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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vecin Oct 28. 2023

* 사실 나, 사람 안 좋아해(2023.10.28.토)

 사실 나사람 안 좋아해 (2023.10.28.) *


 - 사실 나, 사람 안 좋아해~     


   코로나로 인해 수업 동영상 탑재로 진행되던 수업 공개가 3년 만에 학부모 방문 공개 수업으로 진행되었다. 200여 분의 학부모를 맞이하기 위해서 교실과 복도를 청소하고 정리 정돈을 해야 했다. 담임선생님들께 공지도 하였고 클래스 서포터즈 (학급 임원들)에게도 따로 알렸지만, 바로 전날 직접 점검하기로 했다.     


   1반부터 12반까지 교실과 복도의 청소 상태를 체크하면서 교실 앞과 뒤 그리고 복도에 있는 물건들을 정리했다. 교실 앞문을 열자마자 쓰레기통과 분리수거함이 있어서 복도로 내놓기도 했고, 복도에 있는 대걸레 걸이의 S자 걸개를 고정하고 빠진 대걸레봉을 붙이기도 했다. 무언가 효율적이고 시각적으로도 괜찮은 구도를 위해서 아이들과 함께 청소 관련 도구를 몇 번씩이나 교실과 복도로 옮기면서 배치하느라 힘들었다. 12학급을 정리하고 자리에 앉으니 1시간 30분이 소요되었는데, 깔끔하게 정리된 복도를 보신 A 집사님께서 말씀하셨다.     


 - 와아~~~ 1학년 복도, 완전 깔끔한데요!     


   내가 말했다.     


 - 완전 깔끔하죠??? 그런데, 며칠이나 가겠어요….*^_^*….     


   무엇보다 교실 뒤에 있는 사물함과 청정기 사이의 공간에 책과 신발과 온갖 쓰레기가 숨겨져 있어서 치우고 버리고 쓸고 대걸레질까지 하며 정리하는 데에 많은 시간이 들어갔다. 사물함과 청정기가 딱! 붙어있으면 좋았을 텐데 그 두 개 사이에 애매한 공간이 있으니, 창문 옆 부분에도 쓰레기가, 아래 교실 바닥에도 쓰레기가 쌓여있을 수밖에 없었다. 사물함과 청정기가 좀 더 붙어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왜 그사이가 띄어져 있을까….  

  

   손재주가 남달라서 가방, 머리핀, 팔찌와 목걸이 등 온갖 액세서리를 직접 만들 줄 아는 B에게 받은 액세서리가 한두 개가 아니다. B는 본인이 만든 액세서리만 선물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구매한 물건이 좋으면 지인들에게도 막 사서 준다. 또 그렇게 받은 선물도 한두 개가 아니고…. 말도 얼마나 재치 있고 유머러스하게 하는지 늘 사람들에게 큰 웃음을 주는 B가 나와 둘이 있었을 때 이런 말을 했다.    

 

 - 사실 나, 사람 안 좋아해~    

 

   나는 너무너무 놀라서 물었다.     


 - 무슨 말씀이세요…. 항상 사람들 하고 어울리시면서….

 - 사람들 하고 있기는 하지만 사실, 사람을 별로 안좋아해…. 몰랐지…???

 - 아…. 네…. 왜요…??

 - 사람들이 불편해….

 - 전혀 그렇게 안 보이는데요…??

 - 많은 사람하고 이야기하지만, 정작 몇 사람하고만 진짜 이야기를 하지….    

 

   B의 이 말에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 지금까지 했던 B의 이야기 중에서 지금 한 말이 가장 마음에 들어요….

 - 진짜??

 - 제가 지금까지 알던 B랑 달라서 더 좋아졌어요….     


   MBTI의 가장 요란한 E에 들어가는 것으로 보이는 B가 사실은,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이 왜 그렇게 좋았을까…. 늘 외향적으로 보이는 B가 나름 조용하고 새침데기인 나에게 먼저 다가와 넘치는 선심을 보일 때도 그 이유를 몰랐었고 그 선물 공세가 오히려 B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게 했었는데, B의 저 솔직한 말 한마디가 나를 B에게 확! 달라붙게 했다. 신기하다.     


   그런 B가 내 책을 읽고서는 나에게 말했다.     


 - 이렇게 따뜻한 사람이었어??? 차도녀 아니었어???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 차도녀, 맞아요…. 차가운 도시 여자가 좀 따뜻해지려고 하는 거죠….*^_^*….   

  

   ‘앵프라맹스(Inframince)’ 라는 말이 있다.     


* 앵프라맹스 (inframince) : 화가 마르셀 뒤샹이 했던 말. 서로 아무리 다가가도 빈틈이 생기는 것. 어쩔 수 없이 너와 나를 가로막고 있는 틈새….     


   사물함과 청정기가 딱 붙어있었으면 좋았겠지만 딱 붙어있을 수 없는 구조인 것처럼, 사람들과, 특히 좋아하는 사람과 딱 붙어있으면 좋겠지만 그사이에 어떤 틈새, 채울 수 없는 빈틈이 있을 수밖에 없는 걸 받아들여야 할까…. 배치하기 위해 빈 곳이 있을 수밖에 없지만 그 빈 곳에 불필요한 것들이 쌓이고 말 텐데…. 그 쓰레기들을 치우는데 생각보다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갈 텐데….


   사람들과 허물없이 그 어떤 틈새도 없이 달라붙어 있는 것 같았던 B가 사실 사람들과의 불편한 틈을 감내하며 모른 척, 아무렇지도 않은 척 웃고 이야기하고 있었던 모습에 내 마음이 울컥해진다.     

 

   <예언자 – 칼릴 지브란>의 글 중에 이런 문구가 나온다.     


-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그래서 하늘 바람이 너희 사이에서 춤추게 하라     


- 함께 서 있으라

  그러나 너무 가까이 서 있지는 말라

  사원의 기둥들도 서로 떨어져 있고

  참나무와 삼나무는 서로의 그늘 속에선 자랄 수 없다          


   너와 나 사이에 있는 거리에 하늘 바람이 춤출 수 있다면, 너무 가까이 서 있지 않고 떨어져 있더라도 서로 자랄 수 있을 만한 곳에서 함께 서 있을 수만 있다면…, 너와 나 사이에 있는 앵프라맹스를 인정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니, 어쩔 수 없는 이 앵프라맹스를 인정하기는 하겠지만, 어쩌면 그 틈을 메울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을 가지면 안 되는 걸까….     


********************     


*** 이런 글을 읽었다.     


 - 다른 사람과는 하지 않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사람이라면 사랑일 수 있어.


   2학기 1차 지필고사 시험문제를 출제할 때 교무실 문 앞에 이런 표지가 붙여졌다.   

   

   모든 사람에게 있는 ‘출입 금지’ 부분을, ‘출입 허락’으로 바꾸고 싶어지는 때가, 사람이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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