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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모 Jun 17. 2018

나는 누구인가. 인간의 존재론적 질문에 대하여

깨달음은 순간이지만 인간의 가치는 그것을 실현하는 데에 있다

얼마전 한 독자분께서 굉장히 인상적인 댓글을 달아주셨습니다. '왜때문에 나는 우울할까'라는 질문에 저는 각자의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많은 분들의 고민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생각하며 글을 썼고 댓글을 달아주신 분은 조금 다른 관점에서 새로운 화두를 던지셨습니다.


그 화두의 요점은 '정말 '나'가 누구이기나 한 걸까', 또는 ''나'라는 것은 무엇일까?'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사실 저도 이 주제를 다룰까 말까, 한번은 다뤄야 하는데 언제 다루면 좋을까 굉장히 고민하고 있었던 터라 한편으론 참 반갑기도 하고 또 어떻게 이 주제를 여러분과 함께 이야기해 볼 수 있을까, 그런 설레는 마음으로 글을 시작합니다. 


우리가 우울함과 공허함에서 자유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내가 진짜 원하는 삶의 목표가 뚜렷해야 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진짜 원한다는 것은, 누군가의 평가나 기준에 따르지 않고 오롯이 내 가슴이 뛰는 일, '소명'이라고 느껴지는 목표, 만약 내일 당장 죽는다고 해도 '내 삶은 잘 산 삶'이라는 생각이 들만한 일을 말합니다. 그런데 그 기준을 세우기 전에 '나'라는 것의 본질을 깨닫는 것이 선행되어야 함은 사실 지난 글에서 다루지 않았지만, 가장 중요한 일이기도 합니다. 


결론부터 이야기 하자면 '나'라는 것은 사실 없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나' 말이지요. 사실 우리는 그 모든 것을 초월한, 어떻게 정의내릴 수 없는, 존재 그 자체입니다. 


보통 우리가 '나는 누구입니까?'라는 질문에 대답을 할 때 내 이름음 뭐고, 나이는 몇살이고, 성별은 어떻고, 직업은 무엇이고, 어디에 살고, 어떤 가정환경에서 자랐고, 성격은 어떻고, 좋아하는 건 뭐고, 싫어하는 건 뭐고 등으로 스스로를 정의합니다. '나는 ㅇㅇㅇ한 사람입니다'라고요. 


그래서 우리는 수많은 것들로 정의되는 그 '나'를 더 멋진 수식어들로 장식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그것도 좋은 일입니다. 순서만 지키면 말이지요. 여기서 순서는 그 수식어들이 진짜 내 존재를 앞세워 다투면 안된다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가장 순수하고 언제나 고귀한 존재 그 자체로서의 내가 그 수식어들로 인해 다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유전자 키>라는 아주 흥미롭고, 또 영적으로 깊이있는 책에서 이것을 이해하기에 좋은 구절이 있어 옮겨다 적습니다. 

"허영심은 또한 말을 뛰어 넘어 침묵 속에 숨을 수도 있습니다. 때때로 당신의 허영은 당신이 말하지 않은 데에 숨어 있습니다. 그것은 당신의 생각과 감정 속에 자신을 숨깁니다. 자기 동일시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나 허영심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허영심도 본질적으로 나쁘지 않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당신이 인간의 수많은 요소 중 어떤 것을 나쁘다거나 악으로 선언하면 그 안에 숨어 있는 선물을 놓치게 될 것입니다. 허영심은 단지 우리의 일부분이며 또한 순수함의 기초입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그 모든 것들을 사실 선과 악으로 구분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늘 상대적인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동전의 양면과도 같습니다. 선이 악이되고, 때로 악이 선이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존재 자체로이분서의 나를 알아차리는 것이 더욱더 중요합니다. 진짜 내가 누구인지 깨닫고, 끊임없이 그것을 실천할 때 우리는 모든 부정적인(그렇다고 생각되는 모든)것들 속에서 선물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출처: https://www.changeyourenergy.com/ 

더 알아보기(명상으로 체험해보기): http://www.changetv.kr/EbroadCast/ContentView.aspx?ProgramIdx=8&Idx=2090&CategoryIdx=102 


이 영상이 혹시 어떻게 느껴지시나요? 참 영롱하고, 예쁘죠? 이것은 이미지로 존재 그 자체를 표현한 것입니다. 쉽게 말해, 여러분의 모습입니다. 

