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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경 Jan 02. 2025

영희가 철수에게

카톡메시지

부족한 나랑 산다고 고생이 많제?

혼자 고군분투하며
앞으로 우리 가족 미래 고민한다고
몇 날 며칠 머리 싸매있는데

그 모습 보면서 실질적 도움이 안 되는
내 자존감도 바스락 거리더라.

가장 가까운 사이.
연말, 새해 상투적인 덕담, 눈인사도 없이
지나가 버린 것이 안타까웠는데

생각해 보면 나조차 먼저 하지 않았네 싶어서.

지난해도, 함께 산 4년 동안 가정을 위해
힘들고 지쳐도 꾸준히 자리 지키며
열심히 해줘서 고맙고 감사했어.

나도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역할.
엄마, 아내로서 좀 더 성숙한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 볼게.

함께 사는 날까지, 서로 이해하며 잘 지내보자.


고민 끝에 고치고 다듬어 보낸

영희의 카톡을 읽고도 답 없는 철수.


한번 더 마음을 내어 점심시간 영희는 전화했

철수는 받지 않았다.


좋아하는 라테와 초밥을 먹어도 먹을 때뿐,

기분이 가뿐하지 못하다.

똥 싸고 양말로 닦은 느낌이랄까,


/목은 철수가 9시까지 야간진료하는 날.

6시쯤 한번 더 마음을 내어 전화해 본다.


응 영희야.


받는 목소리에 이미 마음이 읽어진다.

연애 2년. 같이 산지 5년 차. 

희로애락, 서로 그럴듯한 모습부터

지질한 모습까지 함께하며 이제는 안다.


'대문자 T에 f 한 방울 섞인 철수, 극 F 영희'

철수가 답이 없을 거라는 것은 이미 예상했다.

철수는 그런 사람이다. 다만 충분히 마음을

헤아리고 있는지, 남은 골을 내고 있을지 궁금했다.

목소리, 이어진 철수의 말로 충분히 마음이 풀렸다.


보낼까 말까 했던 카톡메시지도

할까 말까 했던 전화

받지 않아 한번 더 했던 전화까지.


받는 철수의 마음은 철수의 것이고

영희는 영희의 마음을 충분히 표현하고 싶었다.


모두 다 잘했다 싶다.


영희는 가뿐해진 마음으로

김치찌개를 끓인다.


엄마 영희를 바라보는 별이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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