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원동 오라방
일전에 가로수길 뒷골목 오라방이라는 곳에서 인상 깊은 저녁을 먹었다.
제주도 음식과 술을 파는 요리주점으로, 인기가 많아 한 시간을 기다려야 입장할 수 있었다. 제주도에 여행 가면 먹는 음식들을 서울에서도 먹을 수 있어서, 여행 온 듯한 기분을 만들어주는 곳이었다.
아직 제주에서도 먹어보지 못한 몸국에 돔베고기를 찍어 먹었고, 그 어떤 튀김보다 인상적이고 맛있는 술안주였던 통째로 튀긴 갈치 튀김을 맛보았다.
특히 제주 창도름 순대의 맛이 기억에 남았는데, 막창으로 만든 껍질은 쫄깃했고 밀도 높게 채워 넣은 순대 속은 참 알찼다. 한 병에 25,000원으로 좀 비싸긴 했지만 감초와 오가피로 만든 ‘녹고의 눈물’이라는 전통술이 안주와 찰떡이라 두 병을 먹었다.
알고 보니 신사동의 오라방은 2호점이고 망원동에 본점이 따로 있다고 하여, 신사동에서의 좋은 기억을 가지고 방문했다.
망원동의 오라방은 망리단길 끝자락에 있었다. 저녁이라 골목길보다는 큰길로 가고 싶어서 대루 커피가 있는 동교로로 걷다가 우측으로 꺾어야겠다 생각했다. 다 좋았는데, 지도를 보지 않고 무작정 1번 출구로 나간 게 폐단이었다. 1번 출구에는 ‘서교동 방면’이라고 쓰여있었다.
한참 대로를 걷다가 동교로가 시작된다고 생각되는 지점에서 우측으로 꺾었는데 만두란 등의 익숙한 가게들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맞은편에 성산초등학교가 보여야 하는데 학교 그림자조차도 보이지 않았다.
뭔가 잘못됐다 싶어서 그제야 지도 앱을 켜봤더니 동교로와 정반대 방향에 서있었다. 출구를 잘못 나온 탓이었다. 2번 출구가 아닌 1번 출구에서 나오는 바람에 남동쪽으로 갔어야 하는데 북서쪽으로 가버린 것이다. 이쯤이면 망원동을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지도를 전혀 보지 않고 다니기에는 갈길이 먼 것 같다.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보니, 이제야 망원우체국, 망원동 한강시민공원 등의 표지판이 눈에 들어온다. 길을 잘못 드는 바람에 먼저 도착한 친구가 한없이 기다리게 생겼다.
골목길이 싫었지만, 지름길은 골목길이었다. 인도와 차도가 섞인 어두운 좁은 길에서는 수시로 뒤편에서 차가 지나갔다.
오라방도 이치젠처럼 가끔 초록색 지선버스가 다니는 일 차선 도로에 있었다. 생각보다 작은 가게였다. 거리두기 때문에 테이블 몇 개를 강제로 비우긴 했지만, 망원동의 다른 가게들처럼 만석이었다.
구석의 2인석에 도착했을 때, 마침 D가 미리 주문한 고사리 해장국이 등장했다. 이번 달 제주도에 갔을 때 공항에 가기 전 먹으려다가 새벽에 일어나야 돼서 포기했던 그 고사리 해장국이었다.
고사리 해장국은 맛있었다. 예전부터 종종 고사리의 생김새가 소고기 중 홍두깨를 닮았다고 생각했는데, 그래서인지 소고기가 고사리이고, 고사리 또한 소고기 같아 보이는 물아일체의 맛이었다. 맛도 괜찮았고, 양도 많았다. 문제는 식기였다.
설거지가 깔끔하게 안되었는지 숟가락이 청결하지 않았고, 앞접시도 미끄덕거렸다.
신사동에서 마셔보지 않은 전통주를 마시려고 고른 혼디 주가 나왔는데, 술 이름이 적힌 예쁜 술잔에도 지문이 잔뜩 찍혀있어서 결국 물컵에 술을 따라 마셨다.
신사동 오라방에서 먹었던 ‘통째로 튀긴 갈치 튀김’을 술안주로 먹으려 했지만, 오늘은 갈치 튀김이 없다고 해서 창도름 순대를 먹었다.
창도름 순대는 오메기술과는 어울려도, 혼디 주는 너무 달아서 서로 어울리지 않는 게 아쉬웠다. 망원동에서 먹은 창도름 순대도 다른 식당의 순대보다는 맛있었으나, 전체적인 인상 탓일까 신사동에서 먹었던 감동의 맛에는 미치지 못했다.
본점보다 맛있는 2호 점도 있다. 형보다 아우가 나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