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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해일지] 세트메뉴

by zunrong

[2024.10.25]


나만 그런지 모르겠지만, 음식점에 갔을 때 세트메뉴가 있다면, 항상 세트메뉴를 시키는 편이다. 아무래도 보다 저렴하게 많은 걸 먹을 수 있다는 욕심에서 기반한 심리인 것 같다. 최근에 대만식 훠궈 집에 가 우연히 한 세트 메뉴를 발견했다. 메뉴 이름은 굉장히 직관적이었다.


'마라소고기오리피세트메뉴'


평소에 선지도 먹지 않기에 오리피를 빼달라고 했더니 사장님께서 대신 두부를 넣어 준다고 하셨다. (단백질 나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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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소고기두부세트메뉴'는 맛있었다. 마는 거의 없었고 적당한 맵기에 훠궈를 끓여서 주는 느낌? 살짝 맵다 싶으면 같이 시킨 대만식 소시지를 곁들여 먹었는데 슬라이스 된 마늘과 함께 먹으니 궁합이 최고였다. 새로운 곳만을 찾아다니던 내가 그 맛을 잊지 못하고 이틀 만에 재 방문하여 똑같은 자리에서 똑같은 음식을 시켜 먹었다.


잘 팔리는 세트메뉴는 하나의 팀 같은 느낌이 든다. 아무렇게나 구성되지 않는다. 시너지 효과가 나지 않는다면 세트 메뉴로 만들어질 수가 없기 때문이다. '햄버거와 감자튀김 그리고 콜라', '떡볶이와 순대 그리고 튀김'처럼 말이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구성되는 모든 단체 활동에도 세트메뉴 효과라는 게 적용됐다. 그 구성의 조합이 최고였을 때는 2배, 10배의 역량을 보여줬고, 그 구성의 조합이 최악이었을 때는 0.5배, 아니 있는 만도 못했다. 학생 때 했던 조별 과제에서는 우리의 의지가 반영되어 최고의 조합을 찾기 위한 모험을 떠날 수 있었지만 얼굴에 가면을 쓰고 면접이라는 문을 통해 들어온 수직적인 회사에서는 운에 맡길 수밖에 없다.


'제발 나와 맞는 선배님, 후배님, 팀장님이 걸리게 해 주세요'


조합 선택지는 굉장히 다채롭다. '햄버거, 떡볶이, 라면, 순대, 우유, 콜라, 딸기, 초콜릿, 바나나 등등등등' 그리고 최고의 조합을 찾기 위해 꾸준히 다양한 조합이 시도된다. 조합에 실패했다고 해서 낙담하면 안 된다. 혹독하고도 냉혹한 현실에서는 라면에 초콜릿을 넣어 먹는 조합이라도 떡순튀와 같은 결과를 내놓아야 하기 때문.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래도 나는 운이 꽤나 좋은 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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