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할 줄 아는 사람이 잘 산다.
탤런트 설인아 씨는 낭랑한 자신의 목소리를 매력으로 꼽으며 이런 말을 했다.
“호불호가 갈리지만 내가 배우 인생을 마감할 때까지 특이하고 흔하지 않은 목소리를 가진 배우라고 듣는 게 목표다”라고 밝혔다.
한때는, 자신의 목소리로 인해 인터넷 게시판에 이런 글을 보게 되었다.
한 네티즌의 이런 목소리로 태어났으면 자살했을 거라는 악플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녀는, 호불호가 갈려서 힘든 상황에 놓이기도 했지만, 자신의 목소리를 좋고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그녀는, 내가 나를 사랑해야 남들에게도 내 것을 좋아해 달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설명했다.
세상은 내가 주인공이 되어야만 한다. 남이 뭐라 하든 말든 신경 쓰지 말고 말이다.
남이 나에게 험담을 하든, 뒤통수를 치든 그건 그 사람 문제다
어차피 누구나 한 번뿐인 인생이라면 나를 중심으로 나를 위하며 살아가야 한다.
나 역시 직장 생활 10년 넘게 일하면서 남의 기분, 남의 눈치 보기에 급급했다.
사실 병원이라는 곳은 긴장의 끈을 놓을 수는 없기에 조직적이고 실수도 용납이 안 된다.
그러다 보니, 나의 주장을 펼치기보단, 남의 의견을 따르며 함께 협조적인 분위기가 되어야만 했다.
한 번은 응급실에서 교통사고 환자가 많아서 침상이 부족했다.
그러다 보니, 다른 병동으로 환자를 빨리 옮기는 게 대책이라는 생각을 했다.
인계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응급실을 상황을 설명한 뒤 바쁘겠지만, 이쪽 상황 이해 좀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렇게 다시 전화를 주겠다던 병동 챠지 선생님이 씩씩대며 내려왔다.
나를 보며 다짜고짜 막말을 해댔다. 여기만 바쁘냐? 네가 뭔데 이래라 저래 라고 하니?
병동은 인계 시간인데,, 누구보고 환자를 받으라 하냐며 큰소리로 삿대질을 했다.
나는 이쪽 상황을 보고도 그런 말을 하냐고 , 항상 그런 것도 아니고, 우리는 인계도 못하고 환자만 보고 있다며 언성을 높였다.
전쟁터를 방불케 한 그날 새벽 1시가 되어서야 퇴근을 했다.
다음날, 간호 과장님의 호출이 있었고, 나는 쓴소리를 들어야 했다.
후배가 선배한테 이래라저래라 했다면서, 응급실에서 침상이 부족했으면 간이침대라도 펼쳐야지 그랬다는 것이다.
만약, 이 상황에서 제대로 된 사람이었다면, 선배 후배 따지지 않고, 바로 환자 받았을 것이다.
환자를 위했다면, 인계 조금 늦게 하고 협조적인 자세를 취하는 게 정답이라고 생각했다.
후배가 감히 선배한테 이래라저래라 했다는 이유만으로, 그리고 선배의 의견에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나는 내 맘대로 하는 간호사로 찍혔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누구나 한번씩 겪게 되는 어려움이 있다.
부당하면서도 따를 수밖에 없고, 해고되지 않기 위해 버틸 수밖에 없는 상황 말이다.
나 역시도 그렇게 직장생활을 하다 보니, 한번씩 회의감이 들었다.
누구보다 의료인이라면 환자중심, 환자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배웠다.
자신이 인계 타임이라고 해서, 환자보다 중요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그 후, 내 마음대로 하는 간호사로 찍혔지만, 후배들은 내 눈치 보며 이렇게 말했다.
응급실 바쁘면 병동으로 올리세요..
그 선배와의 갈등은 있었지만, 후배들은 아마 내가 옳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아니면 무서운 나의 카리스마에 감히 도전장을 내밀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날 이후부터 직장생활에서 옳지 않은 일, 무리 속에 시간만 소비하는 일 등은 과감히 버리게 되었다.
무소의 뿔처럼 내가 옳다면 의견을 제시하고 아니면 말고 라는 식으로 살았다.
누가 뭐라 하든 말든 내 마음이니깐 말이다.
언제까지 남의 눈치 보며 남의 기분 맞춰주며 살고 싶지 않으니깐 말이다.
직장은 친교 목적이 아닌, 내가 직장에서 최선을 다한 만큼 대가를 받고 직장도 나를 이용하는 목적이기 때문이다.
언제까지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하며 살아야 하는가? 타인의 평가에 좌지우지하며 살고 싶지 않았다.
성과점수가 낮더라도, 내 생각대로 내 중심대로 살고 싶었다.
