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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티하이커 Sep 06. 2020

고양이들의 주말

모든 고양이들이 모였다

6월 20일 토요일

이것저것 할게 많은 분주한 주말이었다. 미용실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가니 4시쯤이었다. 점심을 먹기엔 늦은 시간이었는데, 고양이 한 마리가 급식소에서 밥을 먹고 있었다.

아빠는 여우​가 밥을 먹고 있다고 하셨다. 그런데 그때 나는 ‘사막여우를 닮은 고양이(다름이)​가 여우다’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고양이는 ‘여우’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사실 이 고양이는 ‘다름이의 동생’ 아름이​였다. 그때는 아름이의 존재를 잘 몰라서, ‘여우’ 아니면 ‘호랑이’라고 생각할 때였다. 그래서 나는 이 때는 호랑이​가 밥을 먹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름이는 다름이와 형제지만, 엄연히 얼굴이 다르다. 다름이는 왼쪽과 오른쪽이 비대칭인데 아름이는 대칭이고, 아름이가 얼굴에 흰 털이 많다. 눈도 아름이가 동그란 편이다. 그래서 ‘아름이’라는 고양이가 따로 있다고 인지한 순간부터, 아름이는 암컷이라고 생각했다. 이 동네에서 가장 예쁜 고양이었기 때문이다.

좀 더 가까이 다가가자, 아름이는 급식소를 벗어나 맞은 편의 계곡 옆의 큰 바위로 도망갔다.

조금 후, F동 뒤뜰에 가셨던 아빠가 고양이 두 마리가 있다며 사진을 보내주셨다.

나도 그 연락을 듣고 부리나케 달려갔다. 누군가 했더니, 덕이와 호랑이​였다. 당시에는 덕이를 ‘곰’으로 불렀다.

호랑이는 ‘쎈캐(쌘 캐릭터)’같이 생겼고, 실제로도 서열 1위의 일진 고양이지만​, 약자인 아픈 가족 ‘덕이’를 지극정성으로 돌본다.

두 마리는 그늘 아래에서 쉬고 있었다. 덕이는 아파서 털이 거무죽죽했고, 호랑이의 털은 눈처럼 하얗고 윤기가 흘렀다. 아름이를 호랑이로 헷갈릴 때는 많았으나, 호랑이는 항상 단번에 호랑이인걸 알아볼 수 있었다.

내가 다가가자, 호랑이와 덕이는 풀숲에 숨었다. 전날 헌혈하고 받았던 고소미를 몇 개 주었으나 먹지 않았다.

그 후 내가 서울에 나가 커피를 마시며 시간을 보내는 동안​ 부모님은 저녁 산책을 하다가 찰리​를 발견하셨다.

그때 찰리의 이름은 ‘예삐’였다. 두 분 모두 코 옆에 쌍점이 예쁘다고 하셨다. 그의 쌍점은 멀리서 보면 마치 찰리 채플린의 콧수염 같다. 찰리는 마치 여권 사진을 찍듯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했다.

그 후, 체육시설 앞 오솔길에서 낯선 고양이와 함께 있는 찰리를 발견했다.

찰리 맞은 편의 낯선 고양이는 전날 저녁에 처음으로 본 젖소종의 짝눈 고양이였다. 

턱시도 종인 찰리는 망토 입은 남작 같았다.

그때 갑자기 찰리가 등을 바닥에 대고 구르기 시작했다. 왜 갑자기 뒹구는 거지?

찰리가 계속 바당에 뒹굴자, 바로 옆에 있던 젖소종 고양이가 찰리에게 다가갔다. 마치 집적대거나 들이대는 것처럼. 그러자, 놀랍게도 찰리가 젖소종 고양이를 물어버렸다. 물린 고양이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도망갔다. 그 모습이 추근대다가 퇴짜 맞은 듯하여, 그 젖소종 고양이의 이름은 ‘불한당’이 되었다.

찰리는 불한당이 도망간 후에도, 심지어 자리를 옮겨서도 또다시 바닥에 뒹굴었다. 한참을 뒹굴다가 아파트 단지를 떠날 때는 크게 포효도 했다. 그래서 혹시 찰리가 발정기에 접어든 암냥이인가 추측하기도 했다. 그래서 불한당의 이름이 부녀자에게 추근대는 ‘불한당’이 된 것이다.

찰리는 배가 나왔기 때문에 임신한 암냥이로 오해를 받기도 했다. 암컷이라 생각하고, 그를 ‘예삐’로 불렀다. 그러나 알고 보니, 임신인 줄 알았던 배는 뱃살이었고, 바닥에 뒹굴었던 건 그저 간지러워서였다. 아마 모기에 등을 물렸을지도 모르겠다. 결국, 찰리도 불한당도 모두 수컷이었다.

궁예가 찰리의 엄마라 생각했던 것도, 최근에 고양이가 많이 보이는 이유는 찰리가 발정기라 숫 냥이들이 모여들었다고 생각한 것도 모두 난센스였다. 여긴 원래 고양이들이 많다. 단지 내가 그동안 못 발견했을 뿐.

와인을 마시러 자리를 옮길 때쯤 부모님은 F동 앞으로 가셨다. 아까 덕이와 호랑이가 그늘에서 쉬던 곳이다. 아직도 덕랑이(덕이와 호랑이)가 있었다. 낮에 주었던 고소미는 먹지 않은 채 그대로였다. 그때 고양이는 강아지와 달리, 사람이 먹는 과자를 먹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그 후 덕이 혼자 쓰레기장에서 발견되었다. 호랑이가 호랑이를 닮았다면, 덕이는 사자를 닮은 것 같았다.

집에 도착했을 때, 계곡에는 궁예뿐이었다. 달빛을 받아 새하얀 털 때문에 잠자는 토끼 같았다.

잠깐 일어났다가, 다시 엎드려 잠에 들었다. 차가운 돌바닥에 한쪽 얼굴을 대고 곤히 잠들었다.

반대편의 바위 숲에는 노란 고양이가 한 마리 있었다.

여우인가 했는데, 자세히 보니 호랑이였다.

호랑이는 낮에 보면 맹수인 ‘호랑이’를 닮았는데, 밤에 보면 동공이 커지며 귀여운 얼굴이 되어 마치 ‘다람쥐’ 같다.

호랑이는 바위 위에서 한참 동안 그루밍을 했다. 보통 고양이들은 그루밍이 일상적이지만, 호랑이는 다른 고양이들보다도 그루밍에 시간을 많이 할애하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항상 털에 윤기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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