이 영상도 그렇지만 명상은 우리가 스스로를 정의하는 모든 것들에서 벗어나 존재 그 자체이자 실체로서의 나를 깨닫고, 그것을 실천하기 위한 도구입니다. 그런데 실체로서의 나를 알아차리기가 혼자서는 하늘의 별따기 처럼 어렵고, 또 사람마다 다른 감각이 발달되어 있기 때문에 좀 더 알아차리기 쉽게 하기 위해 선각자에 의해 이런 그림이 만들어지게 되었던 것이지요. 달리 말해 여러분은 지금, 깨달음을 얻은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실체를 알아차리는 것은 사실은 누군가의 도움이 없으면 거의 불가능하다고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많은 깨달은 스승들과 선각자들의 도움으로, 또 내 곁에 있는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우리는 스스로를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모두가 생명 그 자체로 하나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현상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그 무엇으로도 정의될 수 없고, 정의내릴 수 없는 생명 그 자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명상을 통해 그것을 자주, 많이 느끼면 느낄수록 상처받았다고 느끼는 내가 치유되고, 또 상처줬다고 느끼는 나도 (스스로에게)용서받게 됩니다(자신에게 용서받지 못하는 사람은 그 누구에게도 용서받을 수가 없습니다). 인간이 스스로의 실체를 모르면 가장 깊은 무의식에서의 수치심이나 죄의식이 치유되지 않습니다. 모든 자존감의 회복은 결국 내가 누구인가를 제대로 알아차리는데서 시작합니다. 사실 나는 상처주지도, 받지도 않는 생명 그 자체입니다. 


명상은 하나의 방법입니다. 누군가는 몸을 통해, 누군가는 정신분석을 통해, 누군가는 그저 일상의 한 찰나에서, 빨래를 널던 순간에 자신의 존재를 깨닫기도 하지요. 무엇이 되어도 상관 없습니다. 알아차리고, 그것을 실천하기만 하면 됩니다. 내가 이렇게 소중하고 고귀한 존재라는 사실을 삶에서 마음껏 표현하고 전달하면 됩니다. 내가 누구인지 알면, 할 수 있는 것은 사랑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실체는 한번 알아차리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너무 쉽게 깨달음을 선물 받아 그 가치를 그만큼 쉽게 잊지만 사실 이것은 누군가의 목숨을 건 투쟁과 맞바꾼 것이기도 합니다. 예수님도, 부처님도 모두가 마찬가지였지요. 그것을 물려받은 사람들은 쉽게 받은 만큼 잘 놓쳐버리는 것 뿐입니다. 힘들어봐야 존재에 대해 고민하는 것처럼, 어려움을 통해 우리는 우리 자신의 실체에 더 가까이 다가갑니다. 선도 악도 없다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나'를 수식하는 것들로 인해 고민하고 괴로워하다보면 실존적인 질문을 던지게 되는 것도 마찬가지의 이유입니다. 


존재의 본질을 알아차려도 우리는 삶을 살아가기에 그 깨달음을 바탕으로 진짜 내가 원하는 삶을 만들어야 합니다. 나의 본질이 위대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그에 걸맞는 가슴 뛰는 일을 선택하시면 됩니다. 무엇을 선택하든 그것은 자유이지만 깨달음을 실천할 때 우리는 진짜 행복해집니다. 진짜 나를 느끼면, 그 진짜 내가 모든 순간에 충만할 정도로 많이 느끼고 훈련하면, 여러분은 모두를 치유할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면 여러분 자신이 치유와 사랑으로 넘쳐나기 때문입니다. 원래 그런 존재이고, 그것을 회복했기 때문입니다. 


실체는 사실 머리로 이해하는 것은 아닙니다. 느껴야 그때 진짜 알게됩니다. 체험은 전두엽에 시냅스를 만들고 머리로만 이해하던 지식을 진짜 내것으로 만듭니다. 그래서 명상같은 체험적 도구가 필요한 것입니다. 나의 가치, 실체, 영혼의 감각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은 다른 글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인간은 깨닫기 위해 만들어진 존재이기 때문에 여러분의 온 몸은 여러분의 실체를 잘 느낄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다만 눈에 보이는 많은 외부적인 것들, 수많은 수식어들, 또 우리가 하나가 아니라 분리된 존재라는 착각 때문에 오염된 많은 것들에 의해 스스로의 실체를 느끼는 감각이 무뎌졌을 뿐입니다. 이미 있는 명상에 대한 글들을 참고 하서도 좋을 것 같고, 앞으로 저와 함께 차근차근 무뎌진 그 감각들을 회복해 나가면 됩니다. 


여러분이 느끼고 생각하는 것들은 거대하고 깊은 바다의 파도일 뿐, 여러분은 심오한 바다 그 자체라는 것을 우리가 함께 알아가고, 또 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삶의 동반자로서, 언제나 여러분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글쓴이는 3년 전 우연한 기회에 미국에서 명상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알고 보니 그 명상의 뿌리는 한국 선도문화와 뇌과학을 기반으로한 명상기업 단월드에 있었어요. 인상깊었던 첫 만남 이후 꾸준히 수련을 이어가고 있으며 국가공인 브레인트레이너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20대 후반 대한민국 여성으로서 겪는 이야기와 명상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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