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chinko 1 | 내가 ‘노아’를 가르치는 선생님이라면?
청소년기에는 역사의 쓸모가 그다지 없어 보였다. 왜 그렇게 많은 연도와 사건들, 왕과 각 왕들의 업적들, 심지어 다른 나라들의 역사까지도 외워서 시간 순서대로 잘 짝지어야 하고, 연도와 사건의 내용이 잘 매칭된 것을 골라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이성적으로는 '그래, 국민으로서 우리나라의 역사는 공부하는 게 맞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처한 현실이 입시의 압박, 할 것들은 많은데 한정되어 있는 시간, 불안감, 갑갑함 등을 느끼며 쫓기는 상황 속에 있다 보니 이성과 논리로 이해했던 역사의 쓸모가 마음속 깊이 와닿지 않는 것을 떠나 '아 왜 이걸 다 외워야 하는 걸까. 아...'로 바뀌는 마음에 당도했다. 억지로라도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를 만들어냈지만 그 쓸모를 버리고 싶었다.
청소년기를 지나 성인이 되어서는 역사 관련 영화나 도서를 볼 때면 역사 속 등장인물에 감정이입해 눈물을 쏟기도 하고, 동시에 나를 대입해 나라면 어땠을까, 내가 저 시대를 살았다면 어떤 사람이었을까, 나도 똑같이 행동할 수 있었을까를 생각하게 되었다. 특히,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읽고는 어찌나 눈물이 펑펑 나던지 아직도 책을 부여잡고 오열하며 울던 그 순간을 잊을 수 없다. 자연스럽게 '나라면?'이라는 생각의 물꼬가 트이기 시작하며 힘든 역사 속에 살던 분들께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현대를 사는 우리는 여기서 그쳐서는 안된다고 한다. 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쳤던 교사 최태성은 책 <역사의 쓸모>에서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하며 자신을 성찰하고 반성하며 인생의 방향성을 잘 잡아가야 한다고, 그렇지 않으면 관성에 젖어 살아지는 대로 살아가게 된다고 말한다.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다른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점검하게 됩니다. 그리고 겸손을 배우죠. 역사는 사람뿐만 아니라 실제로 존재했던 나라의 흥망성쇠를 들여다보는 것이기도 합니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가끔은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천하를 호령하던 인물이 쓸쓸하고 비참하게 죽는가 하면, 사방으로 위세를 떨치던 대제국이 한순간에 지도에서 사라져 버리기도 하니까요. 역사에서 이런 일은 너무나 비일비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나 시시때때로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역사를 통해서 자신의 위치를 돌아볼 줄 알아야 합니다.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는 물론이고 순항하고 있을 때도 그렇습니다. 지금 정말 괜찮은가? 그냥 되는 대로 흘러가고 있는 건 아닐까? 무언가 잘못된 건 없을까?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게 맞을까? 자꾸 물어봐야 해요.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것을 멈추면 그저 관성에 따라 선택하고 관성에 따라 살게 됩니다.
-책 <역사의 쓸모> 104쪽에서 / 최태성
책 <Pachinko>와 작가 이민진에 대해 연일 언론이 들썩일 때가 있었다. 한국계 미국인 작가가 쓴 소설로 한국의 역사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라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4대에 걸친 재일조선인 가족의 이야기이다. 일제강점기 때 한국에서 벌어진 역사적 사실, 그리고 그 사실을 바탕으로 쓰인 이야기들만 자주 접했던 나는 일본으로 건너가 거기서 생을 살아가던 조선 사람들의 이야기가 읽어보고 싶어졌다. 물론, 소설이라 책 속 내용들이 다 역사적 사실이 아니겠지만 최소한 그 당시 일본에서 살던 우리나라 사람들의 심정은 조금이나마 느껴볼 수 있지 않을까.
책을 읽던 중 아래처럼 오사카에서 나고 자란 노아가 조선인임에도 일본인 학교에 다니는 부분이 나왔다. 직업이 교사여서인지 학교에서 교우관계없이 홀로 생활하는 노아가 읽는 내내 마음이 쓰였다. 그럼에도 학업에 정진하고 주변 정리를 깔끔하게 하며 누구보다 모범적으로 학교생활을 하고 있는 노아가 기특하면서도 모범적인 학생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마음을 아프게 했다.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였던 시대에 일본인 학교에 다니고 있었으니까.
At school, Noa was strong in both *arithmetic and writing, and he surprised the gym teacher with his *adept hand-eye *coordination and running speed. After classes ended, he *tidied the shelves and swept the classroom floors without being asked and walked home alone, trying not to *draw any *undue attention to himself. The boy *managed to look unafraid of the tougher children while setting himself apart with a *perimeter of quiet privacy that could not be disturbed. When he got home, Noa went directly into the house to do his schoolwork without *lingering on the street with the neighborhood children who played until dinnertime. (책 175쪽에서) (*에 대한 설명은 글 최하단에 있습니다.)
(옮긴 글) 학교에서 노아(Noa)는 산수와 글쓰기 둘 다에 뛰어났고, 또한 능숙한 손과 눈의 협응과 달리기 속도로 체육 선생님을 놀라게 했다. 수업이 끝난 후에는 책장을 정리하고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교실 바닥을 쓸었다. 그리고는 지나친 관심을 끌지 않으려고 애쓰며 홀로 집으로 걸어갔다. 그 소년은 누구도 방해할 수 없는 조용하고 혼자 있는 분위기를 자아내 스스로를 고립시키며 비교적 거친 학생들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려고 애썼다. 노아가 집에 도착했을 때는 저녁을 먹을 때까지 놀던 이웃 아이들과 거리에서 같이 놀지 않고 공부를 하기 위해 집 안으로 곧장 들어갔다.
