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urosis and Human Growth(pp. 142-154)
자기혐오의 네 번째 표현형은 self-frustration입니다. 문맥 안에서의 의미를 고려할 때 좌절이라기보다 피학에 가까운 자기박탈 같아요. 이를 테면 스스로의 선택권을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당위의 폭정을 지속시키고 스스로에 대한 존중을 박탈함으로써 자기경멸을 지속시킵니다. 스스로의 행복이나 성장을 위한 어떤 것도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존엄성을 스스로 훼손한다는 의미에서 이 역시 자기혐오의 일부입니다. 다음 문장이 self-frustration의 특성을 집약하여 보여줍니다. "You are no good, and will never get anywhere."
다섯 번째는 자기고문(self-torture)입니다. 자기혐오의 불가피한 부산물로 설명이 됩니다. 높은 기준에 다다르지 못하고 당위를 따르지도 못한 스스로를 비난하고 폄하하며 정신적으로뿐만 아니라 신체적으로도 괴롭힙니다. 정신적 과정으로서, 다른 사람이 잘못되는 꼴을 즐기는 샤덴프로이데를 자기 자신에게도 적용할 수 있다는 데서 인간의 복잡성을 다시금 상기합니다. 이러한 과정은 명백히 의도적일 수도 있고 무의식적인 과정일 수도 있습니다. 한편 가학적인 모습은 자기고문이 외재화된 결과일 수 있습니다. 모든 가학적 충동이 자기혐오에서 기인하는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자기혐오는 분명 가학적 충동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중 하나로 설명됩니다. 피학적인 성적 활동이나 공상 역시 자기고문의 일환으로 설명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자기파괴적 충동과 행동을 설명하는데, 자기고문과의 차이가 명확히 이해되지는 않습니다. 자살은 물론 자기파괴의 궁극적인 형태일 수 있겠고요. 무의식적이거나 미묘한 방식으로도 자기파괴가 이루어질 수 있겠죠. 과도한 알코올 사용이나 일중독 등이 그런 예일 수 있겠습니다. 자신에게 해가 되는 어떤 행동이 반복된다면 자기파괴적 충동이 작용한 결과일 가능성을 고려해야 합니다. 어떤 일의 위험성을 과소평가하는 무모함 역시 자기파괴의 형태일 수 있습니다. 한편 자기파괴적 충동이 외재화되었을 때 다른 사람에 대한 비난이나 피해의식이 발생하기 쉬워 보입니다. 개성이 말살된 디스토피아를 다루는 조지 오웰의 1984가 외재화의 비유로서 설명되네요. 꿈을 통해 자기파괴적 충동이 상징적으로 그려지는 부분도 흥미롭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