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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경 May 04. 2024

지속하는 힘이 주는 보상

시작과 반복을 일상에서

24년 04월 26일 (금)

오늘은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첫 외출을 하는 날이다. 친구들과 선생님과 하는 첫 외출. 미세먼지가 근래 쭉 좋음이었다가 오늘 아침 나쁨이다. 얄궂다. 9시 반까지 등원하라는 알림장을 받고 오늘은 서둘러 9시 5분에 등원했다. 그리고 요가수업을 하러 왔는데 10시 반 수업이니 한 시간이 넘는 시간이 생겼다. 영어수업을 들어야겠다. 요즘 보는 채널명은 <키위엔 영어>다. 그중 두 가지 영상을 무한반복으로 듣는다. 지난 주말 남편이 함께 탄 차에서 내가 이 채널 영상을 들으며 운전하는 모습을 보고 남편은 "그렇게 해서 영어 안 늘어. 직접 말해야지." 훈수를 둔다. 그래서 내 공부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조용히 하라고 했다. 훗날 내가 어떤 것으로든 이 영어를 써먹는 날들이 올 테니 내버려 두라고 덧붙였다. 딸 또한 무슨 이유에서인지 내가 설거지를 하거나 집안일하며 영어채널을 보며 따라 말하는 모습을 보면 "엄마 공부하지 마!!"를 외친다. 이 집안사람들은 왜 내가 공부하는 꼴을 보지 못하는 것인지 모르겠으니 개의치 않고 지속한다. 9시 25분. 수업 전 한 시간 남았다. 주차장에서 아무런 방해꾼 없이 신나게 따라 말하다가 수련하러 가야겠다.


24년 05월 03일 (금)

글을 쓴 지 일주일 만이다. 지난 일주일간 나의 기분은 롤러코스터였다. 특별한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아주 사소한 일상의 반복 속에서 나의 못난 감정은 요동 쳤다. 일상 속 내 못난 감정의 예시는 다음과 같다.


1. 장을 봐둔 식재료를 썩혀 버린 것 : 제때 소진하거나 손질하지 못한 게으른 나에게 화가 나고, 계획적이지 못한 소비를 했다고 자책했다.


2. 바리바리 싼 짐을 절반이상 쓰지 않고 가져올 때 : 괜한 짓을 했구나, 스스로 바보 같다 여기지만 매번 여행짐을 꾸릴 때 없는 것보단 가져가서 그냥 되가져 오는 것이 마음 편하다며 이후에도 반복한다.


3. 주차장 기둥에 차를 긁음 : 기둥에 내 차를 긁었다. 다친 사람은 없지만 왜 긁었냐 물으면 이날 마음이 급했다. 아이를 픽업 가기 전 양배추를 썰다가 손가락을 썰어버렸다. 손가락을 베어버린 칼날보다 나에게 화가 났다. 피가 멎지 않았다. 조급한 마음에 차를 빼다 기둥에 우측 뒤편을 시원하게 갈아먹었다. 남편에게 조심성 없는 나라고 한소리 듣겠다 싶고, 울고 싶은 마음과 답답함이 차올랐다.


뭐 대략 이런 식이다. 너무 사소해서 나에게 "무슨 일 있어?"라고 묻는다면 머쓱해서 말하기도 뭣한 일들. 보통은 "아니, 괜찮아. 별일 없어."라지만 사실 별일들이 켜켜이 마음에 쌓이고 있다.


하지만 다행히도 나는 내가 살길을 안다. 그것이 요가원이다. 그곳에 가면 나의 구원자가 있다. 구원자의 이름은 '브리나'. 선생님은 수업 전 나의 하루들을 물어봐주시고 마음을 다해 보듬어주신다. 헤아림이 따뜻하고 섬세하다. 마음을 헤아린 다음 몸을 움직이면 내 몸과 조금 더 친해지는 느낌인데, 37년 동안 알지 못했던 내 몸 구석구석을 알아가는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찌릿하고 짜릿하고 뻐근한 것이 곧 시원해진다. 몸도 마음도 한결 가벼워진다. 나는 그곳에서 하루하루 비워내고 싶었던 사소한 것들을 훌훌 털고 온다. 오늘도 털고 왔다.


오늘 아침의 에피소드

어린이날 행사로 담임 선생님에게 9시 반까지 꼭 등원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아침부터 서둘렀건만 아이는 이런저런 생떼를 부리며 나의 심기를 거스른다. 9시 10분. 이미 지금 카시트에 태우는 것이 나의 계획이었지만 옷을 입는 아이는 중얼중얼 찡찡거리며 무슨 말을 한다. 결국 나는 오늘도 소리쳤다. "뭐라는 거야! 그만하고 옷 입고 빨리 신발 신어!!!" 아이는 차에 타서 어린이집에 가는 길에 "엄마, 내가.."라고 두 단어를 뱉었다. 나는 혼자 화를 삭이며 대답하지 않았다. 9시 25분. 어린이집에 도착했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도착하니 말을 이어갔다. "엄마, 내가 아직 찌찌가 작은데 나도 엄마처럼 찌찌가 커지고 싶어서 그래서 기분이 안 좋았어." 와..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들었다. 아이에게 너무 미안했다. 물론 이 말을 처음 들은 것은 아니다. 30개월 소람이는 28개월쯤 나와 함께 샤워하다가 아빠와 엄마의 가슴 모양이 다르다는 것을 말하며 본인도 가슴이 커지고 싶다고 표현했다. 내 아기가 벌써 이만큼이나 자랐다. 놀랍기도 하고 더욱 정신을 바짝 차려야겠다는 생각도 다.


"소람이는 아직 어린이기  때문에 어린이 친구들은 모두가 가슴이 작지만 점차 언니가 되고 어른이 되면 자연스레 엄마처럼 가슴이 커질 거야." 아이는 안도하는 표정으로 환하게 웃었다.


사소한 감정에 휘둘리지 않을,
소중한 것을 지킬 다부진 기둥 세우기

일상 속 매일이 시험대다. 내가 인지한 순간부터 아주 조금씩, 미세하게라도 차차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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