요즘 자존감 높은 사람들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나 역시도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다.
가정환경 때문에, 백이 없어서, 운도 없고, 인맥도 없어서 등 여러 가지 이유로 말이다.
다른 건 몰라도 다른 사람 때문에 자존감이 낮아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일하면서 상사의 쓴소리, 동료의 자랑 질, 후배의 잘난 척 등으로 자존감 하락이 여러 번 됐다.
아무리 긍정적인 생각을 해도, 막상 내 마음은 무너져 버렸다.
하루는, 그런 나 자신에게 물어봤다.
너는 왜 이렇게 남들과 비교하니?
그렇게 자신 없니?
감정소비 그만하고 살자..
내가 내린 결론은 다른 사람들로 인해 나의 하루가, 아니 한 달, 평생 망치는 일이 있다면 불행할 꺼라 생각했다.
과소비는 물건이라도 남지만, 감정소비는 후회만 남더라.
어디선가 이런 문구를 본 적이 있다.
그 뒤로 더 이상의 감정소비를 하지 않기로 했다.
나를 위해서 말이다.
나의 내면이 아프면 안 되니깐 말이다.
이 세상에 온 이유는 하루하루 나를 위해 살기 위함이라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 따윈 개나 줘버려라.
그들이 자랑을 하던, 잘난 척을 하던 뒷다마를 하던 한 귀로 듣고 흘려보내라.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은 반드시 있다.
일부러 잊으려고, 생각하지 않으려고 하기보단,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수용하게 되었다.
아무리 나를 무너뜨리려고 해도 나의 마음의 벽은 단단한 방어막이 되어있었다.
버릴 건 버리며 더 이상의 감정소비는 하지 않고 말이다.
그렇게 몇 날 며칠 버티는 힘이 생기자, 지금은 나쁜 말이 들려도 너나 잘해,
그래서 뭐?
라며 무시하는 힘이 생겼다.
내 방에는 전신 거울이 있다.
일부러 구입했다.
그리고 출근할 때는 이렇게 말했다.
너희들은 (직장에서 악녀로 소문난) 여기서 오래 못 버틸 거야.
내가 그렇게 만들 거야..라고 말하고 갔다.
퇴근 후에는 오늘도 수고했어. 돈 벌기 쉽지 않지?
너니깐 버틸 수 있어.
강한 정신력으로 잘 버텼다. 잘 자.
라고 주문처럼 외웠다.
내가 나에게 하는 마법이라고나 할까?
그렇게 몇 달이 흐르자, 힘들었던 아니 죽을 거 같던 직장생활도 나름 괜찮아졌다.
그리고 그 소문난 악녀들도 하나둘 직장을 떠나갔다.
직장 분위기도 바뀌었고, 어느덧 내가 책임 간호사라는 위치가 될 수 있었다.
가끔 거울 속의 나의 눈동자를 보면 눈물이 나온다.
아마 나의 마음을 들키는 날에는 더욱더 말이다.
코코 샤넬은 방 한가운데 거울을 두고 살았다고 한다.
물론 거울로 패션이나 외모도 체크했겠지만 그녀에게 거울보기는 자신과의 대화를 의미했다.
샤넬처럼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마음 깊은 데 고독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고독과 마주하고, 자신의 내면을 살펴보며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알게 된 샤넬은 비록 사생아로 태어나 고아원과 수도원을 전전하는 등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지금은 프랑스 최고 디자이너라 평가받고 있다.
현대 사회는 행복 과잉 시대이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매일 행복한 사람들의 화려한 일상과 성공한 사람들에게만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진다.
TV는 화려한 연예인의 삶과 모습을 보여주며, 그들과 똑같은 상품을 사면 행복해질 수 있는 메시지를 보낸다.
청소년뿐 아니라 성인들조차, 그들의 유행을 따라서 하고 마치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을 것처럼 생각한다.
물질적 충족만 쫒는다면 행복은 공허함과 허망할 뿐이다.
지금 내가 가진 것보다 더 좋은 물건들이 계속 생산되기 때문이다
각 나라의 행복 지수를 조사한 결과 행복 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는 방글라데시나 나이지리아 같은 가난한 나라였다.
물질과 돈보다 더 중요한 건 나 자신의 삶이고, 나를 사랑하는 마음인 것이다.
요즘에는 이런 주문을 외운다.
나는 참 괜찮은 사람이야.. 나는 꼭 필요한 사람이야..
내가 있어야 이 세상이 돌아가지..
세상이 아무리 눈부신 발전을 해도 내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러니 오늘도 힘든 하루 속에 전쟁을 하겠지만,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
나를 사랑하는 내가 있기에 오늘도 당당히 걸어보자
든든한 나를 믿어보자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