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무서워하는 호랑이
6월 21일 일요일
아빠가 아침 산책을 나가셨다가 급식소 화단 근처에서 사진을 찍어서 보내주셨다. 호랑이였는데, 마치 표범처럼 나왔다.
두어 시간 후에는 찰리 채플린을 닮은 찰리도 등장했다. 이때에도 찰리가 발정기 기간의 암컷 고양이라고 생각했다.
찰리가 있다는 소식에 나도 화단으로 나가 보았더니, 찰리는 사라졌고 네로가 늦은 아침을 먹고 있었다. 그때는 다름이가 암컷인 줄 알았으므로, “여우(다름이의 예전 이름) 남자 친구 네로구나!” 라며 반가워했다.
네로는 밥을 다 먹은 후, 아파트 쪽으로 걸어갔다.
네로가 가는 쪽으로 가만히 따라가 봤다.
역시 네로가 있는 곳엔 여우가 있었다. 그런데 풀숲에 노란 고양이가 한 마리 더 있었다.
누군가 했더니 아름이었다.
지난 화요일에 급식소에서 만났던 ‘미묘’ 아름이였다. 다름이의 동생인 노란 고양이. 그러나 당시에 나는 다름이와 함께 풀숲에 있던 아름이를 호랑이로 착각했다. 예전에 쓴 일기를 보니 “그늘에서 보니 호랑이의 동공이 커져 평소 모습과 사뭇 다르게 보였다. 자세히 뜯어보니 예쁜 얼굴이다. 성격이 괄괄하고 호탕해 당연히 수컷일 거라 생각했는데, 어쩌면 암컷일지도 모르겠다”라고 쓰여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온다. 실제로는 호랑이뿐만 아니라 아름이까지도 수컷이니 말이다.
세 마리 모두 겁이 많아서, 가까이 다가가자 반대편 풀숲으로 숨어버렸다. 내가 호랑이라고 착각한 ‘아름이’는 무리에서 이탈해 먼 곳으로 사라져 버렸다. 별일 없는 한, 세 마리는 언제나 함께였다.
점심을 먹고 다시 급식소에 갔더니, 덕이 혼자 엎드려 낮잠을 자고 있었다.
두어 시간 후 커피를 마시러 카페에 가던 길에, 다시 급식소에 들렀더니 고양이는 한 마리도 없고 비둘기만 있었다. 비둘기가 고양이 밥을 대신 쪼아 먹고 있었다. 급식소에 올라가 새를 쫓았다. 비둘기가 급식소에 똥이라도 싸면, 다른 비둘기들도 이곳을 화장실로 생각해서 더러워질 수도 있다.
20분 후, 사잇길 바위 뒤의 풀숲에서 호랑이와 조우했다. 황금빛의 작은 머리가 보였다.
호랑이는 참 똘똘하게 생겼다. 나는 이전까지 ‘여우(다름이)’가 가장 예쁜 고양이라고 생각했다. 전날 가족들과 함께 6동 뒤뜰에서 고소미를 주며 자세히 얼굴을 본 후, 엄마는 “호랑이가 예쁘다”라고 하셨다. 이날 다시 가까이에서 호랑이를 만나니, 자세히 볼수록 아파트 길고양이 중 호랑이가 가장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랑이는 아기 고양이 같은 동그란 눈망울을 가지고 있다. 순간 호랑이를 키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다가가자 풀숲으로 도망가 그루밍을 하기 시작했다. 호랑이를 닮은 위엄 있는 외모와 달리 사람을 무서워하는 것 같았다.
한껏 그루밍을 하더니 사람이 갈 수 없는 풀길로 떠났다. 호랑이와 함께한 시간은 10분 정도였다. 호랑이가 떠나고, 나도 카페로 향했다.
카페에 머물다가 일곱 시 조금 넘어 집에 도착하니, 고양이들이 저녁을 먹는 시간이었다. 나무 뒤에 고양이가 숨어 있었으나, 흰 바탕에 까만 꼬리로 궁예라는걸 쉽게 알 수 있었다.
집에서는 비빔국수를 먹으러 간다고 고양이 보지 말고 빨리 오라고 하셨지만, 궁예뿐만 아니라 네로와 다름이로 추정되는 치즈 태비도 밥을 먹고 있었기 때문에 좀 더 구경했다.
밥 주는 시간이라 캣맘도 있었는데, 네로를 ‘까미’라 불러서 원래 이름이 까미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네로’로 계속 부르기로 했다.
때마침 호랑이와 덕이까지 급식소에 모였다. 이날부터 눈에 콩깍지가 씐 건지, 그곳에 모인 모든 고양이 중에서 호랑이가 가장 예뻤다.
덕이는 당시 ‘곰’이라고 불렸는데, 몸이 성치 않은 고양이였다. 피부병에 걸린 것처럼 털 상태가 엉망이었고, 눈에 눈곱이 잔뜩 끼여있었다. 아파서 눈도 제대로 못 뜨는 것 같았다. 호랑이는 덕이와 항상 함께하며, 아픈 반려자를 보살폈다. 잘생긴 외모와 함께, 이런 순애보적인 헌신에 반했는지도 모르겠다.
저녁을 먹고 왔더니, 호랑이가 사잇길 바위 위에 앉아 있었다. 하얀 앞발도, 너구리 같은 꼬리도 귀엽다.
호랑이와 덕이가 전날 고소미를 안 먹어서 이번에는 큰 멸치를 준비해 갔는데, 멸치를 주려고 다가가자 옥탑 위로 달아났다. 사람을 무서워하는 호랑이와 어떻게 친해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