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 말고 내 눈
최근에 어처구니없는 경험을 했다. 나의 매거진 <지속 가능한 건강 루틴 탐구생활>을 쓰기 시작하기 바로 전날의 일이다.
그간 남편과 육퇴 후 맥주 한 잔, 거기에 감자칩, 빼빼포를 더해 육아의 고단함을 날리곤 했다. 게다가 단 게 당기면 몽쉘과 같은 파이, 초코 츄러스맛 꼬북칩, 쿠크다스 등 단 것이라면 내가 빠질 수 없지, 내가 스윗스낵계의 최고다라는 과자들을 잔뜩 사서 남편과 하나, 또 하나, 그렇게 한 봉지씩 계속 뜯어먹으며 달달하게 하루를 마무리하곤 했다. 그러다 이런 생활을 지속해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슬슬 다이어트를 시작해볼까 하며 평소 자주 먹던 빵, 과자, 단음료들을 줄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며칠간 잡곡밥, 콩, 채소 위주로 먹으며 건강한 식단으로 조금씩 정제시켜 갔다. 양은 조절하지 않고 먹고픈대로 양껏 먹었다. 우선 식단에 변화를 주었으니 양은 천천히 줄여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이후, 몸이 좀 가벼운 느낌이 들어 체중계에 올라가고픈 마음이 들었다. 왠지 살이 좀 빠졌을 것 같아서. 그런데 체중계에 올라가 보니, 이게 웬걸, 살이 조금도 빠지지 않은 거다. 0.1의 오차도 없이. 그 순간, 솔직히 너무 실망스러웠다. 살이 빠졌을 거라 기대하고 올라간 체중계에서 허탈감과 좌절감을 갖고 내려왔다. 그러자 짧지만 며칠간 클린한 식단을 하느라 안 먹었던 단 음식이 순간적으로 먹고 싶어졌다. 허탈감과 좌절감이 다이어트에 대한 반항심으로 바뀐 걸까. 결국 던킨 도넛을 주문했다. 배달 가능 금액에 맞춰 약 16,000원어치의 도넛을.
집에 도넛이 도착하자마자 거짓말 않고 도넛을 반씩 잘라 모든 도넛을 다 맛봤다. 달콤한 맛에 너무 행복했다. 하지만 항상 같은 결말을 맞이한다. 먹고 나서 후회하는 것. 제대로 된 다이어트는 아직 시작 안 했으니 시작 전에 조금 즐긴 걸로 치자고 이른바 정신 승리를 했다. 여기서 제대로 된 다이어트란 매거진 <지속 가능한 건강 루틴 탐구생활>에 첫 글을 올리는 걸 시작으로 식단과 운동을 병행하며 글로 기록하고 문제점과 해결책을 찾아 나에게 맞는 지속가능한 건강 루틴을 평생 습관화하는 것을 말한다.
https://brunch.co.kr/@cjh8951/19
다음 날, 매거진에 첫 글을 게시했다. 그리고는, 다이어트를 시작하기 이전 몸무게를 측정하기 위해 체중계에 올라갔다. 그런데, 놀랍게도 몸무게가 0.3kg이 빠져있었다. 어제 달콤한 던킨 도넛으로 과식을 했는데도! 순간 오늘의 ‘나’가 어제의 ‘나’에 대해 너무 후회막심하였다. 체중계에 나와있는 수치에 허탈하여 자제력을 잃고 과식하지 않았다면 0.3kg보다 더 많은 체중감량을 이뤘을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며칠간의 식단변화의 결과가 오늘에야 나타난 건지도 모를 일이었다. 클린한 식단으로 바꿨음에도 어제 측정한 체중이 이전보다 0.1kg의 차이도 없었던 이유는 체중계를 놓았던 바닥 지면에서 온 오차일 것으로 추측된다. (어제는 메이크업 룸과 화장실 사이 석면 바닥에서 측정했고, 오늘은 방바닥에서 측정했다.)
후회스러웠지만 어제 과식했음에도 조금의 체중 감량이 있어 내심 기뻤다. 매거진 글을 올리고 다이어트를 기분 좋게 시작할 수 있어서 좋았다. 다음 글 첫 일주일간의 다이어트에 대해 쓰기 위해 본격 다이어트가 시작되었다. 저녁 6시 이후로 금식, 단백질 위주의 식사로 다이어트 둘째 날부터 현격한 변화가 느껴졌다. 몸이 가벼워진 것이다. 그전에는 잠에서 깨 일어나면 발목과 무릎이 약간 아팠다. 그 통증들이 거짓말같이 사라졌다. 셋째 날에는 거울을 통해 몸 옆면을 봤을 때 윗배가 약간 들어간 것 같았다. 그날 오후, 딸을 데리고 문화센터 수업을 수강하러 갔는데 함께 수강하는 친구가 나를 보자마자 살이 좀 빠져 보인다고 해 가벼워진 몸만큼 기분도 날아갈 듯했다. 수업을 마치고 집에 왔을 때 체중을 재보고 싶은 욕구가 일었지만 막상 체중의 변화가 없다면 또 실망할 수 있으니 자제했다.
다이어트 6일 차, 체중을 재봐야 하는 순간이 왔다. 일주일간의 다이어트라 다음 날 7일 차에 재어야 하지만 친정 식구들과의 식사 약속이 있는 터라 자칫하면 과식할 수 있으므로 그간의 다이어트 효과를 알아보기 위해선 이 순간 측정해봐야 한다. 거울로 몸을 봤을 때 배가 전보다 눈에 띄게 들어간 듯 보였다. 몸도 더 가볍게 느껴졌다. 체중계에 자신감과 기대감을 갖고 올라갔다. 무려 1.3kg이나 빠져있었다! ‘이래서 눈바디가 중요하구나’가 마음속에서 계속해서 울려 퍼졌다. 눈바디가 체중 감량을 보이면 체중계도 필히 전보다 낮은 숫자를 보일 수밖에 없다. 눈으로 봤을 때 전보다 몸의 변화가 보이지 않는다면 체중계에 올라갈 필요가 없는 것이다.
결심했다. 체중계로 보이는 숫자, 수치에 좌지우지되지 않겠다고. 일희일비하지 않겠다고. 눈바디에 집중하겠다고. 눈으로 보이는 나의 몸의 변화를 발견하는데 예민해지겠다고. 어차피 다이어트는 체중계에 뜨는 숫자를 낮게 만들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 나의 몸을 좀 더 슬림하게, 혹은 근육으로 탄탄하게 만들기 위함이니까.
체중계로 쉽게 확인되는 숫자보다 더 정확한 건 눈으로 보이는 살과 근육량의 변화이다.
*글 제목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