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가르치다가 애를 잡겠다 싶어서 더 이상 진도를 빼지 않았다. 게다가 한방이가 입학할 초등학교에서는 한글을 가르치지 말고 보내라 신신당부를 하니 한시름 놓게 됐다. 생각해보니 미리 공부를 한다는 것, 그러니까 선행학습은 ‘스포일러’와 비슷한 게 아닐까 하는 결론에 도달했다. ‘브루스 윌리스가 귀신이다’ 라거나 ‘절름발이가 범인이다’ 같은 영화의 결정적 반전이나 결말을 알면 김이 새듯, 뻔히 알고 있는 걸 배우는 게 뭐가 재밌겠는가.
결국 한방이는 한글의 자음과 모음 정도만 알고 입학했는데 큰 무리는 없어 보였다. 그러다 드디어 받아쓰기 시험을 본 어느 날! 아이는 10개 문항 모두 틀린, 빵점짜리 시험지를 들고 왔다. ‘떡볶이, 볶다, 앉다, 많다, 읽다, 볶음밥, 삶다, 맑다, 얹다, 꺾다’ 이렇게 10개 단어였다. 물론 분식점에 ‘떡볶기’라고 쓴 곳도 많고, 어른들도 헷갈릴 수 있는 받침들이긴 한데, 반타작도 아니고 올 빵점이라니. 하지만 내가 파르르한 이유는 따로 있다.
엄마들이 가장 조심해야 할 절대 권력자는 ‘옆집엄마’이고, 아이들이 가장 경계해야 할 친구는 엄친아, 엄친딸이 아니던가. 옆집 엄마에게 그 집 아들은 몇 점이냐고 물어본 게 화근이었다. 글쎄, 옆집아이는 90점이었다. 대애박! 게다가 담임선생님이 하루 전, 미리 10개 단어를 알려주셨다는 거다. 대 투 더 박!
그 다음 상황은 짐작하는 그대로다. 한방이를 잡는다. 빗발치는 엄마의 잔소리 잔소리 잔소리의 쓰나미 속에서 아이는 틀린 단어 다섯 번씩 쓰기 숙제를 한다. “옆집 애는 1개 틀려서 그것만 5번 쓰면 끝나는데, 너는 10개를 다 틀려서 50번 써야 하네.” 빈정거림을 시작으로 “너는 선생님이 내일 시험 본다고 한 걸 몰랐니?” 추궁도 했다가, “엄마는 말이야, 1학년 때 받아쓰기 시험 맨날 백점이었어!” 어디서 알리바이도 대지 못할 ‘라떼는말이야’를 시전하기도 하고, “아무 생각 없이 베껴 쓰지만 말고, 큰 소리로 틀린 단어 읽으면서 써!!!!!” 윽박지르기를 연이어 반복했다. 늦게 퇴근한 남편은 한방이의 올 빵점 시험지를 보더니 딱 한 마디 했다. “이래서 부모들 눈이 돌아가는구나!”
그리고 문제의 다음날이 도래했다. 놀랍게도 담임선생님은 어제와 똑같은 단어로 재차 받아쓰기 시험을 내셨다. 여기서 문제 나간다.
Q. 자, 어젯밤 분명 한방이는 틀린 단어 10개를 다섯 번씩 썼다.
과연 이번에 한방이는 몇 개나 맞았을까?
① 10개 만점 ② 5개 반타작 ③ 3개 3할 타율 ④ 0개 또 빵점
①번 만점이라고 답하신 분이 계시다면 그분은 글의 분위기와 맥락을 전혀 못 짚고 계시는 분으로 상당한 낙관주의자다. ②번 반타작이라고 답하신 분은 냉정과 열정 사이, 정 가운데쯤 서 계신 분이다. ④번 빵점을 주저 없이 고르셨다면 우리 아이를 그야말로 ‘알’로 보시는 거다. 정답은 ③번! 야구팬인 엄마, 아빠를 배려한 건지 3할 타율을 기록했다. 더 놀라운 것은 아들의 정신 승리인데, 들어오자마자 3개 맞은 시험지를 보여주며 이렇게 말했다.
