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거지하며 웃는 일

#731

by 조현두

그날 나는

조용히 물컵을 씻었다

네가 준 잔이었다

그 안엔 아무것도 없었다


버려진 건 컵이 아니라

내 마음이라는 걸

그제야 알았다


너는 먼 바다를 건너

섬까지 왔다

그 섬엔 내가 없었다


나는

네가 돌아간 후에야

그 섬에 앉았다


너를 사랑하면서

나는 자주 잊혔다

조용히, 아무 일도 없듯이


지금도

그 잔을 씻는다

물을 담기 위해서가 아니라

텅 빈 걸 확인하기 위해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파도의 부재는 마음을 완성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