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살 예찬 (2021.06.05.토) *

by clavecin

* 17살 예찬 (2021.06.05.토) *


학교에 있다보면 1년이 굉장히 짧게 느껴진다. 거의 같은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느껴지는 감정도 비슷하며 단지 아이들만 바뀌는 것 같은 느낌이다. 때로는 굉장히 편한 기수가 있는가 하면, 1년 내내 마음고생을 하게 하는 기수도 있다. 벌써 6월인 올해는 다른 때보다 더 짧은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아마도 아이들과의 생활이 나쁘지 않은, 어쩌면 재미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학창 시절, 3월이 무척 싫었다고 이야기를 했더니 어떤 선생님께서 ‘1살 빨리 들어가서 그래요’ 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인지 항상 3월은 춥고 싸하고 익숙하지 않은 느낌이 있는 달이어서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새롭게 무언가 익혀야 하는 시기라는 것은, 어쩌면, 좀더 어렸던 나에게는 무언가 무거운 것을 누구의 도움없이 스스로 감당해야 하는 버거운 느낌의 때였다고나 할까..


그래서 사실, 이런 거대한 ‘학교’라는 곳에, 특히 새로운 단계로 올라온 ‘고등학교’라는 곳의 어색했던 3월을 지나서 이제는 익숙하게 지내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 매번 놀랍고 대견스럽고 부럽게 보인다. 물론 나름의 어려움들이 있었겠지만 말이다.


간간이 나의 글에도 썼었지만, 고등학교 1학년 때의 담임 선생님은 국어선생님이셨고 인기가 많은 남자 선생님이셨다. 1기는 오빠들만 있었던 학교에 남녀공학이 된 2기 입학생으로 입학했던 학교였다. 오빠들이 엄청 좋아했던 선생님의 성함은, ‘나정수’ 선생님이셨는데 이렇게 유머를 하셨다.


- 나?? 정수야...


웃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몰랐던 그 시절, 그 선생님과 상담할 때의 에피소드다.


- 자, 네 이야기를 해 봐. (아마 이렇게 시작했을 듯..)

- 제가 왜 선생님에게 제 이야기를 해야 하나요??

- ????


아무리 담임 선생님이지만 왜 그 선생님에게 내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던 나였고 눈을 똥그랗게 뜨고 있던 그 선생님의 턱 수염이 생각난다.


고등학교 2학년 때의 담임 선생님은 K대 역사교육과를 나오신 선생님이셨는데 운동권 선생님이셨고 마찬가지로 인기가 많았다. 우리 반에서는 모둠별 일기를 쓰게 하셨고 의식 있는 메시지를 많이 주셨지만 나는 그 선생님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본인의 운동으로 학급을 잘 돌아보지 못하셨고 그래서 나에게는 개인적으로 별 감동이 되지 않았는데 결국 1학기에 ‘잘리셨다’. 난 그 때 알았다.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옆에 있는 사람에게 영향을 주어야 진짜 좋은 일이라는 것을.


고등학교 3학년 때의 담임 선생님은 일면 ‘독혜경’으로 불리던 선생님이셨고, 나는 진짜로 성이 ‘독’씨 인 줄 알았다. 엄청 독하고 돈을 밝히는 선생님으로 알려져 있었다. 우리 반 담임 선생님 성함이 불릴 때 ‘김혜경’으로 불려서 또다른 새로운 선생님인 줄 알았는데 만나고 보니, 우리가 알고 있던 그 분이었다. 그런데 알려져 있던 것과 다른 성품을 가진, 나름 괜찮은 선생님셨다. 그 때 나는 알았다. 소문과 실제는 다르다는 것을..


겉으로는 당연히 조용하고 차분한 학생이었지만 속으로는 너무나도 당돌하고 뚜렷한 주관을 가지며 다양한 생각을 하던 학생이었다. 지금의 내 모습도 이와 크게 다르지는 않다.


사람들의 말과 소문보다 나 나름대로의 주관을 가지고 직접 판단하는 성격인 나의 인생에서 ‘학교’라는 공간은 굉장히 중요하다. 지금은 직장인 이 곳에서 만나는 요즘의 학생들은 해가 바뀔수록 점점 진화하는 것 같다. 그럼에도 아이들을 보면서 나의 옛날 모습을 찾아본다.


나의 고등학교 1학년 때처럼 ‘내가 왜 당신에게 내 이야기를 해야 하느냐’고 생각하는 학생도 있을 것이고, 고등학교 2학년 때처럼, 모두다 환호하는 어떤 것에 한 발자국 떨어져서 냉소를 하는 학생도 있을 것이며, 늘 듣던 소문을 걷어내고 나름대로의 판단력으로 명확하게 어떤 사실을 받아들이는 학생도 있을 것이다.


중학교를 갓 졸업했지만 집에서 한참 커버린 뒤 6월에 만났던 작년 아이들을 보면서는, ‘아이들이 왜 이렇게 아이같지 않지?’라고 생각했었는데, 올해는 3월부터 보아와서 그런지 더 많이 어려보이고 귀여워 보인다. 또 학교에서 쭉 아이들을 보아왔던 직원분들께서도 이번 기수 아이들에 대해서 많이 칭찬하시고 괜찮은 아이들이라고 해 주신다.


- 이번 기수는 아이들이 착해요. 말을 잘 듣네요.

- 이번 기수 아이들은 화장실도 깨끗하게 사용하네요..

내가 이 이야기를 했더니 어떤 선생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 선생님은 늘 그렇게 말했던 것 같아요... 이번 애들은 좀 나은 것 같다고..


이런...내가 그랬었나... 사실, 이렇게 생각해야 아이들에 대해 기대하는 마음으로 다가갈 수 있고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가끔 들려오는 놀라운 이야기들도 있기는 하다. 중학교 때의 어리고 자유로운 행동을 하는 학생들이 있나 보다. 동산고에 와서 ‘Dongsanize’가 되어야 하는데 아직 그 ‘동산다움’을 제대로 익히지 못해서 일 듯 이라고 선생님들은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기다려본다. 아직은 한참 서서히 자라고 있기 때문이라고...


겉으로는 많이 어려보이고 하는 행동도 놀라운 일들이 가끔 있지만, 생각보다 아이들은 판단력이 있고 절제력이 있으며 객관적이고 정확하다. 그리고 한 방향으로 굳어져 있는 어른들보다 많이 유연하여 변화 가능성이 있으며 옳은 것이 무엇인지 알고 확실하게 구별할 줄 안다. 그리고 변화하려고 하는 의지력도 있다. 고등학교 때의 내 모습처럼 말이다. 고등학교 때의 내 모습은 정확했고 옳았고 객관적이었다고 생각한다.


17살 아이들의 모든 것을 기대해 본다.


*한번도 가보지 않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아이들은 그 고민을 위로해 주고 용기를 주는 노래들을 좋아한다. 특히 남학생들이 더 가사에 영향을 받고 그런 노래를 많이 듣는다.


음악시간에 진로와 연관된 음악을 발표하는 시간에 어떤 학생이 선택한 곡이었는데, 나는 이 영상에 나왔던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마음 한쪽이 아팠던 것 같다. 누구나 한번은 이런 모습이었을 듯...

17살 아이들이 이런 가사에 감동을 받는다니.....

괜찮다고, 힘을 내라고, 어깨를 툭 쳐주고 싶다.

https://www.youtube.com/watch?v=5iSlfF8TQ9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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