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쁜 가시나야. 달랑 쪽지 한 장 써 놓고 가는 게 인사대이. 너 보고 잡아서 나온 거 아니었어야. 내눈으로 똑똑이 너 가는 걸 봐야 확실하게 너를 잊을 수 있응게. 인자 나는 니가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안 믿을 거여. 평생 니 마음 불편하라고 잘 살라고는 안 했지마는, 그건 내 진심이 아니었어. 너는 나가 다 잊고 살라고 했지마는, 내가 너를 어떻게 잊을 수 있겄어. 너, 진짜...
옥경 선배 덕분에 국극이란 것을 처음 알게 되부렀재. 매란 국극단에 처음 들어왔을 때 날 보고 맨 처음 웃어준 것도, 말 걸어 주고 이곳저곳 알려준 것도 다 너였응게. 너랑 얘기하면 나는 참말로 마음이 편했어야. 니랑 구슬아기와 고미걸 연기를 하면서 니 눈빛 덕분에 나도 역할에 푹 빠질 수 있었어야. 내가 목 뿌라지고 목포에 내려갔다가 다시 돌아와서 서울역에서 소리를 할 때도, 모처럼 무대에 서서 그란지 무지하게 떨리드만. 근데 니랑 눈이 마주친 순간, 한 개도 안 떨리고 파도치던 마음이 잠잠해지드만. 니는 나한테 그런 존재였어야. 조용하지만 단단히 나를 지켜주는 존재 말이여.
드디어 '쌍탑전설'의 무대를 올렸어. 나는 참말로 아사달이 되어야겄다 하는 심정으로 소리하고 연기했어야. 신라 최고의 석공이자 사랑하는 아내의 지아비를 내 몸에 새겼어. 내 망치 아래 부처님 존귀존안을 드러내는 심정으로 말이여.
달비를 맡은 영서도 물론이고, 아사녀를 연기한 초록이도 모두 징허게 멋진 연기를 보여 주었지. 그래도 내 마음 한편에서는 말이여, 쭈란이 니 생각이 간절했어야. 공연 시작 전 도앵 선배가 전해 준 꽃다발과 쪽지를 받고 나가 을매나 떨렸는 줄 아냐. 너 같은 가시내 다신 안 보겠다고 다짐허고 또 다짐했는디. 그래도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쓴 너의 손글씨를 보니, 니가 정말 보고 싶었어. 그리웠어. 니가 멀리서도 나를 응원하고 있다는 그 마음을 아니께, 나는 눈물 대신 최고의 연기를 보여주기로 다른다짐을 했당게. 그리고 나는 최고의 아사달이 되어 한 없는 무대 위에서 신나게 한 판 놀아 부렸어.
관객들의 박수와 눈물도, 뿌라진 목도 이제 내 맘대로 다시 소리를 낼 수 있어 기쁘고 행복했어. 그 속에서도 나는 쭈란이 니를 그리워하고 있었네. 니랑 마지막으로 아사달의 꿈 장연 연습할 때를 떠올리고 있었네. 오매불망 아사달을 기다리고 기다리겠다며 니 눈에 가득 고인 눈물을 잊을 수 없었네. 너는 나의 최고의 아사녀였응게.
비록 우리가 약속한 대로 최고의 남역과 여역으로 함께 무대에 서지는 못했지만, 나는 너와 함께 한 시간을 평생 잊지 않을 것이여. 니가 내게 준 믿음과 우정 그리고, 사랑을 평생 이 가심 속에 담고서 소리 하고 연기를 할 것이여. 너를 다시 만났을 때 부끄럽지 않도록 최고의 국극 배우가 될 것이여.만약에 우리가 다시는 만날 수 없다 해도, 니가 떠나던 그 새벽이 우리의 마지막 순간이된다혀도나는 암시롱토 안혀.
나, 윤정년은 영원히 홍주란이의 하나뿐인 꿈이고 그리움이고 왕자님이니께.
tvn 드라마 <정년이> 종영을 아쉬워하며, 정년과 주란의 이별 장면을 인용해서 글을 써 보았습니다. 별들은 흩어졌지만 계속해서 반짝일 것입니다. 별천지 속에서 우리는 모두 반짝이는 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