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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송인 Nov 21. 2020

NEUROTIC CLAIMS 1

Neurosis and Human Growth(pp. 43-57)

신경증적 추동의 강박적이고 탐욕적인 면이 신경증적인 주장을 통해 어떻게 나타날 수 있는지 여러 예시를 들어서 설명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저자가 스스로의 경험을 통해 자신의 want가 어떻게 권리로 변화되고 이 과정에서 자기와 타인에게 이중잣대를 적용하게 되는지 성찰한 부분을 얘기하는 대목이 눈에 들어왔어요. 법이나 어떤 조직의 룰이 타인에게 적용될 때는 그것이 정당하다고 느끼지만 자신의 want를 침해할 시에는 정당하지 않은 것으로 변모하는 일이 신경증을 지녔든 지니지 않았든 분개하는 정도의 차이일 뿐 누구에게나 일어난다고 보고요. 까뮈님이 말했듯이 나의 분노가 내 안의 신경증적 주장에 연관될 때가 분명 있을 테니 그럴 때 불공정이나 타인의 비합리성을 지적하기보다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사람이 되길 소망하게 됩니다. 저는 첫 직장 상사와의 관계에서 이런 게 심했던 것..(쿨럭). 


건강한 사람이라면 이런 이중잣대를 자각하여 현실로 돌아올 수 있겠지만 이를 자각하지 못 하고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want를 응당 충족되어야 하는 특권처럼 빈번히 내세울 때 신경증이라 부를 수 있을 만한 수준에 도달하게 되는 것 같아요. 신경증적 주장의 한 가지 특성으로 egocentricity가 언급되는 것을 보면 아이 같은 마음이기도 한데, 이를 테면 내가 놀이공원 가야 하는 날에는 비가 내려서는 안 된다는 마술적 사고 아닌가 싶고요. 다만 아이들의 마술적 사고가 순수한 욕구 충족과 관련 있다면 성인에서의 신경증적 사고가 지닌 자기중심성에는 다른 사람보다 우월하고자 하는 마음, 그러지 못 했을 때 낙담하거나 시기하는 마음, 때로는 나보다 잘나가는 다른 사람에 대해 분개하는 마음 등이 수반되기도 한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어 보입니다. 


재미있는 부분이 우월하고자 하고 다른 사람이 가진 좋은 것을 나도 갖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충분히 노력을 기울일 법도 한데 신경증적 주장을 하는 사람은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자신의 우월성과 양립할 수 없기 때문에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without his making adequate efforts) 불공정함만을 강조하면서 점점 더 neurotic suspiciousness가 공고해질 수도 있겠구나 싶었고요. 극단적으로는 스스로의 이미지를 타인을 위해 불공정/불의에 항거하는 그런 투사로 그려냄으로써 신경증적 주장의 비합리성을 대의나 철학으로 포장한다는 점이 감옥에 계신 어떤 목사님을 떠올리게 만듭니다.  


심지어 자기가 뭘 원하는지 명확히 몰라도 그것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점은 저자가 "infantile"하다고 말하는 것에 정확히 상응하는 특성 같습니다. 이 정도 수준의 신경증을 지닌 사람은 치료에서도 스스로의 문제나 어려움을 얘기하지 않으면서도 치료자가 제대로 치료를 못 한다고 비난하며 심통부릴 수 있겠구나 싶어지고요. 이 정도면 신경증이 아니라 경계선 성격 조직이라 봐도 무방하겠지 싶네요. 설령 스스로의 신경증적 주장을 자각하더라도 경계선 성격 조직이나 infantile personality에 가까울수록 그러한 주장의 반대 증거를 찾는다는 것이 스스로에게 심각한 위협이 되니 그러기 어려울 것 같고, 그래서 일종의 자기참조적인 밀폐상태/진공상태 안에서 신경증이 더 공고해지기 쉽다는 저자의 말이 이해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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