Like all children, Noa kept secrets, but his were not ordinary ones. At school, he went by his Japanese name, Nobuo Boku, rather than Noa Baek; and though everyone in his class knew he was Korean from his Japanized surname, if he met anyone who didn't know this fact, Noa wasn't *forthcoming about this detail. He spoke and wrote better Japanese than most native children. In class, he *dreaded the mention of the peninsula where his parents were born and would look down at his papers if the teacher mentioned anything about the *colony of Korea. Noa's other secret: His father, a Protestant minister, was in jail and *had not been home in over two years. (책 176쪽에서) (*에 대한 설명은 글 최하단에 있습니다.)
- <Pachinko> by Min Jin Lee
(옮긴 글) 모든 아이들처럼 노아는 비밀을 지키고 있었는데 평범한 비밀들이 아니었다. 학교에서 그는 한국 이름인 백노아보다는 그의 일본이름인 노부오 보쿠로 통했다. 그의 반 모든 사람들이 노아가 일본식 이름을 갖고 있는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아도, 또는 그가 이 사실을 모르는 누군가를 만나도 노아는 이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 그는 대부분의 일본 아이들보다 일본어를 더 잘 말하고 쓸 수 있었다. 수업 중에 그는 부모님이 태어나신 한반도에 대한 언급을 두려워했고 선생님께서 식민지 한국에 대해 어떤 것이라도 말씀하실 때는 책만 내려다보곤 했다. 노아의 다른 비밀은 개신교 목사인 그의 아버지가 감옥에 있으며 2년 넘게 집에 돌아오지 않고 계신다는 것이다.
노아는 항상 두려움을 안고 학교에 간다. 혹시나 일본인 학생들에게 괴롭힘을 당하지는 않을까, 수업 시간에 조선 이야기가 나오면 어떡하나, 부모님에 대해 알려지면 어쩌지 등등의 걱정을 머리에 싸매고 노심초사하며 가고 싶지 않은 학교로 매일 아침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야 하지 않았을까.
이전 같았으면 노아가 처한 현실과 감정에 공감하며 그저 슬퍼하고 말았을 것이다. 다시 역사의 쓸모로 돌아가 최태성 작가가 말했던 관성에 맡겨진 삶을 잠시 흩트려 보기로 했다. 만약 내가 그 일본인 학교에서 노아를 담당했던 일본인 교사였다면? 나는 어떤 교사였을까?
9년간의 교직 경력동안 다문화가정의 학생을 가르친 적이 아직은 없다. 다문화가정이란 서로 다른 국적, 인종, 문화를 지닌 사람들로 이루어진 가정을 일컫는 표현으로 이민, 국제결혼으로 또는 많은 외국인 근로자들이 자녀를 낳고 대한민국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외에도 다문화가정의 종류와 원인들은 다양할 것이다.
요즘 한국사회에서 다문화가정의 학생을 만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2022년 교육부 조사자료에 따르면 대한민국에 거주하는 다문화학생은 총 168,645명이라고 한다. 2021년에 비해 총 8,587명이 증가하였으며, 다문화가정 학생 수는 꾸준히 증가 추세에 있다고 한다. 내가 거주하는 대구에도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이 거주하는 공단 지역의 초, 중, 고등학교에는 다문화가정의 학생들이 비교적 많아 이 학생들의 경제적, 언어적, 학습적 지원들을 돕는 업무를 담당하는 교사가 따로 있다.
그런데 문제는 다문화가정이라는 이유만으로 학교폭력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를 포함한 욕설과 폭행으로 다문화가정 아이들이 언어적 어려움과 더불어 학교에서 멍들고 있다고 하니 참 안타까운 상황이 아닐 수 없다.
관성에 젖지 않고 생각해 본다. 내가 만약 책 <Pachinko>에서의 노아처럼 다른 나라에서 이민 온 학생을 또는 이민을 와 다문화가정을 이룬 부모의 자녀를 교실에서 만난다면 그 학생에게 어떤 교사가 되어줄 수 있을까? 교사로서 그 학생을 위해 해줄 수 있는 제도적 지원뿐만 아니라 한국 학생들에게는 내가 느끼고 있는 역사의 쓸모를 같이 통감케 하고 싶다. 우리가 느낀 아픈 역사를 통해, <Pachinko>에서의 노아의 입장에 서서 그의 감정과 마음상태를 헤아려보고, 과연 우리 학교에,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외국에서 온 친구들, 많은 다문화가정의 친구들을 이해해 보는 기회를 가져보는 건 어떨까 아득히 막연하게 생각해 본다.
arithmetic: 산수, 연산
adept: 능숙한
coordination: 협응, 조직력, 합동, 조화
tidy: 동사로 ‘정돈/정리하다’(과거형: tidied), 형용사로 ‘깔끔한’
draw: 그리다, 인용글에서는 ‘끌다 ‘라는 의미로 쓰였다.
undue: 지나친, 과도한
manage to ~ : 간신히 ~하다, 성공하다, 해내다
perimeter: 주위, 주변, 둘레
linger: 남다, 더 오래 머물다
forthcoming: 기꺼이 말하는/밝히는
dread: ~을 몹시 무서워하다/두려워하다
colony: 식민지
had p.p: 과거완료. 인용글 전체에 과거시제가 쓰이고 있는데 노아의 아버지가 감옥에 수감되면서 집을 떠난 시점은 인용글의 시점보다 더 먼 과거이다. 더 먼 과거(집을 떠난 시점)부터 인용글의 과거시점까지를 나타내는 과거완료 시제. 현재완료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아우르는 시제이다.
비단 교사에게만 해당되는 글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학부모라면, 학생이라면 모두 다 함께 이 역사의 쓸모에 대해, 이민자들에 대해 다문화가정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