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프롤로그 [새콤달콤] by 선장
색시야. 최근에 새콤달콤을 직접 사 먹어본 적 있어?
두어 달 전 편의점에서 계산을 마치고 나가려는데 그날따라 유독 색색깔의 간식이 눈에 들어왔어. 정체는 바로 젤리도 아닌, 그렇다고 껌도 아닌 그 애매한 형태의 새콤달콤한 과자.
평소 같으면 음료 칸에서 3+1 수입맥주나 골라잡고 나갔을 텐데 그날따라 간식 코너에 눈이 갔던 건 다른 종류의 위안이 필요해서였는지도 모르겠어. 사실 어느 순간부터 계산대 밑의 ‘징징 구역’은 잊고 살았거든. 엄마가 계산하는 동안 아이의 시선이 닿는 그 ‘징징 구역’에는 새콤달콤을 비롯한 온갖 달다구리들이 전략적으로 밀집해 있잖아. 하지만 이제 눈높이가 달라져 계산할 때 시야에 들어오는 기호식품이라고는 징그러운 사진 하나 씩 달고 있는, 한껏 각 잡힌 담배들 정도인데 말야.
그런데 그날은 그냥 그런 날이었어. 웬일인지 다른 곳에 눈길을 돌릴 여유가, 또 필요가 있었던 날. 신상 맥주로는 부족했는지 홀린 듯 레몬맛 새콤달콤을 집어 들게 됐던 날.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서, 색시는 최근에 새콤달콤을 사 먹어 본 적 있어? 있다면, 얼마였는지 기억해?
정답은 500원. 너와 내가 함께 먹을 땐 200원이었는데 가격이 2.5배나 올라간 거 있지. 우리가 열여섯에서 서른셋으로 부지런히 나이 먹는 동안 새콤달콤도 질세라 몸값을 높여왔나 봐.
맛은 변함이 없었어. 입에 넣는 순간 새콤하고 쫀쫀하다가, 시간이 지나면 달콤하고 말랑해지는 추억의 맛 그대로. 단지 이제 때운 치아가 걱정돼 조금 더 오래 녹인 뒤 씹어야 하는 슬픔을 곁들인… 숫자만 두 배 이상 되었을 뿐 내용물은 그대로인 게 꼭 철이 덜 든 서른셋의 나 같기도 하더라고. 씁쓸한 마음에 결국 맥주 한 캔을 꺼내오고는, 이내 문득 네가 떠올랐어. 중학교 때 같은 교복을 입고 도서관에서 나란히 앉아 새콤달콤을 녹여먹던 색시가.
학창 시절 옆집에 살던 우리는 문자 그대로 제일 가까운 곳에 살았잖아. 그런데 어느덧 20년 가까이 지나 너와 내가 도착한 곳의 거리는 꽤나 멀어진 것 같아. 물리적인 거리 외에도 새콤달콤 맛처럼 그대로 멈춰 있는 나와 가쁘게 어른의 일들을 해내는 색시의 정서적 간극은 넓을 수밖에 없겠지.
그도 그럴 것이, 유부 월드에 입성한 것도 모자라 재즈 피아니스트로도 점점 더 유명해지는 너는 싱글 캥거루족이자 여전히 말만 번지르르한 ‘지망생’ 일뿐인 백수를 한없이 작아지게 만들곤 했거든. 추억의 교차점에 있던 새콤달콤도 너에겐 전혀 다른 의미일 거야. 나 역시 500원의 새콤달콤으로 바로 연상되는 건 작년에 OTT로 인기를 끌었던 채수빈, 장기용 주연의 로맨틱 코미디 영화였으니.
하지만 열여섯의 내게 새콤달콤은
용돈이 부족했던 내가 수입산 간식 하O쮸 대신 골라잡았던 차선책이었고,
네가 소개해준 성당 오빠의 도서관 자리에 두고 온 어리고 들뜬 마음이었어.
또 어떻게든 안 보이려 손으로 꼭꼭 가리고 웃게 만들었던, 새콤달콤을 먹는데 애깨나 먹었던 철길 교정기였으며,
장마철 도서관 명당인 에어컨 옆 자리를 사수하지 못 한 너와 내가 억지로 화학 원소 기호를 외울 때 욱여넣던 과당 그 자체였지.
그러다 과부하가 오면 자연스레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건너편 편의점에서 바나나우유와 함께 즐겼던 휴식이었고,
도서관 옆 배O코리아 PC방에서 무서운 선배들이 물었던 담배 대신 우리가 물었던 달큰한 스트레스 해소법이었어.
그러니까 200원짜리 새콤달콤은, 열여섯 색시와 내가 OO도서관에서 보낸 숱한 여름날들이었나 봐.
하지만 17년의 시간이 지나버렸네. 현재의 내가 영화를 제일 먼저 떠올린 것처럼, 색시에게 500원짜리 새콤달콤은 어떤 의미가 됐을지 궁금해. 그리고 다른 수많은 단어들도.
같은 낱말이 우리에게 얼마나 다른 의미가 됐을지 나누다 보면 멀어진 것 같던 우리의 거리도 반갑게 메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날, 색시에게 이 작은 프로젝트를 무턱대고 제안했었지. 그때 제대로 말은 못 했지만 바쁜 와중에도 흔쾌히 함께 해 주어서 고맙고 기뻤어.
그렇게 몇 달 동안 수많은 주제들을 거쳐왔네. 조금 간지럽지만, 넓어지고 가꾸어진 너의 세계 속에서도 여전히 같은 감정선을 발견할 때면 반갑고 위안이 됐어. 전부 사랑에 가까운 마음들.
첫사랑, 끌림의 조건, 여행, 계절, 그리고 청소.
왜 하필 그 단어에서 그 사람과 그 사랑이 떠오른 건지, 지금은 바랐을지언정 한때는 더할 나위 빛나던 가지각색의 마음의 정체는 뭐였는지 앞으로의 편지를 통해서 더 깊이 알 수 있길 기대해. 그리고 결국에는 색시와의 간극을 좁힐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며. 이만 줄일게.
관련 영화: <새콤달콤, 2021>
채수빈이 저리 사랑스럽고 달달한데 새콤한 자극까지 바라는건 욕심이 너무 지나친거 아니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