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본에 도착해 상공에서 내려다본 시내의 야경은 여느 대도시의 야경과는 사뭇 달랐다. 마천루나 쭉 뻗은 대로의 불빛이 만드는 불기둥 없이, 어느 한쪽 더 밝게 집중되는 곳 없이 시내 전체가 반짝이는 모래알을 뿌려 놓은 것처럼 노란 불빛으로 반짝인다. 길을 따라 이어진 불빛이 꾸불꾸불하다.
짐을 찾아 공항에 나오니 밤 11시다. 공항은 번잡하고 택시 기다리는 줄이 꽤 길다. 다행히 경찰들이 나와서 택시 승차를 도와주고 있어 차분하게 바로바로 줄이 줄어들었다. 내가 탈 차례에서 저기서 통화를 하며 걸어오는 아주머니 한 분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처음부터 내 앞에 있었는 사람처럼 승강장 쪽으로 간다. 경찰이 눈치를 못 챘다. 새벽 인도 뭄바이 공항의 어수선함이 연상돼 바가지요금을 걱정하며 택시에 올랐는데 호텔까지의 택시비는 놀랍게도 11유로 정도인데, 현금을 냈더니 카드 없냐고 해서 또 놀랐다.
리스본에서 3일을 보낼 호텔은 언덕 위에 있어 타누스 강과 도시의 전경이 내려다보이는 별 세 개의 작은 호텔이다. 구글의 부정적인 리뷰에 신경이 쓰였는데 냉장고는 없지만 다행히 책상이 하나 있고 침대는 넓고 깨끗했다. 테이블 위에 작은 와인이 한 병 놓여 있어 한 잔 마시고 잘까 망설이다 짐만 간단히 정리하고 바로 잠이 들었다.
아침에 발코니 쪽 커튼을 여니 빨간 지붕의 시내와 멀리 보이는 강과 그 너머의 전경까지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탁 트인 전망과 깨끗한 공기가 상쾌하다.
호텔의 조식이 8시부터다. 옆 테이블에는 여행 온 노부부가 아침 식사를 하시는데, 할아버지는 먹던 바게트 빵을 식탁 위에 무심히 내려놓는다. 비슷한 광경을 파리에서 봤다. 둘째 날은 나도 먹던 바게트 빵을 아무렇지 않게 식탁에 놓고 먹었다.
현지 가이드의 시내 도보 투어를 신청했다. 낯선 도시의 첫날은 안내를 받고 여행을 시작하는 것이 좋다. 매번 그렇게 투어를 받았지만 아쉬운 점은 한국의 현지 가이드들이 공부를 조금 더 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리스본에서 안내해 준 라라 님은 좋았다.
9시에 시작한 투어는 오후 2시쯤 끝이 났다. 호시우 광장의 돈 페드로 4세의 동상 앞에서 만나 어떻게 그가 브라질의 첫 번째 왕이 되었는지, 대항해시대의 영광, 300여 년 전의 대지진, 스페인과의 관계, 등을 들으며 주로 관광명소 위주로 투어를 했다.
도시는 프랑스와 아랍, 그리스 풍의 건물들이 섞여 있다. 건물들의 외벽은 포르투갈의 전통 타일 장식인 ‘아줄레쥬’로 장식되어 있고, 거의 모든 보행로는 하얗고 까만 돌로 된 타일이 촘촘하게 모자이크 되어 있고, 광장이나 넓은 길에는 파도치는 물결무늬로 흰 돌과 검은 돌이 번갈아 깔려 있다. 오랜 시간 많은 사람들이 그 길을 지나다녀 보행로의 타일이 만질만질하다.
리스본에는 언덕이 많다. 좁은 언덕길을 따라 리스본의 상징인 노랗고 파란 한량짜리 전차인 ‘트램’과 경사가 심한 언덕에는 위아래로 ‘푸니쿨하’라는 케이블카 보다 조금 더 조금 날씬한 전차가 왕복한다. 그리고, 지대가 낮은 길과 높은 곳의 길을 연결하는 엘리베이터가 곳곳에 설치되어 있다.
300여 년 전에 있었던 대지진으로 파괴되어 지붕이 없고 벽과 우아한 골격만 있어 고풍스러운 ‘까르모 수녀원’을 지나 철골구조로 되어 있는 ‘산타 후스타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래쪽의 쇼핑거리로 내려왔다. 에펠탑의 분위기가 나는 이 엘리베이터는 리스본의 명물로 에펠의 제자가 만들었다고 한다. 센스 있는 가이드 덕에 우리는 별로 기다리지 않고 내려왔는데, 아래쪽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려는 관광객의 줄이 꽤나 길다.
지중해성 기후의 리스본은 여름은 고온건조한 것이 특징이다. 뜨겁고 더운 날씨지만 그늘에만 가면 시원하다. 정오가 가까워지며 햇살은 더욱 강렬해진다. 평소 선글라스를 잘 쓰지 않지만 양지로 나갈 때는 썼다 햇볕이 없는 곳에서 벗기를 반복했다.
저녁은 가이드가 추천 한 돌판 스테이크 레스토랑에 갔다. 현지 사람에게도 유명한 곳이라더니 7시 오픈인데 30분쯤 지나서 갔더니 이미 가게 앞에 몇 명이 줄을 서 있다. 가게 안을 힐끔 보니 낮에 투어를 같이 했던 아저씨가 혼자서 식사를 하고 있어 양해를 구하고 맞은편에 앉았다. 등심과 와인 한 병을 시켰다. 달궈진 돌판과 생고기가 같이 나와 본인이 구워서 먹는 방식이다. 한국인 관광객이 많이 찾는지 한글로 된 메뉴에 등심이라고 적혀 있었지만, 커팅이 우리와 달라서 인지 달궈진 돌판에서 빨리 익어서인지 육즙 없이 텁텁한 고기가 안심 같기도 하다. 숙소에 돌아와 가이드에게 문자로 알려줬다.
얼떨결에 합석을 하게 된 그분은 회사를 그만두고 새로운 직장에 입사 전 일주일 일정으로 바르셀로나와 세비야를 거쳐 리스본에서 하루를 여행하고 내일 서울로 돌아간다고 한다. 와인을 병째 시킨 터라 와인 한잔 하시겠냐고 물으니 다음날 새벽비행이라며 사양을 한다. 10만 원을 아끼기 위해 새벽 비행기를 타고 독일을 경유한다고 한다. 여행가가 꿈이라는 그는 이직을 하게 된 배경을 설명하며 중소기업에서 비애와 40대 중반의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걱정을 했다. 그는 먼저 식사를 마쳤지만 예의라고 생각했는지 내가 식사할 동안 이런저런 얘기를 계속한다. 웨이터에게 와인 잔을 하나 달라고 해서 와인 한 잔을 권했다. 그는 두 잔을 마셨다.
식당 앞에서 헤어지며 건투를 빌었다.
돌아오는 길에 동상 앞 광장에서 거리의 악사가 버스킹을 하고 있다. jtbc의 ‘비긴어게인’을 촬영 한 곳이다. 바닥에 깔려 있는 타일 조각들이 밤이 되니 가게 조명을 받아 반짝거린다. 처음엔 비가 오는 줄 알았다. 그의 앞 길도 이렇게 빛나길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