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대신 명품 포장 아르바이트
알바를 하면서 힘들었던 건 무엇보다 '대충 하는 것'이었다.
어찌 보면 강박적인 성향 탓에, 완벽주의 때문에 회사를 다니면서도 불면증이 심해졌는지도 모른다. 물론 이 외에 여러 가지 다양한 외부 요인이 있었겠지만, 잠자는 문제가 아니더라도 나는 내 기질로 인해 필요 이상의 스트레스를 받아왔다. 회사에서, 집에서, 그리고 인간관계에서 모두.
그래서 1월 1일 새 해가 밝으면 다시금 상기하는 이상적 마음가짐은 '오버하지 말자.' 혹은 '너무 애쓰지 말자' 아니면 '뭐든 적당히 대충 하자'였다. 그렇게 생각해야 시작이라도 할 수 있으니까. 어려워 보이는 일도 부담 없이 임하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을 직시하자. 하루아침에 내 성격을 뒤바꾸는 일은 고기를 좋아했던 내가 비건이 되는 일처럼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모든 일을 완벽히 해야 한다'에서 바로 '모든 일을 완벽히 하지 말자'로 직행할 수는 없었다.
하여 스트레스와 불안을 낮추고자 내가 선택한 방법은 단계별 대충 하기 전략이었다. '모든 일에 완벽하지 말자'대신 '모든 일에 완벽할 필욘 없다'로, 혹은 '어느 정도만 대충 하자'로 시작하기로 했다. 전부 대충 할 자신이 없으니 몇몇의 분야에서만이라도 마음 편히 대충 하기로 한 것이다. 즉 내가 완벽주의를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을 한정 지어놨다.
그리고 그게 바로 포장 일이었다.
포장할 때만은 내 강박을 원 없이 발휘하고 싶었다. 최대한 각을 맞추고, 최대한 깔끔하게 애쓰며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일은 상당한 쾌감이었으니까. 단순히 옷을 포장하는 일이 즐거웠던 게 아니고 옷을 '완벽하게' 포장하는 일이 즐거웠던 것이다.
하지만 시간과 공을 원 없이 들일 수 있는 옷포장은 나 홀로 당근마켓 거래할 때 한정. 자아실현이 아닌 경제적 이익을 목표로 뒀을 땐 완벽성보다 효율성이 중요하다. 당연한 일이었다. 내 돈이 아닌 남의 돈을 벌기 위해선 더더욱 그렇고.
인수인계를 받는 도중, 내가 포장하는 과정을 지켜본 선임자는 늘 내게 말했다.
"그렇게 꼼꼼하게 하실 필요 없어요."
적은 양을 포장하면서도 시간이 꽤 걸리자 대표 1도 같은 말을 했다. 앞으로 주문량이 많아졌을 시를 염려하는 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렇게 꼼꼼히' 하지 않는다면 즐겁지 않은 걸. 대충 포장한다면 내가 굳이 이 알바를 할 이유가 없는걸. 하루에 얼마나 번다고.
그렇게 포장해야 할 의류의 양이 적거나, 혹은 적당할 때 내가 들은 말들은 언제나 '그럴 필요 없다'였지만, 양이 많아지면 '그러면 안 돼요'로 바뀌었다.
"그렇게 꼼꼼하게 하시면 안 돼요."
웃으며 말하던 얼굴은 단호하게 변했다. 완벽주의는 단어만 그럴싸하지 뜯어보면 '융통성 부족'과 동일어였다. 그렇게 대충 하라고, 그저 최대한 빨리 포장하라고 종용하는 대표 2와의 트러블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