솜씨 좋은 먼 친척 되는 이의 손을 빌어 한복을 지어 입었다. 아내기인, 딸 셋과 사위 둘, 아들 둘과 며느리 하나, 모두 열 명이 새 한복을 처음 입은 날이었다. 남자들은 초록 마고자와 살구색 바지, 여자들을 빨간 저고리와 초록 치마로 통일했다. 서른이 넘은 노처녀 막내만 위아래로 진분홍 한복을 입었다. 혹시 잔칫날 누군가의 눈에 들어 선 자리라도 들어왔으면 싶었다.
오곡백과 갖가지 음식이 차려진 잔칫상을 두고 재화와 기인은 사람 좋은 웃음을 입고 앉았다. 장수를 기원하는 마음들이 가득 들어찼다. 덕담을 주고받았고 자식들이 차례대로 절을 했다. 손주들도 이제 제법 많이들 자랐다.
장소를 빌린 식당에는 노래방 기계도 있었다. 큰 딸 내외는 마이크 한 개를 나누어 들고 '비둘기집'을 불렀다. 둘째 딸 내외는 '사랑이여'를 불렀다. 둘째 사위는 제법 노래를 한다더니 정식으로 들어보는 건 처음이다. 음정 박자 잘 못 맞추는 둘째가 지아비를 따라 그럭저럭 들을 만하게 부른다. 둘째네 손주 둘이 맨 앞에서 저희 엄마 아빠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박수를 치고 노래를 따라 부른다. 집에서 애들 앞에서 꽤나 연습을 한 모양이다.
둘째 사위를 반대한 건 재화였다. 여상까지 나온 딸에 비해 여러모로 마음에 들지 않는 사위였다. 주말마다 집에 와 손주들을 안기고 밥을 먹고 갔어도 배웅 한 번 하지 않았었다. 매번 딸 손에 기인이 남편 몰래 반찬이며 생필품을 싸 보내는 것을 재화는 모른 체했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더니, 둘째는 그럭저럭 살았고 마음에 들지 않던 사위는 간혹 기특한 말과 행동을 하기도 했다. 그래도공부 잘하고 성품 좋은 손녀를 보며 언 마음이 녹곤 했다.
자식들 내외의 노래가 끝났다. 유독 둘째 사위에게 앙코르 요청이 많았다. 다시마이크를 잡은 둘째 사위가 고른 곡은 '새타령'. 기교가 화려하지는 않지만 구성지게 부르는 음색에 새가 날아들고 왼갖 잡새도 날아들 지경이었다. 새 중의 새 봉황새와 만수문전의 풍년새 마저 날아드니 몇몇이 일어나 어깨를 들썩였다. '어이~' 하는 후렴구에서는 다같이 추임새를 넣으며 함께 불렀다. 기인도 일어나 못 추는 춤을 기꺼이 추었다. 재화도 일어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사회자의 제안을 한 번 거절하고 나니 스스로 일어나기 멋쩍어 그냥 앉아 있었다. 본인의 잔칫날에 마치 강 서방이 주인공이 된 것 같은기분이 들었다.
간주가 끝나고 2절이 끝날 무렵, 둘째 사위는 장모의 손을 잡고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못 추는 춤을 기꺼이 추던 기인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했다. 저이가 저리 웃던 사람이었던가, 생각하는 순간, 흥겨워하던 둘째 사위가 장모의 볼에 입을 맞추었다. 순간, 재화의 볼이 뜨거워졌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신명 난 그들에게 향했다. 마이크를 뺏어든 순간, 정적이 흐르고 시간이 멈추었다. 좌우로 가며 울음을 마저 다 울지 못한새들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