엄마! 나 어제 다 틀렸잖아. 그런데 오늘은 3개 맞았지?
그리고 옆집 애는 어제 1개 틀렸잖아. 오늘은 다 맞았어~
나는 0개에서 3개 맞았으니까 잘했고
옆집 애는 1개 틀렸다가 오늘은 다 맞았으니까 잘했어.
우리 둘 다 똑같이 잘한 거야.
이럴 때 영화 <베테랑>의 유아인을 소환해야 하는 거다. ‘어이가 없네~’ 빵점에서 30점 맞은 자신과 90점에서 100점 맞은 옆집 애가 똑같다니, 반박을 할 수 없을 만큼 빈틈이 없는 이 논리! 이건 어느 나라 계산법인가.
대만 타이페이 거주. 8세 남자 아이. ‘세상은 요지경’이라는 사실을 인생사 8년 만에 깨우친 장래가 촉망되는 될성부른 떡잎 유형
올해 여덟 살인 양양은 중산층 가정에서 남부럽지 않은 하루하루를 사는 꼬마다. 다만 요즘 가정사는 조금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다. 최근 외할머니는 고혈압으로 쓰러져 식물인간 상태이고, 그런 친정 엄마를 간호하느라 엄마는 녹초가 된 상황, 7살 많은 사춘기 누나는 친구의 남친을 짝사랑하고, 아빠는 결혼 전 사귄 옛 애인을 우연히 만난 후 흔들리고 있다. 알 수 없는 그들의 세계도 분주하지만, 여덟 살 양양의 세계도 못지않게 파란만장하다.
어느 날, 학교에 풍선을 가지고 간 양양, 때마침 반에서 키도 제일 크고 발달이 빠른 여자애를 남자아이들이 놀리고 있다. 그 옆에서 양양은 풍선을 가지고 놀았을 뿐인데, 여자애는 선생님에게 공범이라고 고자질 한다. 잠시 후 교실에 들어온 담임 왈, “학교에 누가 ‘콘돔’을 가지고 왔냐?” 풍선을 콘돔으로 둔갑시킨 여덟 살 여자애의 발랑 까짐이라니. 진실을 알 턱이 없는 담임은 양양을 불러 세우고 콘돔을 꺼내라고 다그치는데 양양은 콘돔이 뭔지를 모른다. 그런 것 없다고 담임에게 얘기하다가 “선생님이 직접 본 것도 아니잖아요?” 반문하는 양양. 하지만 기어이 담임은 양양의 주머니를 뒤지기 시작한다. 그런데 주머니에서 튀어나온 건 ‘풍선’! 당황한 담임은 멋쩍어 풍선을 던져버리고 민망해져 “앞으로 조심해!” 경고를 날리고 사라진다.
이 사건으로 양양은 ‘사람들은 눈으로 보지 않으면 믿지 않는다’ 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눈으로 모든 걸 확인하려고 든다. 며칠 뒤, 엘리베이터 앞에서 옆집 아줌마를 마주치는데 그녀는 선글라스를 끼고 있다. 그러자 양양은 아줌마 앞으로 가서 얼굴을 빤히 올려다본다. 민망해진 양양의 아빠는 옆집 아줌마가 가고난 뒤 양양에게 한 소리한다.
<아빠> :
양양, 사람을 그렇게 뚫어져라 보면 안 돼.
버릇없는 거야 기분 나빠 한단다
<양양> :
왜 우울한지 궁금해서요 뒤에선 알 수가 없잖아요
<아빠> :
우울한 건 어떻게 알고?
<양양> :
어젯밤에 큰 소리 내면서 싸웠거든요, 내 방까지 다 들렸어요
아빠, 아빠가 보는 걸 난 못 보고, 난 보는데 아빤 못 봐요
둘 다 보려면 어떡해야 하죠?
