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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pellie Jul 05. 2024

13. 환경으로서 제도

깨진 유리창 법칙(broken windows theory)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깨진 유리창 하나를 방치해 두면, 그 지점을 중심으로 범죄가 확산되기 시작한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죠. 깨진 유리창 법칙에서 주인공은 당연히 「깨진 유리창」입니다. 그 주인공을 조금  더 살펴보기로 하죠


「깨진 유리창」 이해하기

마르셀 뒤샹의 '샘(fountain, 1917)'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사실 그냥 보기에는 남성용 소변기이죠. 오늘날 현대 미술사에서 중요한 작품으로 회자되고 있지만, 실제 이 작품이 전시회에 출품되었을 때 당시 평론가들의 혹독한 심사는 물론이거니와 전시회 당시 쓰레기로 오인받아 버려졌다는 이야기가 들리기도 하는데, 이에 대해 뒤샹은 이렇게 말을 했다고 합니다

"예술에서 중요한 것은 대상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개념을 만드는 것"

이라고 말이죠. 

깨진 유리창에서 중요한 건 '깨진 유리창' 그 자체가 아니라 '깨진 유리창'을 통해 사람들이 전달받는 메시지입니다. 깨진 유리창이 어제도, 1주일 뒤에도, 한 달 뒤에도 계속 남아 있음을 통해 사람들은 그곳이 깨진 유리창이 방치된 관리되지 않는 위험한 장소라는 인식/개념을 갖게 됨을 말합니다. 


오염의 메타포

김현경 님은 저서에서 '더럽다는 것은 제자리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책의 설명을 조금 더 들어보죠.

"신발은 그 자체로는 더럽지 않지만 식탁 위에 두기에는  더럽다. 음식이 그 자체로 더러운 건 아니지만, 밥그릇을 침실에 두거나 음식을 옷에 흘리면 더럽다. 마찬가지로 목욕 도구를 옷장에 두거나 옷을 의자에 걸어두는 것,  집 밖에서 쓰는 물건을 실내에 두는 것, 위층의 물건을 아래층에 두는 것, 겉옷이 있어야 할  자리에 속옷이 나와 있는 것 등은 더럽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신발을 식탁 위에 두지 않습니다. 만일 아이가 신발을 들고 장난을 치다가 신발을 들고 집안으로 들어오면 혼이 나기도 합니다. 신발이 '제자리'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르셀  뒤샹의 샘

'오염의 메타포'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다시 마르셀 뒤샹의 '샘(fountain, 1917)'을 이야기해 볼까요? 마르셀 뒤샹의 '샘'이 전시되었을 때 심사위원을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화장실에 있어야 할 소변기가 전시회에 잘못 놓였다고 판단을 합니다. 이는 결국 오염된 '쓰레기'로 인식되어 버려집니다. 그런데 뒤샹은 소변기를 예술작품으로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기존의 '오염되었다'는 인식을 바꾸는 데 성공하죠. 결국 소변기는 현대 미술사에서 중요한 작품으로 남아 있게 됩니다.


인식의 한계

신발이, 소변기가 각각 신발장과 화장실에 있어야 한다는  것은 일종의 인식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인식을 하고 있는 것이죠. 하지만 그 인식은 매우 주관적이며 제한적인 성질을 가집니다. 태어나서 소변기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소변기를 화장실이라는 장소와 바로 연결하지 못할 겁니다. 제가 해본 게임 중 호라이든 제도 던이라는 게임이 있습니다. 그 게임은 인류가 멸망하고 난 이후의 세계를 다루고 있죠. 해당 배경에서 부족들은 AI를 '신(god)'으로 이야기합니다. 과학이 아니라 영적인 존재로 말이죠. 제한된 정보, 인간이 가지는 생각의 한계 등이 만들어 낸 인식의 한계를 보여주죠. 


환경으로서 제도

마르셀 뒤샹의 표현을 빌어 본 글에서는 '환경으로서 제도'를 이렇게 표현하려 합니다. 

"제도에서 중요한 것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개념(인식)을 만드는 것"

우리는 인사제도를 이야기하며 주로 그 방법론을 대화의 주된 내용으로 다루곤 합니다. '제도를 만드는 것'에만 집중을 하죠. 반면 개인적으로 제도를 이야기할 때 '개념'을 많이 강조합니다. 


'제도를 만든다는 것'은 개념으로 구성된 시작과 끝을 연결하는 과정을 설계하는 것을 말한다. 연결을 위해 우리는 그 연결대상으로서 시작과 끝의 개념을 이해해야 한다. 물론 그 개념을 알지 못하더라도 제도를 만드는 건 가능하다. 다만 개념을 모른 채 설계된 제도는 '우리 기업과 맞지 않는', '보기 좋은 보고서'로 남아 있을 가능성이 높다. 
'제도를 만든다는 것'은 개념으로 구성된 시작과 끝을 연결하는 과정을 설계하는 것과 같다

제도에 있어 '개념'에 담긴 두 가지 의미

제도에 있어 개념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방향성을, 다른  하나는 구성원이  제도를 활용하여 갖길 기대하는 인식의 상태입니다. 방향성은 '왜 하는가'를, '기대하는 인식'은 그래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려고 하는가'를 말합니다. 이렇게 보면 제도에 있어 개념은 그 제도의 시작과 끝을 의미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제도를 만든다는 것'은 개념으로 제시되는 시작과 끝을 연결하는 것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무언가를 연결하려면 그 연결대상을 알고 있어야 하며 그 지점에 바로 '개념'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제도, 특히 인사제도를 이야기할 때  개인적으로 개념을 강조하는 이유라 할 수 있습니다.


Reference.

나무위키, '샘(마르셀 뒤샹) 검색

도서 '사람, 장소, 환대', 김현경 님,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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