 이틀만 온종일 쉬었다.
혜옥씨는 남매가 많이 컸으니 이제 쉬면서 일하라 했지만 갑천씨는 그럴 수 없었다. 무사고 운전에 이어 택시 운전면허를 따겠다고 했다. 그러고 나서 쉬겠다고 했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갑천씨는 사고를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