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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비전재복 Nov 27. 2022

*詩가 있는 풍경(4)

- 김치를 담그며

*김치를 담그며 / 전재복



속이 꽉 찬 가슴배기

반으로 쩍 가른다

옹골차게 들어차

노랗게 여문 한 계절


왕소금 설설 뿌려

소금물에 눌러 넣고

날 선 기를 다스린다


호된 계절을 지나며

무시로 일어서던 우쭐거림

혹은 노여움

서로를 상처내던 거친 모서리

꾹꾹 눌러 소금물에 담가두고

한나절쯤 목 놓아 울게하다


맑은 물에

남은 티끌 씻어내고

알량한 자존심도 털어내고

살갑게 품 펼치는

맛깔스런 양념에

못 이긴 척 몸을 섞는다


사랑 한 포대

허리 휘는 한숨 몇 동이

칼칼하고 맛나게 익어가거라

 

<2009년 세 번째시집 발표작>


11월 중순 쯤부터 대부분 가정에서는  김장을 하느라 손길이 바빠진다.

예전보다 김치에 의존하는 정도가 많이 줄어들었고, 김치를 조달하는 방법 다양해졌다.  

한계절 내내 심고 가꾸는 수고는 차치하고라도, 밭에서 배추를 뽑아와 다듬고 소금물에 몇 시간 간절임을 하고,  씻고, 물을 빼서 갖은 양념을 발라 버무리는 등...김치를 담그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품이 드는 줄 모른다.

겨울반찬으로 거의 김치에 의존하던 한세대 전쯤의 어머니들에게 김장은 대단한 행사였고 서로서로 손을 빌려주는 정겨운  품앗이였다.  통깨 듬뿍 뿌려 갓 버무린  겉절이와 따뜻한 밥 한 사발이면 다른 반찬이 없어도 그만이었다.

거기에 된장 한 덩이 넣고  푹 삶은 돼지고기 수육이라도 곁들이면 세상에 그보다 맛난 한끼식사가 또 있으랴.

요즘이사 깨끗하게 손질한 절임배추를 사다가 양념만 발라도 되고, 아예 김치를 주문해서 사먹을 수도 있으니 예전의 밭에서부터 시작하던 김치 담그기의 수고가 많이 줄어들었다.


그렇다 치더라도 김치를 담그는 일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어머니는 아직도 많지 않을 것이다.

김장철이 되면 수북하게 쌓여있는 무, 배추, 양념거리들 앞에서 김치를 담가서 보낼 아들 딸들을 꼽아보는 어머니의 더딘 걸음을 본다.


고단한 며느리였던 , 어머니의 노동은 오늘도 내일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쭈욱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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