<아빠> :
그건 생각 못 해봤는데 그래서 카메라가 필요한 거란다
카메라로 찍어보렴
그 후, 양양은 아빠가 건네준 카메라로 여기저기를 찍고 다닌다. 천장에 모기를 시작으로 어딜 가든 카메라를 들고 자신이 본 것들을 마구 마구 증거인 양 찍어댄다. 급기야 양양이 주목하게 된 건 뒤통수다. 여덟 살 사진작가의 기가 막힌 작품의 변을 들어보자.
<양양> :
우린 반쪽짜리 진실만 볼 수 있나요?
<아빠> :
무슨 말인지 모르겠구나
<양양> :
앞만 보고 뒤를 못 보니까 반쪽짜리 진실만 보이는 거죠
0개에서 3개를 맞았으니 잘한 거라고 말하는 아이에게서 내가 보지 못한 것은 무엇일까, 0점에서 30점이 된 것과 90점에서 100점이 된 게 똑같은 거라는 아이의 생각에서 내가 미처 읽지 못한 것은 무엇일까. 내가 볼 수 없었던 반쪽짜리 진실은 아이가 노력했다는 사실, 그리고 앞으로도 노력하면 조금 더 잘할 수 있을 거라는 가능성이었으리라.
까마득한 국민학교 시절, 매 학기가 끝나고 받는 생활기록표에는 각 과목 별 성적이 기록돼 있었다. 당시에는 수, 우, 미, 양, 가 로 평가했는데 ‘수’와 ‘우’를 제외하고 다른 세 글자는 부끄러운 글자였다. 그런데 얼마 전 그 의미를 새롭게 알게 되었다. ‘수(秀)’는 빼어나다, ‘우(優)’는 뛰어나다, ‘미(美)’는 아름답다, ‘양(良)’은 양호하다, ‘가(可)’는 할 수 있다, 할 만 하다는 뜻이란다.
그러니 수우미양가는 등급을 나누고 구별하려는 글자라기보다는 격려하기 위한 글자였던 것이다. 나도 잘했고, 너도 잘했다. 한방이는 이걸 알고 있었던 걸까? 0점에서 30점 받았으니 아들은 ‘가’에 해당될 것이다. 앞으로 더 잘 할 수 있고 충분히 할 만한 자질을 갖고 있구나 라고 칭찬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만족’이라는 단어도 근래 다시 배웠다. 차다 만(滿), 발 족(足), 물이 허리나 가슴, 머리까지 차오른 상태가 아니라, 고작 발목에 찰랑거리는 정도가 만족이라는 것이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는 것이다. 나는 대체 아이가 몇 점을 받아와야 만족스러워 했을까? 한방이는 30점 받은 시험지를 들고도 만족한 표정이었는데 말이다.
이 영화를 나의 인생영화로 꼽는 이유는 볼 때마다 다른 지점이 보이기 때문이다. 이번에 새로 발견한 장면은 영화 중간에 캐릭터들이 뭔가를 깜빡하는 것들이었다. 아빠는 방 안으로 들어와 서랍을 분주히 뒤지다가 ‘뭘 찾으러 왔지?’ 멈칫하고, 아빠의 친구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왔다가 ‘왜 내려왔더라?’ 하고는 다시 올라간다. 마흔이 넘어봐야 공감이 가는 부분이라 이제야 내 눈에 들어온 모양이다. 이 영화는 ‘에드워드 양’ 감독이 50세가 넘어 만든 유작인데, 감독은 우리가 놓치고 사는 것들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하나 그리고 둘 (A One And A Two)
제작| 2000년
등급| 12세 관람가
장르| 드라마
러닝타임| 173분
감독| 에드워드 양
배우| 오념진(아빠 NJ) 조나단 창(양양)
| 어제의 너보다 오늘 더 성장했는데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중에서)
| 사진출처 : 네이버 영화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